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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파트너가 좋은 101가지 이유 ㄴ영화/드라마/애니


...아래 글에 야심차게 예고를 했더니만, 어제 다 쓰고 업로드 버튼 누르고 나서야
이글루가 접기 태그 없앤지가 한참 됐더라.

150메가 정도 되는 움짤을 모아 모아서 버벅이는 컴과 모니터를무릎쓰고 꾸역꾸역 올려놨더니
태그가 하나도 안 먹혀서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네이버로 다시 하나씩 옮겨가야했다.

마음의 고향은 이글루스지만, 세상에 몇년 내내 접기 태그 하나 복원을 안 시키고 있다니
서비스 운영할 의지는 있는 건지 잘 모르겠고
다시 블로그 운영할까 하던 참이었으나, 이젠 너무 SNS환경에 익숙해져버려서
길고 버벅거리는 블로그가 되게 구시대적으로 느껴지고 그런다.

쓰는 데 열흘, 업로드에만 꼬박 하루 걸린 리뷰(의 탈을 쓴 편파적 감상문)은
아까우니까 이쪽으로 링크합니다.

수상한 파트너가 좋은 101가지 이유(클릭)


오... 일상: 어딘가 다른 인생

오...날짜 보고 쇼크 받았다.
이렇게까지 아무 것도 안 쓰고 있었다니. 만으로 2년인데?

트위터(@theladywitch)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만, 꼬박꼬박 들어와서 안부인사 물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생업이 바빠 몇 년 못 돌봤더니, 이 블로그가 이렇게 되기도 하네요.

링크용으로 좀 긴 글 걸게 있어서 잠시 뒤에 새 글 올라올 건데,
너무 느닷없는 거 아니냐, 놀라지 마시고
늘 살던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럼..모두 더운 여름 에어컨의 가호를 받으시길.



...


하도 글을 안 썼더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식음을 전폐하고 슈퍼 워커홀릭이 되어본 결과
얻은 것은 목 디스크의 전조
집은 회사의 대기실이며
카톡은 업무의 연장

헤세가 말하길 세계는 불완전한 진창같아서
가치있게 만들기엔 사랑과 신념을 필요로 한댔는데
흘러가는 시간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갈 곳 잃은 사랑이라도 쓸어부어 만든 것에 가치가 있으면 좋으련만

옆집에는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홀로 동떨어진 세계에서 아둥바둥하는 날들은
좋지도 나쁘지도,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
돌파구를 찾기 전에 뭔가가 즐겁게 여겨지는 날이 오기는 올런지

극장에서 본 영화가 50편을 돌파했는데,
인상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킹스맨과 미임파 뿐
아름다운 것을 탐하는 것 외에 가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지니
영화보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구나




어벤져스2: 에이지 오브 귀여운 울트론 버닝의 전당:스타트렉/마블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영화가 전체적으로 마구 정줄 놓고 좋아하기에는 좀 께름칙한 부분들이 있어서 머리 풀고 달릴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텐션이 늘어지는 부분은 눈 감고 졸고 있으면 그런대로 볼만하다. 솔직히 직전까지 상영하던 킹스맨이 신개념 오락영화로서 너무 뛰어났고, 그 음악적인 연출과 춤추는 듯한 액션이 매우 아름다웠기 때문에 매튜본이 있는 곳을 향해 삼보일배라도 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그 배가 넘는 물량을 투입하고도 그만큼 흥이 안 나는 구성을 했다는 점에서 지난 2년 간의 기다림을 보상하라고 마블에 땡깡이라도 부리고 싶다.



* 게다가 뜬금포로 예고없이 터지는 커플링들이 너무 많아서, 영화 보는 내내 정작 관객으로서 좀 소외되는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엄청 친했던 고교 동창을 10년만에 만났는데, '너 결혼은 안하니?'라고 물어보려던 참에 '나 결혼했어. 애가 5살이야. 다음 달에 한 명 더 태어나'라는 말을 선빵으로 맞는 기분과 흡사하다. 입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뭐임마, 나한테 청첩장도 안 보내고 결혼을 해? 그거 무효야'라는 말을 한 100번쯤 하고 있는 상황. 더 심한건, 그런 커플이 여럿이라는 거다. 하, 짜증나. 지구나 지켜. 원래 커플링은 관객이 시키는거고 늬들은 그냥 서 있으면 되는거라고. 영화 말미에 호크아이가 보내주는 아이 사진에 대고 'FAT' 한마디를 날리는 블랙 위도우의 표정이야말로, 영화를 관람하고 스크롤이 올라갈 때의 내 얼굴과 같다.



* 이렇게 말하지만 이미 3번 봤다. 그래 내가 마블의 ATM이다.






* 그건 그렇고, 울트론은 완다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최소 애지중지함.
  완다와 등장하는 거의 모든 장면에서 완다만 신경 쓰고 있음.


의혹 1. 탈출하자마자 소코비아로 날아가서 완다부터 찾음
          (우리 시간을 낭비하게 했다간, 하는 대사를 봤을 때 막시모프 형제가 얘를 부른 게 아님)


의혹 2. 무기밀매상(?)이 갑오징어니 뭐니 하며 완다를 갈구니까 등 뒤에서 밟아주질 않나,
          싸움질 하는 와중에도 완다에게만 정신 붕괴시키라고 언질을 주질 않나.
          너 피에트로한테 따로 말 걸긴 하냐? 아, 어린 시절 얘기할 때 하긴 했군.


의혹 3. 자아의식 업로딩할 때, 완다가 그의 꿈을 읽고 기겁하자,
          흡사 큰 실수를 들킨 남친과도 같이 중언부언 변명하려는 그 모습...


확신 4. "완다, 여기 있으면 너도 죽어."


이 로봇생명체의 이해할 수 없는 친밀감과 완다를 향한 다정함은 왜일까. 처음 등장할 때 꿈을 꾸고 있었다고 했지. 하이드라한테 실험당하고 있을 때 완다 덕분에 좋은 꿈이라도 꾸었느냐. 그래서 깨어나자마자 이번에는 완다의 꿈을 이뤄주겠다 생각하기라도 한 것이냐 - 그런 답잖게 낭만적인 생각이 들 정도의, 악당이라기엔 정석에서 핀트가 많이 나간 악당이라......


사랑이 지나쳐서 인류를 멸종시켜버리고 싶어하는 악당이라니.
상상을 초월하는 미친 놈 아냐 이거...라고 말하면서도 의외로 보면 볼수록 이상한 매력이 있다. 좀 귀엽기도 하고.




