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애증의 스페인-(3) 비 내리는 알함브라, 그 후

비 내리는 알함브라, 그 후



그렇게 비를 쫄딱 맞으며 알함브라에서 내려와 추위와 피곤에 후덜덜 떨며 잠깐 쉬다가 ‘안돼, 여긴 스페인인걸!!’이라며 에너자이저처럼 벌떡 일어난 우리는 저녁을 먹고 플라멩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오기 전에 검색한 바로는 모처에서 예약해주는 ‘동굴 플라멩코’가 픽업도 있고 나름 괜찮다는 소리를 들어서 가 보려고 했더니 카운터에 있던 예의 싹싹한 언니가 ‘거기 관광객 용이라 캡 비싸고(25e) 별로야.’라며 집 근처의 다른 곳을 추천해 주었다. 8유로에 음료수는 알아서 주문해야 하지만 춤하고 노래가 괜찮다니 뭐, 좋아. 이 쪽으로 가주지.


비가 푸슬푸슬 내려서 골목길이 딱 적당하게 젖어 있었다. 오래된 돌 바닥이 간만에 익숙하지 않은 물기를 뒤집어 쓰고 가로등 불빛을 받아 도로시의 노란 벽돌 길처럼 빛났다. 공연이 밤 10시 시작이라니, 맘에 들었어. 스페인 사람들, 노는 스타일 아주 제대론데? 5시에 해만 떨어지면 다들 차 타고 집에 들어가 버리는 성실하고 건전한 우리 동네 실버타운(독일OTL)과는 차원이 달라. 멋져, 그래. 인간적으로 밤에도 좀 놀아줘야 사람이 살지.


갑자기 하이디가 물어왔다.


“개나 고양이 키우는 거 좋아하세요?”
“싫어. 절대 싫어. 옆집에서 키우면 좋겠다고는 생각하지만 내가 키우는 건 역시 싫어.”
“우와, 보기 드물게 격렬한 반응이다. 근데 사실은 그냥 귀찮은 거죠?”
“예리하긴. 어쨌든 개들은 날 좋아하고 고양이는 날 따라와.”
“무슨 소리에요?”


“나도 말이지, 한 때는 순수하게 동물을 사랑하고 교류하면서 함께 뛰놀 수 있는 동심의 소유자였다고.”
“그런데요?”
“어렸을 때 시골 사시던 외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개를 키우셨었거든.”
“물렸어요?”
“아니, 무지무지하게 좋아해서 이름도 지어주고 새끼도 남들 안 주고 잘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갔더니 한 마리도 남김없이 사라져 있었지.”
“어, 왜요?”
“논밭 휘저어 놓는다고 옆집에서 고기에 독을 넣어서 던져 놨는데 그거 먹고 어미부터 새끼까지 다 죽었거든.”
“아, 하긴 그 때쯤이면 멀쩡한 개들도 쥐도 새도 모르게 개장수들이 잡아가던 때지”
“응, 뭐,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내 뿌리깊은 인간 불신은 거기부터 시작되고 말았지(먼산). 새나 물고기, 거북이도 몇 번인가 키웠는데 금방 다 죽었어. 어렸을 때는 틈틈이 동생도 키웠는데(..) 그게 또 참 환상적이었어. 그래서 내 비공식 모토가 그거잖아.”
“뭐요?”
‘애와 애완동물은 옆집에서’"


“......그 참, 동정을 해야 할지, 비난을 해야 할지…근데 그게 개랑 고양이가 따라오는 거랑 무슨 관계에요?”
“아, 어쨌든 개들은 익숙해서 친하게 지낸 반면에, 고양이는 그냥 별로 안 좋아했는데 어느 시점인가부터 근처에서 발견하면 걔들이 자꾸 따라오더라고, 이렇게.”


“뭐야,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응? 좀 전부터 따라오다가 올라가서 자리잡던데? ”
“원래 이래요?”
“당연히 반은 농담이지. 근데 동기가 그러는데 걔는 내가 고양이 키우는 줄 알았대. 학교 뒷산에 사는 도둑 고양이가 자주 친한 척 부비적 대러 왔었거든.”




골목길을 돌아 펍을 찾았을 때, 손님은 우리들뿐이었다. 10시에 시작인데 9시 반이니 그럴 만도 하다며 우리는 서로를 위안했다. 저녁 먹고 쉰답시고 호스텔에 돌아갔다간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다시 나올 수 없을 게 뻔했기 때문에 애써 버티고 있는 중이었건만 시계가 10시를 지나도록 손님은 절반도 차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혹시나 현실이 될까 일부러 참고 있던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일찍 와서 좋은 자리 잡은 건 좋은데 솔직히 견디기 조금 힘든걸.”
“역시 스페인이네요. 정시에 시작할 리 없지.”
“아까 타고 온 공항버스도 그렇고, 이것도 손님 가득 차야 시작하는 시스템 아닐까?”
“아…그거 말 된다. 사실 정식 공연이라기 보다는 펍이니까 말이죠."


