여러가지 것들을 되돌아보아야 했지만, 일단 나는 내가 애초에 왜 이 일을 하려고 했었는지부터 시작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제대로 가다가 그만 둔건지, 아예 길을 잘못 든건지, 무슨 생각을 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더라, 에 대한 재고의 과정. 그리고 그러려면 다시금 내 자신이 어떤 인간이었는지,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릴 필요가 있었다. 언제나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 보아야 한다.
1. 무엇을 좋아하는지,
2. 무엇을 잘 하는지, 그리고
3. 무엇을 하고 싶은지.
취향과
능력과
비전의 세 가지가 운 좋게 일치하거나 어느 하나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면 방향을 잡는데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결국 이 세 가지를 얼마만큼 만족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전체적인 만족도가 좌우된다.
(사람에 따라 '누구를 위해' 혹은 당장 '생존이 절박해서', 라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건 개인 외적인 것이므로 일단 제외하자.)무슨 일을 해서 먹고 살았는지는 좀 있다가 쓰기로 하고, 처음부터 시작하자면...
일단 이걸 기억해내는데 꽤 오래 거슬러올라가야 해서 좀 놀라웠다. 3년 8개월이란 시간이 아주 막 짧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나름 돌이켜보니 제대로 가고 있는 면도 있었더라. 어쨌건.온라인에서 나를 만난 사람이든, 실생활에서 만난 사람이든 아마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나를 재미있고 가볍게 즐거움을 찾아낸다고 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지루하고 진지하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서 논리와 성실함, 안정과 균형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술적 창조성과 무모한 도전, 을 본다. 화려함과 사치스러움, 쾌락적 취미생활을 발견하는 사람도 있고, 반면에 수수함과 인내, 소탈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쉽게 대하기 어렵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느낀다지만 또 누군가는 한꺼풀만 넘어가면 허당이고 생활물리에 약하고 의외로 협조적인 얼굴이 있음을 보기도 한다.
모순 아닌가? 스물 다섯살까지는 나도 내 속성들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늘 고민했었지. 뭐 그렇게 천재적이지도 능력이 넘치는 것도 아닌데 세상 모든 것이 되어보기라도 해야겠단 말이냐, 커서 뭐가 될라구, 이제 다 컸는데? -하고 반문했던 적도 있다. 근데 한 스물 여덟, 아홉살 쯤 되니 좀 정리가 되더라. 세 페이지짜리 인생 같으니.
나는 내가 죽는 날까지 절대로 정리되지 않는 그런 캐릭터를 평생 가지고 살 줄 알았다. 이제 나는 내가 왜 그렇게 표리하게 읽히는지, 그리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
누군들 타인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아서, 그 사람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마는, 내 경우에는 소위 온라인 모드와 오프라인 모드가 확실하게 구분되어 더 그러한 것 같기도 하다. '분리'가 아니라 '구분'. 이 영역이 확실히 '구분'되어 있으면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어떤 면을 보여줄지를 스스로 결정권을 쥘 수가 있고, 가끔은 의도적으로 유리한 이미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아주 그렇게 자유자재로 모드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그래서 양쪽을 다 경험해 본 사람이 아니면 내 절반 밖에 모를 수밖에 없다. 옛날에는 내가 처음에 들이민 것 이외의 다른 면모를 발견해주는 사람들의 섬세함을 좋아했기에 가끔 일부러 벽을 치기도 했었는데 것도 좀 지난 일이다. 나를 해독하는 코드 따위, 어디 가서 얘기해 본 적 거의 없지만 그냥 쓰는 김에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밥과 디저트의 밸런스
밥은 일상과 생활의 영역이다. 그것은 '오늘'이고, 일이고, 실체이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근간이자, 생계수단이다. 내 전공으로 말하자면 경영학이고, 사업가 정신이고, 효율과 결과를 중요시하는 기업인 마인드다. 반면 디저트는 정신과 창조의 영역이다. 그것은 '내일'이고, 취미이고, 삶의 반짝거림을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소금이고, 쉼과 여유다. 전공으로 말하자면 미학이고, 예술이며, 유니크함과 과정을 중요시 하는 창작이다. 이 둘은 확실히 구분되지만, 완전히 무관할 정도로 분리되지는 않고, 간접적으로 상호보완적이다.