* 하여간 로맨틱한 미친 놈나이브한 착한 놈의 조합.
울트론과 비전을 섞어서 도로 합치면 토니 스타크이거나, 좀 착한 토니 스타크일 것이다.




* 여러 면에서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토니 스타크 vs 토니 스타크의 다양한 변주와도 같다. 일단 울트론부터가 토니의 판박이. 그렇게 열심히 자기 복제물을 손수 만들고 있는 빌런은 본 적이 없어. 어디서 많이 본 성실한 엔지니어 히어로 같아. 지구를 박살내려고 그렇게 열심이라니, 지구를 지키려고 그렇게 많은 버전의 아이언맨 수트를 만드는 누구 같잖아. 울트론도 분명 토니가 아이언맨 수트 개발할 때 중간 중간 찍었던 실험 비디오처럼, 비디오 찍어둔 게 있을 것 같다. 배운 게 그 가락이라, 그렇게 했을 것 같음.


여튼 완다가 지적한대로, 울트론이 가진 특질 중 많은 부분이 토니에게서 기원한다고 볼 때, 외재화된 자기 자신과의 대면, 그랬을 때의 위화감과 대응 같은 면이 부각됐다면 재미있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좀 더 색다른 성찰물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다른 많은 면에서 빠르고 섬세하고 명석한 토니지만, 의외로 그걸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일례로 아프리카에서 토니가 헐크를 다루는 방식이야말로, 그가 두려워하는 힘에 대응하는 방식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부득이하게 헐크를 제압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토니는 더 나은 기술, 더 강한 힘을 추구한다. 헐크 버스터를 만들고, 베로니카를 만들고, 심지어 빈 빌딩을 사서 그 안에 추락시키기까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최선을 다해서 택하는 방법들 모두가 더 큰 혼란과 파괴를 불러온다.


그러나 그가 저지른 모든 깽판이 무색해지도록, 블랙 위도우는 말 한마디와 손짓 하나로 헐크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 그런 류의 발상은 돈 많은 천재 엔지니어인 토니 스타크로서는 불가능한 지점이다. 매우 한정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이나, 나이브한 박애로는 해결되지 않을 때, 인생의 대부분을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으로 해결해 온 캐릭터니까. 울트론이 어벤져스에는 없는 '완벽한 조화'라며 복제된 울트론들과 함께 인류의 진화를 꿈꿀 때, 그 진화의 결말이 지구의 종말이라는 점과, 어벤져스 내에 다양한 의견이 있음에도 토니 자신이 듣지않고 독단적 밀어붙이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았을텐데.


근데 뭐 그러고도 사람이 안 바뀌니 시빌 워가 결국 일어나겠지.




* 안전가옥씬은 진짜 별로다. 호크아이가 전편의 요원스러움을 덜어내고 제레미 레너를 탑재하고 나오는 바람에 전문 요원이 아니라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판에 가정집이라니. 이번 영화에서 제레미 레너가 나오는 부분을 거의 다 들어내고 싶지만, 그 중에서도 워스트라면 '안전 가옥에 제레미 레너가 있는 씬'이다. 제발 꺼져줬으면. 간결하게 만들면 내 인생을 좀 덜 낭비해도 될텐데.


뭘 상징하고 싶은지는 안다. 둥지 안에 있는 호크아이. 내가 있을 자리, 내가 받아들여질 장소. 블랙 위도우가 꿈 속에서조차 절규하는 '세상에 없는 나를 위한 장소'이자, 전쟁이 끝나고 돌아갈 곳이 사라진 병사 캡틴 아메리카가 가지지 못한 불안감의 실체. 너희들이 원하는 건 대단한게 아니라 이런 거라고 말해주고 싶은 거였겠지.



하지만 너무 TYPICAL해.
표현방식 자체가 좀 뭐랄까 굉장히...
every man's fantasy 아니냐고..19세기인 것도 아닌데.



물론 세상 속에서 나의 자리, 중요하지. 그러나 내가 여기에서까지 '내 힘의 근원은 가족에 대한 thㅏ랑' 같은 걸 보고 싶은게 아니라고. 인류 역사가 반만년쯤 됐으면 이제 좀 다른 방식으로 얘기해도 되지 않은가 말이다. 박력 넘치게 판타지 액션물의 21세기적 신기원을 열었던 시리즈에서 그런 구태의연한 표현 방식 별로 보고 싶지 않다.



* 3번쯤 보니 코스텔의 가족이 영화 내에서 계속 나온다. 맨 처음에 소코비아 장면에서도 등장하고, 후반부 전투 장면 동선 따라가면서도 계속 보임. 호기심 많고 민폐 끼치는 아이고, 이 또한 티피컬한 가족/희생 모티프로고. 하여간 제레미 레너 나오는 부분들을 다 들어내버려야 한다. 영화가 쿨해지지를 못해.



* 울트론이 하는 말 중에 이해 안 가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블랙 위도우를 데려왔을 때, 어쩌구 저쩌구 'because you made me wounded' 그러는 부분. 직전에 서울에서의 전투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연이 따로 있는 것인지 오늘도 대사를 놓쳐서 궁금하다. 그리고 그 때 블랙 위도우가 좀 과하게 화들짝 놀라지 않나 싶기도 하고.



* 폴 베타니 잘 생겼는데. 그 잘생긴 배우에게 그런 도색을 한 건 분명 자비스의 실수일 것이다. 아이언맨 수트에 맨날 빨강만 칠하다보니 빨강이 좋은 줄 알았던 걸까. 흑흑. 자비스 아니야 그거. 그거 아니야.



* 앞서 말한 다양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울트론과 비전 캐릭터는 그걸 상쇄할 만큼 매력적이다. 바로 며칠 전에 태어났음에도, 오랜 옛날부터 있었던 것처럼 고전적이고, 동시에 사고를 전개하는 방식은 인간과 같지 않아서 새로운 면이 있다. 가장 인간에서 멀 것처럼 보이는 존재들이,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욕망의 두 축을 대칭적으로 이루며 행동 방식이나 정 반대의 선택을 한다는 것도 흥미롭다. 난 왜 이런 애들한테 꽂히는지 모르겠는데...주로 이런 애들한테 꽂혀왔지, 참.




오늘은 여기까지.


하데스 in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6 창작: 상상의 서고



껄껄, 예상 외로 자꾸만 길어지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하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머물라는 말 외에 달리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사라진 왕을 기다리던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손에 들었다. 시간을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뭔가를


해야만 했다.