“쳇, 고양이 자식.”
“왜요?”
“10시 반 시작인 걸 알았으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냐. 뭘 쭐래 쭐래 따라와서 ‘뭐야, 이상한 녀석들이네.’하고 쳐다보기만 하고 있어.”
“푸하하, 고양이 말도 할 줄 알아요?”
“……”
“……”
“넌 가끔 정말 이상한 데서 비상식적이더라.”
“졸려서 그래요, 졸려서.”



한 무리의 현지인들과 두서너덧 무리의 외국인들이 들어왔다. 등을 기댈 수 있는 벽 쪽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시며 슬슬 발음이 풀려가는 독일인들과 자기들끼리 무슨 알 수 없는 영어로 대화 하던 목청 좋은 무리, 꽤 일찍 왔음에도 구석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자기들끼리 샴페인을 주문한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일본인 3인방, 주인장과 한통속이 되어 왁자지껄 떠드는 즐거운 스페인 사람들-좁은 공간이 가득 차 무대가 완성되자 기타리스트와 가수, 무용수가 인파를 뚫고 등장했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홀, 테이블에 놓인 촛불만이 사람들의 움직임에 휩쓸려 흔들리는 가운데 기타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마드리드같은 곳에서 보는 플라멩코가 규모도 더 크고 화려하다지만 그런 쇼 플라멩코는 국제 무용축제 통역 자원봉사하면서 많이 보았던지라 남부지방에 남아있다는, 보다 원형에 가까운 플라멩코가 보고 싶어 이곳에서 무리해서라도 보기로 했다. (아니면 뻗어 자고도 남았을 시간)그러고보면 이 작은 홀은 얼핏 집시들이 살았던 동굴(혹은 그랬을거라고 생각하는 관객들의 이미지)을 재현해놓은 것 같았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목소리도 풍채도 포스가 상당하신 누님이었다)가 기타와 멜로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아니, 분명 노래가 맞지만 스페인어를 모르는 내게는 그것이 마치 오랬동안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를 어제와 같이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모레에도 계속될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다 흥이 나면 곁에 앉아 손으로 박자를 맞추고 있던 젊은 아가씨가 춤을 추었다. 어른거리는 불빛의 환영때문에 목청 좋게 노래를 부르던 누님의 과거이자 또 다른 미래처럼 보이기도 하던 그녀는 깊은 눈매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녀의 발은 기타와 노래소리에 뒤섞이는 악기이자 밤새 타닥타닥하는 모닥불처럼 타올랐다.


방향을 바꾸며 폭이 넓은 치마를 휘두를 때마다 불길이 번졌고, 결국 그 좁은 방을 태울듯한 열기가 천정까지 가득 찼다. 관객들이 일어나 저마다의 리듬으로 박수를 쳤다. 그래, 그렇게라도 저 노래에, 저 이야기에, 저 불길에 뛰어들지 않았을 없었겠지. 우리뿐만이 아니라 우리 이전의 사람들, 이 노래를 부르고 듣고 연주하고 춤추던 모든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춤과 노래는 이야기처럼 세대를 건너서 영원히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비 오는 그라나다도 뭐, 꽤 괜찮잖아. 아름답고(조금 춥긴 하지만), 운치있고(조금 많이 추웠지만), 플라멩코와 노래 소리도, 좁은 공간에서 끓어오르던 열기도 이 찰박거리는 빗소리에 무지하게 어울리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나중에 사진을 보며 추위는 잊어줄 테니 이런 여행도 나쁘지 않아. 오히려 희소가치가 있다고(그러기엔 추웠지만).






그리고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뭐어어어어어야, 이 찬란한 태양은!!!!


놀리는 거냐? 놀리는 거지? 분명 오늘 떠난다고 놀리는 거야.
놀리지 말라고!! OTL 나름 여기 힘들게 왔어, 그만 놀려OTL



“어떡하지…알함브라 다시 갈까?”
“그래도 바로 어제 본건데 오늘 또 보러 가기는 조금…”
“어쩔 수 없지. 그럼 넌 나중에 신혼여행으로 크루즈라도 와야겠네. 말라가에서 시작해서 그라나다에 들렀다가 바르셀로나, 깐느, 앙티브, 니스, 모나코, 제노바를 찍고 피사와 로마, 나폴리를 거쳐 저 지중해 안 쪽을 도는 방향으로…”
“루트가 이상할 정도로 구체적인데요. 그나저나 그래도 날씨 좋아서 다행 아니에요?”
“모르는 소리 마. 지금까지 우리의 삽질로 보았을 때 여기서 끝날 리 없어. 저길 보라고.”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시외버스 정류장의 정경>

“헉!”
“…알았어? 구름은 단지 우리가 어디로 떠날지 확인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뿐이야.”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몰라. 하지만 누군가가 우리가 가는 시간과 공간에 구름과 돌멩이들을 뿌려놓았어.”
“돌멩이?”