보시다시피, 둘다 한 코스에 나오는 음식이니까.전에 썼던 음식만담 일부인데, 약간 이런 정도의 비율? 물론 누구에게나 이런 속성은 있다. 단지 얼마만큼의 경중을 두느냐가 문제가 된다. 디저트? 급하면 안 먹어도 살 수 있다.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디저트, 그게 뭐라고 거기에 연연하겠는가. 그러나 내 개성은, 아마도 거의 확실하게,
디저트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 건전한 식단을 유지하는 밸런스 감각에서 나온다. 천칭의 한 중간에서 자기 중심을 잘 잡고 있으면, 어느 한 쪽으로 휙휙 기울더라도 다음 순간 반대편에 무게 있는 다른 뭔가를 실어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처럼. 이 천칭은 취미의 영역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해서 아주 새로운 것과, 아주 고전적인 것에 동시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요컨대 내 디저트는 일한 다음에 겨우 누릴 수 있는 여가나, 현실도피용 쾌락재처럼 없어도 되는 뭔가가 아니다. 동시에 달달한 디저트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몇년 째 같은 옷을 입더라도 모자는 있어야 되고, 모자를 사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이상과 현실, 철학과 생활, 사변의 쾌락과 예술의 창조가 가져다 주는 풍요로운 정신의 세계와 피와 살과 돈이 진검을 맞대고 일상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불러일으키는 비즈니스의 세계. 솔직히 나는 두 세계 중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내지만 물질적으로 가난한 예술가든 현실에 적응 잘해서 돈은 잘 벌지만 가슴 속은 빈한한 비즈니스맨이든, 둘 다 나의 선택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영학과 나왔으니 그냥 현실적으로 돈 많이 주고 일은 죽어라 시키는 업계에 가서 높은 연봉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거나, 어제가 생일이라는 망할 잉글랜드 출신 데이빗 테넌트 선생처럼 덕업일치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면 이렇게 골 때릴 필요도 없었을텐데.
(정말 너무 하지 않음? 어린 시절부터 닥터후빠돌이였는데 연기에 올인해서 한떨기 그림같은 배우가 된 뒤, 로얄 셰잌스피어 극단에서 유망주로 인정받고는...자기가 닥터가 되어버렸음. 심지어 결혼도 5대 닥터의 딸이자 그 드라마 4시즌에서 자기 딸로 같이 연기했던 조지아 모펫이랑 함. 뭔가 족보가 이상하게 꼬였지만 결론은 미친듯이 덕질하다 일과 사랑 다 잡은 케이스. 아, 진짜 ㅋㅋㅋ 생각할 수록 자기 혼자 다 갖고 ㅋㅋ 치사함) 전공을 두 가지 했던 것은 단순히 재미있어보여서 고른 건 아니고 나름 그런 고민의 산물이다. 아마 진성 비즈니스형 인간들이 보면 여전히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냐 그럴거고, 진짜 작가형 인간들이 보면 개뿔 웃긴다 그럴지도 모른다.
근데 뭐 어쩌라고.
난 그냥 생겨먹은 게 이렇단 말이다.
두 세계의 경계선에서 양쪽에 발을 걸치고 깔짝거리는 걸 좋아한다고.
그러고보면 마케팅을 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일을 때려친 이 상황에도 여전히, 이 경쟁적인 자본주의 시장의 꽃은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 마케팅이이야말로 시장의 꽃이고 화룡점정이다. 이 개성 넘치고 자유분방한 동시대인들에게서 단 하나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면, 정말이지 불가사의할 정도로 모든 것을 '산다'는 데에 있는데, 이제 사람들은 Needs를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물건의 '기능'을 구매하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사랑, 슬픔, 기쁨, 재미, 광란, 휴식, 여유, 안도, 자격, 존재 이유, 미래에 이르는 모든 '가치'를 소비한다. 내가 소비하는 것으로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I consume, therefore I am.' 의 시대. 스타벅스는 그냥 테이크아웃 커피를 팔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흔히 알려진 바대로 문화와 공간과 판타지를 팔았고,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스타벅스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 입맛과는 별개로 그 당시 스타벅스에서 취한 마케팅 사례와 그걸 가능하게 했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손에 들어오게 되는 제품이 정말로 너무나 대단해서, 마니악한 관점에서조차 자타공인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리고 역으로, 마케팅이 없어도 제품은 매대 위에 올려두면 언젠가 팔릴 것이다. 어떤 디자인을 입히고, 어떤 이름을 붙이든, 생산 관리 잘 하고 영업 잘 하고 그러면 어쨌든. 그러나 그
'어떤'을 찾는 것. 정확히 그 순간에 적정하게 들어맞아, 사람들의 필요가 아니라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그 '어떤' 의미의 옷을 입히는 것. 다른 것보다 내 제품이 당신에게 더 특별할 수 있음을, 신뢰할 수 있게 하고, 혹은 그런 독보적인 의미와 개성을 가진 브랜드와 제품을 만드는 것.