   어느 새 그는 지하세계의 영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둘러싼 공간에는 잔잔하게 퍼져나간 음파의 흔적이 남았다. 일렁이는 공기에 영혼들이 기분 좋게 흐느적거리며 자취를 남겼다. 그 중 어떤 영혼들은 단순히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것뿐 아니라, 뭔가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음조가 바뀔 때마다 안개처럼 부연 주변에 이미지들이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그 찰나의 환영들은 이곳에 사는 누구라도 보기 드문 풍경을 만들어냈는데, 그런 것을 처음 본 악사 역시 마냥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듣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노래.


   이윽고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바로 잡았다. 아폴론의 축복을 받았다는 길고 예민한 손가락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가느다란 줄을 어루만졌다. 노래는 평범하고 고요하게 들렸다. 어찌 보면 리라가 연주를 하고, 그는 그저 손을 얹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정하고도 맑은 음색이 조용히, 계속해서 퍼부어졌다. 돌아보지 않는 사람을 향하는 첫사랑과도 같이. 혹은 홀로 걷는 날 옷자락을 적시는 빗방울처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음표들은 어두운 빈 방에 켜진 촛불인양 꺼질 것 같으면서도 그치지 않고 깜빡였다.


   목소리를 들은 영들은 제각기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하게. 멈춰버린 순간의 영원 속에 사는 그들에게 그럴만한 무언가가 많지는 않을 텐데도 말이다. 어떤 이들은 어머니의 얼굴을 불러왔고, 또 어떤 이들은 오래 전에 떠난 고향을 불러왔다. 충직한 애완견이나, 여름철 이마를 식혀주던 낯익은 손길을 불러오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주변을 제각기 다른 그림으로 번갈아가며 물들였다.


   하데스가 돌아왔을 때, 눈에 바위에 걸터앉아 리라를 조율하고 있는 오르페우스의 곁에는 낯선 장면들이 펼쳐져 있었다. 악사는 폭발하듯 명멸하는 그림들 속에 둘러싸인 채 그것들 하나하나를 제 것처럼 보고 있었다. 이는 그토록 오랫동안 저승에 있으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기도 했다.

   왕이 물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노래를 불러보았습니다.”
   “노래? 무슨 노래를 했기에 이렇게 된 것이냐.”


   떠오른 환영들이 다들 제각각인 것을 보며 왕이 흥미로워 하자 오르페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움에 대한 노래였습니다.”


   하데스는 의아해했다.


   “나는 그대가, 굳이 말하자면 사랑에 대한 노래를 불렀을 줄 알았다. 연인을 찾겠다고 여기까지 왔으니.”
   “노래는 듣는 사람을 위해 불러야 하는 법이지요. 위로의 노래라면 특히.”
   “그런데?”
   “평생 사랑을 모르고 지낼 수는 있어도, 그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하고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규칙하고 중구난방인 환영들도 설명이 되겠어. 그가 손을 들어 일렁이는 자취들을 어루만지자, 그들은 꿈틀거리며 오르페우스가 앉아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대를 좋아하는군.”


   기억들은 몹시 연약해서 작은 손짓에도 쉽게 흩어져버렸다. 아쉬워하는 하데스의 얼굴에는 처음 보았을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오르페우스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에우리디케를 만났는지, 만났다면 잘 있는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슬퍼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나 보채지는 않기로 했다. 하데스의 심기를 거슬러서야 될 일도 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르페우스는 특유의 친근한 말솜씨로 대화를 시도했다.


   “죽음 뒤의 세상은 어둡고 칙칙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보통 그렇게들 생각하지.”
   “끝없는 비명이나 비탄이 울려 퍼지고,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늪이 가득하다든가.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모든 것을 잊은 채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라든가.”
   “실로 어떤 이들에게는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이들을 볼 수 있어 조금 놀랐습니다. 지하의 주인께서는 퍽 다정하신가 봅니다.”


   마지막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하데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별 이상한 아첨이 다 있군.”
   “가장 소중히 여기는 기억 한 가지 정도는 남겨주시는 것 아닙니까?”


   잠시 고민하던 왕이 지나치게 낭만적인 해석이라며 설명했다.


   “레테의 강물이 많은 것들을 지우기는 하지만 무엇을 기억하든, 혹은 다 잊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앗아가는 것도 내가 아니고, 남기는 것도 내가 아니야.”
   “그렇습니까?”
   “하지만 불행한 기억이 많을수록 견디기 힘드니까 대부분은 모두 지우는 것을 선호하지. 아주 드물게 불행한 기억을 감수하고라도 중요한 순간을 남기고자 하는 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요구가 정당한 경우에 한해서지만.”


   이를테면 평생 악한 짓만 하던 자에게 행복했던 기억만 남겨주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냐는 말에 오르페우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선행과 악행이 뚜렷하지 않거나, 비슷한 정도일 때는 어떻게 됩니까?”
   “호기심은 대체로 미덕이지만,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은 좋지 않아.”
   “감히 저승의 비밀을 풀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 그래야지.”


   왕이 말을 가로막자, 오르페우스는 화제를 바꾸었다.


   “다만 오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었지요. 이런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는 모험보다 한시 빨리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종종 있지, 그런 이들이 - 사랑의 실패로 종종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이들을 보아 온 하데스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찾아온 것은, 삶이 죽음보다 낫기 때문이냐.”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오르페우스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만약 어떤 잘못 때문에 오랜 시간 벌을 받게 된다면, 가장 효과적인 형벌은 그녀와 저를 갈라놓는 것일텐데, 그걸 당신이 알까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걸 내게 말하는 건가?”
   “이제 와서 숨길 도리가 있겠습니까?"


   오르페우스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자, 하데스는 짐짓 미소지었다. 이런 식의, 살아있는 자와의 대화는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나는... 그대가 모험가 친구의 영향을 받아서 온 거라고 생각했네만.”
   “모험가 친구라시면..”
   “아르고 호를 탔었지 않나. 황금 양모를 되찾겠다던 이아손의 함대에는 헤라클레스도 있었으니 알겠지.”
   “그에게서 저승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헤라클레스의 영웅담은 보잘 것 없는 제 이름의 몇 배나 더 유명하고 용감했으니까요.”
   “그는, 아주 무례한 자였네.”


   하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영웅은 무슨, 법칙이란 법칙은 다 무시하고 공명심에 가득 차 힘을 휘두르는 망나니 같은 자였다고 치를 떨며 말하자 오르페우스의 표정은 불시에 어두워졌다. 뭐라도 좋으니 말을 붙일 수 있을 만한 대화의 끈을 놓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데스가 다음에 한 말은 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여기서 무슨 일을 저질렀든, 위에서 인간들이 서로를 어떻게 불렀든 개의치 않아. 시간이 지나 수많은 죽음들 사이에 서면 그도 마침내 공평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건에 지나지 않을 테니. 내가 관심이 있는 부분은 오직 하나지.”



   저 위에서 무엇을 했나
   그래서 어떤 대우가 합당한가



   “나는 인간들의 모험담은 잘 모른다. 너희들 사이에서 통하는 명예와 명성을 내가 왜 알아야 하지. 다만 내가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배 위에서 자네가 노래로 이긴 세이렌 때문이야.”


   어째서냐고 묻는 얼굴에 하데스가 말을 이었다.


   “그는 바다를 다스리는 내 형제가 가장 자랑하던 가수였네. 잃고 꽤 오랫동안 아까워했어.”
   “아...”
   “서로의 얼굴도 잊을 만큼 오랜만에 와서 대뜸 한다는 소리가 ‘살려내’였으니 알만하지.”
   “그 때, 그건 모두를 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한 것으로...”
   “동기는 상관없네. 어쨌든 나는 그도 돌려주지 않았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
   “청원하는 자가 설령 신이라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지.”


   절로 침통한 표정이 지어졌다. 저승에 도착해 몇 개의 강을 건너면서도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가졌던 오르페우스였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가. 지하로 가는 길을 알고, 변변찮은 재주로 왕을 독대할 수 있는 자리까지 왔으나, 왕은 자신의 예상을 넘어서는 아주 논리적인 자였다. 차라리 윽박지르고 겁을 주었다면 악을 써서라도 맞섰을 텐데. 왕은 자신보다 더 많이 살았고, 더 많이 알았으며, 또한 누구보다도 욕심이 없었다. 그 어떤 괴물을 마주했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 두려웠다. 신이자 형제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왕을 과연 어떤 말로 설득할 수 있단 말이지.


   “왕이시여.”


   오르페우스가 간청했다.


   “부디 제 노래를 들어주십시오.”
   “......"
   “오직 진실과 진심만으로 부르겠습니다."


   눈앞에 무릎 꿇은 청년을 내려다보며 왕은 생각했다. 앞서 냉정히 자른 말과는 달리, 사실 오르페우스의 명성이라면 이곳 저승에서도 자자한 편이었다. 먼저 이곳에 당도한 아르고 호의 선원들 중에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수가 더 적었다. 내용도 가지각색으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고된 뱃길도 미풍이 부는 비단길처럼 느껴진다던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준다던가, 또는 눈앞에 있는 자가 누구든 금방 사랑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던가. 심지어는 예의 그 세이렌조차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말할 때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에 심장을 쥐어뜯으며 비참해했기에 결국 레테의 강물을 다 마시고 말았지만.


   허락이 떨어지면 금세라도 리라를 켤 것처럼 손을 올리고 있는 예인을 보며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이 자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없이 올라가던 그 입매가. 그 무한한 호감 또한 이 노래로 산 것일까. 그 눈에 가득 담겨있던 확고한 신뢰와 애정은 이 자의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동시에,
   듣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이름만큼 실력이 있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지. 에우리디케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럼에도 하데스는 오르페우스가 제 앞에서 노래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이 부른 노래 정도에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지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또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어서 아예 듣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 그 뿐, 한 개인의 편이 되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찮은 재주로 나를 현혹하려 들지 마라. 나는 다만 공정하고 싶을 뿐이니.”


   지하의 왕이 오르페우스를 향해 못 박았다.














....
물론 하데스가 헤라클레스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습니다.
반신반인인데다, 제우스가 나중에 거둬가서 신으로 만들었나 별자리로 만들었나 그렇거든요. 낄




Two Holmes : 전쟁과 평화 6 버닝의 악당:BBC 셜록


1편은 여기





   “이런, 이런.”


   머그잔에 가득 담긴 홍차를 마시며, 다른 한손으로는 결혼식 시간표를 보던 존이 입을 열었다.


   “신랑 신부의 왈츠 타임이라니, 누가 이런 걸 집어넣은 거야?”
   “메리가 이것저것 하자 그럴 때 옆에서 계속 고개 끄덕거리고 있었잖아. 조는 건줄 알았으면 깨워줄 걸 그랬군.”


   셜록이 낮은 목소리로 대꾸하자, 존이 목소리를 높였다.


   “나 춤 못 추는 거 알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안 말리고 뭐했어.”
   “나 없는 새에 배웠을 수도 있잖나. 그러기엔 충분한 시간이었고.”


   셜록이 사려 깊은 척 빈정댔으나, 존은 그 정도 투덜거림에는 익숙했다. 그는 그저 다가올 고난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허, 이런 거 해본지 너무 오래 됐는데.”
   “그래?”
   “졸업식 이후로는 한 번도 춘 적이 없단 말야.”


   이봐, 메리한테 뭐라고 말해야 그냥 넘어가줄까. 그렇게 말하는 존이 웬일로 진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셜록은 약간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내 그는 비협조적이던 태도를 바꾸곤, 대수롭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흘렸다.


   “연습이 필요하다면 도와줄 수는 있어.”
   “네가?”


   존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간단한 스텝이라면.”


   그러고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바로 일어난 셜록이 거실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허리를 곧게 펴고 팔을 드는 폼이 제법 그럴싸했다. 존은 미심쩍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켜 미적미적 다가갔다. 가까이 오자, 셜록은 자연스럽게 팔을 여성 포지션으로 바꾸었다.


   “이, 이렇게 하는 거였나?”
   “리드는 하되 팔에 힘은 좀 빼고. 그래, 그렇게.”


   항상 왼발이 먼저지. 구보와 같아 - 천천히 기본스텝에서 시작해서 방 한 바퀴를 다 도는 동안, 존은 몇 번인가 셜록의 구두를 밟았다. 그 때마다 존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네 키가 너무 커서 보폭 조절을 못 하겠는 거라며 툴툴댔다.


   “썩 나쁘지 않은데.”
   “무슨 소리야. 박자를 하나도 못 맞추겠는데.”
   “연습 조금 하면 될 거야. 잊어버렸다더니 잘만 하는군.”
   “너야말로, 이런 건 언제 배워둔 거야?”


   사건현장에서 춤출 일은 없을 텐데, 라고 생각하던 존은 셜록이 행인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숨어들기 위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잡기들을 떠올렸다. 그다지 어울리는 종목은 아니었지만, 그런 기술 중의 하나로 왈츠가 있는 것이 아주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듣게 된 대답은 존의 예상을 벗어났다.


   “어릴 때 배웠어. 교양으로.”
   “여자 스텝을?”
   “남자의 반대일 뿐인걸. 어려울 것 없지.”