('Shut up and take my Money!'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거) 경영학 개론 수업을 들으면 거의 모든 교수님들이 "What is Marketing?" 이라고 화두를 던지는데, 그 때는 그냥 그런갑다 하고 들었지만 지금이라면 미욱하나마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나 제품이 가장 우수한 상품인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팔리는 것에는 언제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마케팅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고, 새로워봤자 거기서 거기인 것은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새로워질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내, 그 브랜드를 사는 사람들의 삶에 기여할 수 있는 '어떤 가치'를 투영시키는 것이 궁극적으로 마케터가 지향하는 방향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것을 지향하고 있다면,
내 관심사가 그래서 이렇게 보이는지는 몰라도, 결국 어떤 각도에서는 기업 활동이나 예술 활동이나 일맥상통한다. 새로운 가치와 접근 방식과 표현을 찾아내는데 있어 인식의 프론티어에 있느냐, 시장 좌판에 있느냐의 차이고, 작품을 만드느냐, 히트상품을 만드느냐의 차이이며, 평가의 기준이 한쪽은 다소 추상적이라면 다른 한쪽은 팔렸나 안 팔렸나, 숫자로 바로 나올 뿐이다. 안 되면 무능력한 사기꾼 장사치지만, 잘 되면 능력있는 예술적 혁신가인거지. 한 끗 차이다.
L모생활건강의 마케터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더니 나를 잘 알던 친구 중에 하나가 "어떻게 넌 네 이상과 현실과 재능을 묘하게 만족시킬 것 같으면서도 어느 것 하나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는 묘한 포인트에 갔냐"고 했었다. 나한테서 뭘 봤던 거냐며 그 때는 그냥 웃었는데, 지나고보니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적인 행동패턴과 현실 인식, 능력, 지향점을 고려할 때 각각 80% 정도는 만족시킬 수 있을 곳에서, 운이 좋다면 내가 그 브랜드에 부여한 가치가 의미있는 결과를 가져오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물건이 아니라 가치를 팔아 그 대가로 돈을 벌어오는 것이 마케터가 할수 있는 일이라면,
그래서 개인적으로든 브랜드로든 이상과 현실의 밸런스를 맞추고, 궁극적으로는 세상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되, 그것이 아주 아주 아주 현실적인 공간에서 실질적인 해결 방안으로 실행될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게 아마 내가 자신을, 완성시켜가는 방식인 것 같다.
단지 아무 분야에서나 그러고 싶은 건 아니고. 내 디저트, 그러니까 취향의 방향타는 위의 '밥'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이미 오래전에 정리가 끝나서 제법 확고하다.
'아름답거나, 새롭거나, 독특한 것'으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 솔직히 말야, 내가 이제, 그래도 사람이 관대해져서 저 세가지를 다 만족시키지는 않아도 돼. 셋 중에 하나만이라도 부합하면 한다고. 그래서 예술 경영 외에 주목하던 산업이 화장품, IT포탈 서비스, 기타 몇가지가 더 있는데...
근데 이 회사는 내게 화장품만 빼고 다른 모든 걸 팔게 했지-_-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이나 똑같다고 말하지마. 10대와 20대의 대부분을 BEAUTY의 정체와 실재와 욕망에 대해 파헤치는데 쏟았던 내 백그라운드가 당신하고 같음? 지나고 생각해봐도 나한텐 천지차이로 다르다고. 음대생한테 아무 화음이나 누르고 이게 무슨 음이냐 물어보는 것과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는 것 만큼의 차이가 있단 말야. 일이 힘들고 고달프고 잡스러운건 어딜가나 다 똑같은 거 나도 알아. 3년 8개월이면 내가 참을성이 없거나 현실인식을 안하고 있었던게 아니야. 무슨 일을 하든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하려면 99%는 어차피 그런 거라는거 안다고. 하지만 마지막 그 1% 에 인생을, 목숨을, 의미를 거는 거잖아.
후........그래...그 마지막 1%가 항상 문제지. 나의 그 포기할 수 없는 1%. 취향의 한 중간에서 채취할 수 있는 영혼의 에센스. 거울에 비추어 볼 때 내가 가려고 했던 길도 별로 틀린 길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마찬가지로 그게 그렇게까지 유일하게 의미가 있는 직업군은 또 아니니까. 지루하게 설명해두었지만 이유는 뭐든 같다붙이면 되는거라, 비슷한 걸 찾자면 또 여러가지가 나온다. 어쨌든 이 다음에 무언가를 한다면 그 1%를 충족시킬 수 있는 뭔가를 할 것이다. 그게 포기가 안되는 인간인걸. 여기에 더 쓰지는 않겠지만, 원점에서 돌이켜보자 스스로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정리가 되었고, 무엇에 강점이 있고 무엇에 약점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내 안의 어떤 부분에 두려움과 망설임이 있고, 또 어떤 부분에서 희망과 가능성을 찾아내는지도.
다행히도, 정말은 그 어떤 순간이라도, 의미 없는 시간이란 없었다. 설령 그 당시에는 아무것도 없이 버려야할 것 같은 경험이라도, 사물에 이름을 붙이던 최초의 인류가 그러했던 것처럼, 의미는 찾아서 부여하면 그것만으로도 가치있어지게 마련인 것이다.
4. 지금은 조각모음 중
5. 한번에 하나씩 실험하기
6. 먼 길이 될 것이나
7.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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