   존은 문득 누가 셜록에게 춤을 가르쳤을지 궁금해졌다. 설마하니 마이크로프트가. 그 양반도 춤추는 게 상상되지 않는 족속인 건 매한가지인데. 그는 잠시 크리스마스 이브에 월등히 키 차이가 나는 꼬맹이 둘이 서로 손에 손을 맞잡고, 부모님과 친척들 앞에서 빙글빙글 돌며 우애를 자랑해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아니야, 아니지. 그보다는 서로 발을 밟기 위해 필사적이었을 게 틀림없어.

   존이 무슨 상상을 하는지 알아 챈 셜록이 불쑥 내뱉었다.


   “예상을 깨서 미안하지만, 난 원래 춤추는 걸 좋아해. 마이크로프트와는 전혀 다르다고.”
   “완전 금시초문인걸. 전혀 몰랐어.”
   “바이올린만큼 좋아하지.”


   사건이 안 풀릴 때면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은 꽤 보았지만, 춤추는 모습을 본 적 없는 존이 되물었다.


   “한 번도 보여준 적 없잖아.”
   “스텝을 외우는 것보다 호흡을 맞추는 게 중요한데, 혼자 출 수는 없으니까.”
   “흠, 그도 그렇지.”


   존이 낄낄 웃었다.


   “나처럼 사람이 있어도 못 추는 것보단 그게 낫지 않아?”
   “자네는 금방 잘 추게 될 거야.”
   “그럴까?”


   누구하고도 호흡을 잘 맞추니까 – 라고 말하려다가, 셜록은 말을 바꾸었다.


   “난 좋은 선생이거든.”
   “음, 확실히 좋은 선생이긴 하지. 완벽한 반면교사랄까.”


   언젠가 아이가 태어나면 너처럼 사회성 없이 키우지는 않을 거라며 픽픽거리는 존을 향해 셜록은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천천히 두 사람의 발이 거실 한 중간에서 멈추었다. 상대의 어깨에 얹고 있던 손으로 존의 손을 그러 쥔 셜록은 고개를 숙인 채 머뭇거렸다.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존.”
   “...어, 어?”
   “미안해.”
   “저기, 농담이었는데.”
   “진심으로.”


   존은 잠시 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방금 전 왈츠의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생각했다. 그는 이런 타이밍에, 이런 식의 사과를 받을 것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의 키를 월등히 뛰어넘는지라 등 뒤에 서면 앞을 잔뜩 가려버리는 덩치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숙인 친구는 지금 매우 작아보였다.


   “정말로 미안한 건, 그 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는 거네.”
   “......”
   “그리고 만약 다시 그 때로 돌아간대도, 아마 똑같이 할 거라고 생각해.”


   그게 나니까.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제거하고, 그 조직까지 없애버릴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연관된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이니까.

   그러나 돌아온 자신을 보고 존이 화를 냈을 때, 그는 처음으로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자신의 선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그게 과연 '옳은' 방법이었을까. 마이크로프트와 자신이 선택한 ‘가장 좋은’ 방법이 가장 옳은 방법이기도 했던 걸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2년 동안 자네는 나를 떠난 적이 없었지.”


   너는 내가 가는 곳 어디에나, 그리고 언제나
   완벽한 기억의 형태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2년 동안 외롭지 않았네.”
   “......”
   “뭐, 혼자 있을 때면 조금 심심하긴 했지만.”


   그래서 보이지도 않는 마음을 다치게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외로움이라는 건 일반적으로 사람이 혼자가 되었을 때 느껴지는 공허감을 매우 낭만적이고 자기 위주로 포장한 감성적 표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게 정말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는 채. 마이크로프트가 잘 맞지도 않는 자신을 끝내 곁에 두려 하고, 모리아티가 왜 그렇게 자신을 죽음으로까지 얽어매려 했는지도. 아마 그들은 영원히 그 단어의 정체를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거짓말쟁이 앞에서 되레 자기가 더 미안하다는 얼굴로 올려다보는, 이런 존재가 그들에게는 없으니.


   알 수 없는 이유로 목이 메어와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정말은 다른 말이 하고 싶었다. 이렇게 미안하다는 말이 아닌 다른 말. 정말 미안하게도, 존을 만나면 하고 싶었던 말들의 리스트의 어디에도 미안하다는 항목은 없었다. 애초에 자신 같이 감정이 희박한 사람은 존이 받아야 마땅할 만큼의 사과 같은 것은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그런 불확실하고, 측량할 수도 없고,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할 수도 없는 감정을 넘겨짚어 아는 척, 이해하는 척 하는 그런 거짓말 대신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 만나게 되어 좋았고, 2년 만에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고, 네가 그동안 살아 있어서 기뻤고,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말.


      네가 너라서
      항상 너여서
      그 때 그 옥상에서 하지 못했던,
      고맙다는, 그런 말.



   그러나 이 반사교적인 성정의 소유자는 그런 말은 다 접어둔 채, 이제 와 무슨 그런 소릴 다 하느냐며 멋쩍어 하는 친구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마는 것이다.


   “다행이야. 네가 나 같은 괴짜를 베스트 맨으로 선택하는 심히 반사회적이고 괴팍한 성격이라.”
   “뭐야?”
   “레스트라드는 우릴 보고 정반대라고 하는데 말야, 사실 우리 닮은 부분이 꽤 있는 거 알아?”
   “...셜록, 길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내가 너랑 비슷한 부분이 요만큼이라도 있는지.”


   내가 기대를 말아야지, 하며 존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그를 향해 박자 맞추기 영 어려울 것 같으면 언제고 맞춤 연주로 보답할 테니, 메리가 보지 않을 때 연습이나 더 해오라며 셜록이 웃었다.




~*~




   저녁 식사는 꼭 챙겨먹으라는 말을 하고 나오면서도, 수많은 물음표들이 혀끝까지 올라왔다가 삼켜졌다. 담담히 말하던 목소리가 감동적이면서도 어딘지 쓸쓸해서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 때는-이라니, 그렇다면 지금은?
      외롭지 않았다면, 고독했을까?


   너는 도대체 어땠을까? 나 없이, 괜찮았을까,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나만큼 혼자였을까? 내가 네 무덤 앞에 섰던 많은 날들 중에, 한 번쯤은 너도 그곳에 있었을까? 혹시 그렇게 오랜 시간이 될 줄은 너도 몰랐던 게 아닐까? 그래서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그것도 이미 물어볼 시기가 지난 일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것을 물어보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저 고집쟁이가 속 시원히 대답할 리도 없지만, 그에게서 기어코 답을 듣는다면 자신은 221B의 검정색 문을, 사건과 아드레날린으로 가득 찼던 모험의 집을, 흥분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가 새로워서 지난 2년간 단 하루도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최고의 시절을 결코 떠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묻지 않았다. 행간에 숨어 다 전해지지 않을 진실을 그대로 두었다. 존은 열 일곱 개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한 때는 너무나 궁금해서 숨 쉴 때마다 떠올렸던 물음표들과 가끔 자신을 짓눌러 터트려버릴 것만 같았던 시간 전체를 221B의 방 안에 고스란히 두고. 피곤한 척, 부러 열 일곱 번의 발소리를 내면서. 아무도 세지 않는 제 집 앞의 계단을 관찰하듯, 어김없이 등 뒤에서 발자국 소리를 세고 있을 시선을 마침내 등진 채로. 의사는 환자를 치유할 때까지만 필요하고, 군인은 앞으로 전진해야 했으므로.








2,3,4,5는 원래 없고요,
쓴다면 아마 6번 정도에 위치할 것 같아서 달아두는 제목입니다.
셜록 시즌 3 나오자마자 써둔 것인데, 시기는 302 정도.
퇴고 따위 없음. 방치하다 못해 파일이 삭아가고 있길래(..) 올려봅니다.


하데스 in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5 창작: 상상의 서고






   조금 걷겠냐는 말에 왕은 엉겁결에 그 뒤를 따랐다. 에우리디케는 주변을 아주 세심하게 살피며 걸었다. 나뭇가지 하나, 풀잎 하나까지 다 외우려는 듯이. 키 큰 수풀이나 큰 나무를 보면 팔을 들어 방향과 각도를 쟀다. 뭐하는 거냐고 묻자 에우리디케가 대답했다.


   “기억하려고.”
   “길을? 계속 앞으로만 걸었잖아.”
   “그게 아니라...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그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아까 우리가 출발한 데 기억나?”
   “응.”
   “거기를 시작점이라고 쳐. 계속 걷다보면 다시 거기가 나오거든. 이곳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반복되는지를 알아야 출구를 찾아도 찾을 것 같아서 말야.”
   “......”
   “아, 대체 여기는 어디길래 이렇게 생겨먹은 거지?”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애초에 출구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한 번도 고려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왕은 눈을 깜빡거리며 바라보다 불쑥 내뱉었다.


   “미안.”
   “왜?”
   “몰라, 그냥.”


   정말로 그는 잘 알 수 없었다. 죽은 자들의 세계는 응당 이러함에도, 너를 이런 곳에 한 달이나 방치해서? 혹은 네가 이런 곳에 있게 된 데에 대한 관리소홀의 책임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더라도 한 번 이곳에 들어온 이상 너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이대로는 산 채로 묻힌 것이나 다름없을 너에게 지하 세계의 진실을 말해줄 수도 없어서. 그리고 또...


   “그냥, 잘 모르겠어서.”


   하데스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흔들었다. 죽게 된 정황을 들어보니 사고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특별히 원한을 산 사람은 없는지 물어봤는데 평범한 음유시안 가정에 그럴 만한 일이 있겠냐며 도리어 갸우뚱하는 것이 딱히 짚이는 곳도 없단다. 그러고 보면 저 성격에 남의 미움 받을 만한 일을 만들고 다닐 것 같지도 않았다.

   잠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더니, 에우리디케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도 모르는데 나중에 온 네가 어떻게 알겠어.”


   그러더니 잠깐 저 쪽으로 가보자며 가리켰다. 왕은 잠시 멈칫했다가, 팔짱을 풀고 다시 곁에서 걸었다.


   에우리디케는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혼자 있더라도 가슴이 뛰고, 두려울 게 없어진다고 했다. 한 여름 모닥불가에서 부르는 노래, 계절이 다가올 때 처음 피는 꽃봉오리, 뜀박질할 때 우스꽝스럽게 들썩이는 어깨, 해질 무렵 바다너머로 펼쳐지는 노을이며 그런 것들.

   그러다가 이런 거 물어도 될지 모르겠는데, 라며 운을 띄우더니,


   “있잖아, 너는 어떻게 죽었어?”
   “...뭐?”
   “죽을 때 어떤 기분이었니?”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왕은 죽음을 겪은 적이 없었다. 애초에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이유가 없는, 죽지 않는 자이기에 지하세계의 왕이 된 것이니. 게다가 그가 모든 이들에게 칭송받는 공정함을 오랜 시간 미치지도 않고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야 말로, 그들 중 누구에게도 감정이입하지 않은 채 자로 잰 듯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 아닌가. 저승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자 - 그 특별한 위치가 그와 지하의 주민들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만들었고, 덕분에 그는 딱 필요한 만큼 무심하고 무감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데스는 문득, 자신이 인간들이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그걸로 정말 이해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내심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죽은 자의 ‘반응’은 지겨울 정도로 잘 알았지만 그들의 '기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지금껏 아무도 그에게 그런 것을 묻거나 말해주지 않았으므로 그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다. 물론 왕이 그 질문에 꼭 답할 의무는 없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왠지 핵심을 찔린 것처럼, 진짜 지하의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대답했을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갑갑함마저 느꼈다.


   침묵이 길어졌다. 그러자 뭐라고 생각했는지, 에우리디케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왜?”
   “말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도 있겠지.”
   “......”
   “괜찮아.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그러고는 되레 손을 뻗어 하데스의 등을 토닥이는 것이다. 영문을 모르고 멍하니 바라보자, 아무래도 자기가 실수를 했다고 여긴 모양인지 마구 되지도 않는 위로를 했다. 정말이야, 내가 꼭 궁금해서 물어 본 게 아니라... 궁금해서 물어본 거긴 한데, 아니 그냥 내 말은, 네가 말을 잘 안 하다보니까 내 얘기만 하게 되길래, 그렇다고 특별히 너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어야지, 그래서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싶어서 묻는다는 게 그만, 그게, 그러니까 우리의 공통점이라는 게 일단 그거 같아서,


   죽은 거.


   아, 아니, 아니, 저기, 그, 내가 지금 한 달 만에 사람 만난 게 처음이라 반가워서 말이 막 헛나와서 그래, 으아 - 왕은 점입가경으로 흐르는 내용보다도 에우리디케의 얼굴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변화를 홀린 듯 바라보았다. 혼자서 위로를 했다가, 난처해하다가, 손사레를 치다가 결국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의 입에 저도 모르게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그걸 본 에우리디케가 얼굴을 풀며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어쩌면 여기가 지옥까지는 아닐 수도 있겠다.”
   “응?”
   “어쨌든 너도 있고.”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자 인상이 한층 달라졌다. 눈이 가로로 접히며 자글자글한 주름을 만들었고, 그 아래로 예쁜 보조개가 생겼다. 하데스는 그것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또 여긴 오르페랑 맨날 오던 뒷산이니까. 생판 모르는 곳에 떨어진 것보다야 낫지.”


   그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몰려왔다가,


   “그러니까 꼭 같이 나가자.”


   스르륵 녹아서 사라졌다.








   왕좌로 돌아온 왕은 거의 울 것 같았다. 제멋대로인 에우리디케의 추측에 맞는 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넘겨짚는 솜씨가 어쩜 그렇게 없는지 하마터면 ‘그런 게 아니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라며 다 설명해줄 뻔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네가 죽은 자라는 것이, 그리고 거기 갇혀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안타까웠다.


   ‘Ἅιδης-’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그 긴 세월동안 자신을 그런 식으로 불러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눈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 한 사람도. 지하세계의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대하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자신을 삼키기부터 한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저 멀리 올림푸스 꼭대기에 살고 있는 형제와 누이들, 그리고 어머니까지도.













거 참...보고 싶은 장면까지 가려면 갈 길이 바쁜데 ㅎㅎㅎㅎ



하데스 in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4 창작: 상상의 서고







   '죽었던 기억이 난다'고, 그가 말했다.


   새벽에 누가 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서 깼거든. 곁에는 오르페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고. 깊이 잠든 것 같아 깨우지 않았어. 어차피 목이 마르기도 했으니 깬 김에 잠깐 나갔다 오려고 했지.

   밖으로 나갔는데 정원 너머 저쪽 숲속에서 인기척이 나는 거야. 그래서 갔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어. 처음 보는 종류였는데, 향기가 은은하니 정말 좋더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더라고. 그래서 몇 송이를 꺾고 있는데...


   스슥 스스슥-


   발치에서 끌리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왼쪽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차갑게 날을 세운 죽음이 발목을 휘감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선득했던, 소름 끼치는 감각.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본능적으로 움직이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발목에서 종아리, 무릎 안쪽의 움푹 파인 곳까지 슬금슬금 올라온 그것이 온 허벅지를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죄었다. 그제야 그것이 뱀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도 매우 사악한 의도를 가진.


   차마 내려다 볼 수 없었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암살자가 자신을 해할 것 같아서.
   식은땀조차 흐르지 않는, 긴 1분 1초가 흘렀다.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르페였다. 식은 옆자리를 발견하고 금세 따라 나온 모양이었다. 오르페,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그런 희망과는 달리 까치집 같이 엉클어진 머리를 한 그가 저 덤불 건너편에서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바보 같은 웃음을 만면에 가득 띤 그가 에우리디케를를 발견했다. 숨도 못 쉴 것처럼 긴장한 표정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혹은 도망치라는 듯한 절박한 눈짓. 시선을 내린 오르페우스는 그의 다리께에서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있는 황금빛 독사를 발견했다.


‘제발, 그대로 가만히 있어. 이쪽으로 오지 마.’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전하려 했지만, 그보다 오르페우스가 달려드는 것이 더 빨랐다. 그 뒤에 이어진 찢어질 듯한 고함 소리는 누구의 것인지 뒤섞여 알 수 없었다. 에우리디케는 발목에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온 몸이 굳고, 숨이 막혔다. 독사는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도 없이 빠르게 도망쳤다.


   오르페우스가 어쩔 줄 몰라 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혈을 하고, 또 급히 상처에 입을 대어 독을 빨아내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오르페우스가 목숨보다 사랑했던 사람은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그래. 확실히 그랬던 기억이 나.”
   “오...저런.”

   왕은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차분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자를 본 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지나치게 짧은 자신의 말이 다소 미적지근하고 어색해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중이었다.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는 듯,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눈을 떴는데, 이곳이었어.”


   그리고는 내처 묻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여기 지옥이니?”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하데스가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 글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집에 갈 수가 없잖아. 분명 아주 가까운 곳인데.”
   “......"


   있잖아, 하고 그는 마주보던 고개를 돌려 어떤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너머를 봐봐. 하데스가 그를 따라 눈을 돌렸다. 해가 뜨지도 지지도 않는 지하에서, 밝은 빛이 어슴푸레하게 들어오는 방향이었다.


   “너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만 걷고 있었어. 여기가 현실이라면 저 쪽으로 채 마흔 발자국을 안 가서 우리 집이 나와야 해. 그런데...”


   왕은 저도 모르게 목이 바짝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의 다음 말을 듣기가 두려웠다.


   “벌써, 한 달이 지났어.”


   순간 그 낮은 목소리에서 절절히 전달된 것은 분노였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나 질책은 하나도 없이, 오롯이 자기 자신만을 향해 있는 뜨거움.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여, 끝없이 달릴 것이나, 오직 달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그런 정직한 화.


   “만약 내가 죽은 게 아니라면, 깨지 않는 꿈을 계속 꾸고 있거나 마침내 미쳤다는 건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도 하데스는 그 눈빛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느 쪽이든 이 자는 돌아갈 생각이었다.
   자신이 죽었든, 살았든.
   이것이 꿈이든, 미친 짓이든.



   에우리디케는 침착하게, 차근차근 타오르고 있었다. 혼자서 숲 속을 달려야 했을 한 달의 시간 동안, 당겨진 불씨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그렇게 살아있던 순간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채로. 시간의 흐름이 아직도 멈추지 않아 영영 망자가 될 수 없는 자인 채로. 정당하지 않은 죽음에 힘껏 저항하는, 꺾을 수 없는 인간의 의지 그 자체를, 새까만 눈 속에 꺼지지 않을 불처럼 뜨겁게 지핀 채로.













죽은 아내 내놓으라고 땡깡 피우는 오르페우스나
죽었든 살았든 나는 일단 집에 가야겠다고 땡깡 피우는 에우리디케나..

그 정도는 되야 구하러 갈 맛도 나고 그렇지 않을까요 ㅋㅋㅋㅋ



하데스 in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3 창작: 상상의 서고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왕이 보게 된 것은 지금까지 제가 저승에서 본 것 중 가장 묘한 장면이었다. 오르페우스라는 인간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던 것은, 특별히 그의 말주변에 감동했다거나 같은 감상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팔 할 정도는 인간세상으로 치면 다분히 민원을 들어주는 공무원적 감각에 가까웠고, 덤으로 약간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저승에 산 사람이 제 앞까지 올 수 있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다니. 뭔가의 오류인 것은 확신했지만 금방 고칠 수 있는 일일 거라 여겼다. 그러니 자신이 기대하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든 지금 이 순간과는 완전히 다른, 지극히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하데스가 처음 마주한 것은 까맣게 일렁이는 밤이었다. 빛이 없는 이곳에서도 그 무엇보다 깜깜한 밤. 동시에 무엇 때문인지 이해할 수 없는 반짝임으로 깜빡이고 있는 별빛. 그런 걸 여기서 마주치다니, 왠지 형언하기 어려웠다. 인간들이 사는 모든 나라의 언어를 알고, 또 그 경계가 무의미한 왕으로써 말문이 막히는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런 순간을 대비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사람의 눈이라는 것을 왕은 잠시 뒤에야 알아챘다. 뒤로 한 발짝 물러서자, 밤하늘의 달덩이 같은 얼굴이 비로소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자는 무슨 생각인지, 왕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둘은 말이 없었다. 그저 눈과 눈만이 존재해서 영원한 순간 속에 붙박여 버린 것처럼 그렇게 서로를 볼 뿐이었다. 만약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면, 하데스는 헤아릴 수 없는 밤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마냥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 이름을 부르다니, 너는 누구지?”


   그가 물었다. 짧은 질문에는 순수한 호기심만이 담겨 있었고, 보통 저승에 온 자들이 흔히 보이는 불안이나 공포, 히스테리 같은 것은 요만큼도 들어있지 않았다. 속삭임을 어떻게 들을 수 있었는지를 더 궁금해 해야 했던 찰나에 너무나 당당하게 누구인지를 요구당한 왕은 그만,


      ‘그러게, 나는 누구지?’


   하고 항상 스스로에게 묻곤 하던 오래된 질문에


      ‘누구길래 이렇게 여기에서 너를 보고 있나.’


   같은 새로운 의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왕을 채근해오자, 무심코 대답하고 말았던 것이다.


      “Ἅιδης.


   왕에게는 이름이 많았다. 명계의 왕, 망자들의 수호자, 올림푸스의 명예로운 형제이자, 지하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지옥과 저승의 신. 혹은 죽은 자들의 주인. 그러고보니 요즘은 사람들이 제 이름이 불길하다며, 플루토라고 부른다던가. 너무 많은 이름과 수식어들 사이에 묻혀 자신도 거의 잊고 있던 이름을 툭 내뱉고 나서는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칭호나 별칭으로만 불리던 시간이 더 길었던 탓이다.


   에우리디케는 허공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며, 이 철자와 발음이 맞는지 가늠하느라 몇 번이나 억양을 바꿔가며 고쳐 불렀다. 그러면서 마치 제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 진지하게 반복하곤 자신의 표정을 살펴왔다.


   왕은 자신의 오래된 이름이 불리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렇게 쓰이고 저렇게 불릴 때마다 신기하게도 모두 다른 이름이 새로이 태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왜인지 좋은 느낌이었다. 몇 번은 일부러 아닌 척 고개를 저어 보기도 했다. 만족스러울 만큼 이름을 불리운 다음에야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부르면 된다.”
      “그렇구나, 나는... 아, 이미 알고 있지, 참. 근데 어떻게 알았어? 누구한테 들은 거야?”
      “어쩌다보니."
      “어쩌다보니?"
      “그냥 알아.”


   에우리디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럼 넌 혹시 알아? 여기가 어딘지?”
      “......”
      “저기, 이봐?”


   그 때 하데스는 에우리디케가 미간을 찌푸릴 때마다 가려지는 눈을 보며 생각하는 중이었다.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막상 뭐라고 묻는지 흘려듣고는, 자신의 눈 앞에서 손을 흔들 때까지 멍하니 그러고 서 있었다.


      “미안. 뭐라고?”
      “여기가 어딘지 아냐고.”


   그러면서 이상한 곳이라 둘러보고 있던 참이라는 것이다. 이상한 곳이라니. 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덤불이 우거진 숲 속에 서 있었다. 간간이 나뭇잎 사이로 빛이 파고들었다. 진짜 햇빛일리는 없고, 눈앞에 있는 자의 무의식이나 기억에서 딸려온 것일 터였다. 죽은 뒤에도 여지없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거나, 사방이 불타는 전쟁터 속에 서 있는 자들에 비하면 특별히 이상하거나 긴박할 것이 없다고 여긴 하데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잘 좀 봐봐.”
      “보았다만.”
      “여기 말야, 우리 집 뒷산이랑 똑같이 생겼거든.”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집이 나오지를 않아.”
      “......”
      “게다가 아무 것도 없어. 아무 소리도 안 나. 바람도 없고...”

      바람도 없고-

      “이 맘 때쯤 지저귀는 새들도 없고...”

      새들도 없고-

      “아무래도 너밖에 없는 것 같고...”

      너 밖에 없고.


   하데스는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갑작스레 죽은 자들이 자신이 임종한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지만, 이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죽은 뒤에 꾸려지는 장소는 대개 자신의 집이나 매일 걷던 거리처럼 망자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가 많았는데, 그런 게 불려오지 않는 경우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의 죽음에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망자들에게 공정하고자 하는 왕에게는, 일을 꾸민 자가 누구든 잡아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갑자기 이곳이 저승이며, 자신이 이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제 입으로 알리고 싶지 않아졌다. 끝까지 모를 수야 없겠지만, 잠깐 동안만이라도. 이런 식의 대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대상과의 여상한 대화가 너무 오랜만이었던 탓에 들떠서인지도 몰랐다.


   이곳을 싫어하거나 겁내지 않았으면 했다. 여기가 저승인 것을 알면 에우리디케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대다수의 인간들은 이곳이 저승임을 깨닫는 순간, 뒤늦게 따라온 공포와 슬픔에 휩싸여버렸다. 무지로 인해 빛나던 어린아이가 자라서 진실을 알게 될수록 금세 때가 묻듯이. 태초의 밤처럼 새까만 두 눈에 하늘을 뒤덮는 축축한 먹구름이 몰려오면 금세 바다만큼 짠 내음이 가득해지겠지. 그러면 그 안에서 북극성처럼 반짝이던 광채는 빛을 잃을 테고. 하데스는 그런 순간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기를 바랬다.

   그러니 그는 영영 모를 것이었다. 이어지는 자신의 말에 왕이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지.


      “미친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말야, 내 생각엔 여기가 지하세계인 것 같아.”










하데스만큼 시간 많은 능력자면 좋겠네요.
시간은 없는데 이야기는 왜 자꾸 길어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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