“실은…”
“실은?”
“어제부터 평범한 돌 바닥을 걷고 있는데 신발에 자꾸 출처가 불분명한 돌멩이가 끼어들어와. 빼기 귀찮아 죽겠어.”
“어, 앵클 부츠잖아요. 들어오려면 운동화를 신고 있는 저한테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바로 그게 수상하다는 거야. 독일에서는 모래가 득시글한 숲 속을 산책해도 이런 일 없었다고.”
“프라하에서도 없었죠.”
“그렇다면 이건 무슨 메시지일까? 바르셀로나로 오라는 인도의 메시지일까, 아니면 오지 말라는 경고?”
“모를 때는 그냥 가서 확인 해보면 되요.”
“아니면 역시…”
“……?”
















“네가 외계인?”

“…자, 스톱. 거기까지. 표 사러 가요.”




스페인 여행은...정말 날씨와의 사투였어요. 추워서라기보담도...정신적인 차원에서 하하, 하하, 하, 하하하

동영상 보일라나 모르겠네요. 이 학교 컴퓨터 뭐 해킹할게 있다고 보안 수준이 높은지 동영상따위 돌아가는지 아닌지 조차 체크할 수 없어서요. 흑흑 20분 걸려서 올렸는데 안 보이면 울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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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 2006/12/13 06:06 | 중앙광장:방랑자의피리소리 | 트랙백 | 핑백(2)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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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Rica at 2006/12/13 06:52
This video is no longer available 이래 ;ㅅ;
Commented by esatto at 2006/12/13 09:10
프하하하하하핫 어쩌면 좋아요 저 구름도 그렇고..그리고...ㅇ<-<
아, 저도 애와 동물은 옆집에서라고 생각합니다. 키워 본 적은 없지만 화분은 제법 죽였거든요(...) 제가 사온 건 아니지만서도. 동영상은 잘 나옵니다:D
Commented by wizdom07 at 2006/12/13 11:33
그리고 터미널에는 Bad Cloud 가 적혀 있겠죠? OTL OTL OTL
Commented at 2006/12/13 22: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니니아 at 2006/12/13 23:17
동영상 무지 잘나와요 ㅠㅠ
저도 애와 애완동물은 옆집에서가 모토인지라...()
엄마야 하늘이 분명 질투하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어요.
구름 나랑 싸우자...()
Commented at 2006/12/13 23:5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실뤤 at 2006/12/14 00:29
옆집 고양이를 쓰다듬는 마녀라...

그게 정말 마녀같은데~ ㅇㅅㅇ;;

후보생 시절에...

수업을 마치면 항상 달리기를 해야했던 시절,

수업 끝나고 옷 갈아입으러 갔더니 비구름 몰려들었다가

뛰는 내내 비가 내리고

기나긴 뜀걸음을 마치고 막사 앞으로 마지막 질주를 할 때

비가 그쳤다가

....

빨래를 널고 돌아왔을때 쏟아지는 소나기....

[구름]에 얽힌 나의 좋지 않은 기억. ㅋㅋ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6/12/14 02:48
리군//호곡 설마 그 때까지도 유튜브에서 전송이 안되고 있었던건가, 덜덜. 지금은 어때?

에사짱//잘 나옵니까, 그런겁니까 만세~. 다른것도 올려야지//_// 그나저나 키워본 적은 없고 제법 죽이셨다니...덜덜(별 상황이 많이 다른 것 같지는 않넹 :))

돔군//오노, 배드 클라우드였던 거군요. 으허엉. 어쩐지 날씨가 끝까지 사람 잡는다 했어요. 으허엉

비공개군//땡스 땡스 서울 잘 다녀오세용.

니냐님//그게 참, 어렸을 때는 그런 이유라 치지만 자취하면서 키워볼까 했는데 영 귀찮더라고요. 다들 어떻게 키우시나들 몰라요. 우훗 재밌었으면 좋겠는데 영상이 좀 어두워서 원..

실렌님//그것 참...안습의 구름이네요. 눈에서 빗물이 샘솟아요. 흘흘
Commented by ramy at 2006/12/14 08:34
가든갔다가 들러봤습니다
이글루스 들어온지 얼마안돼서 좀 헤매고 있는데...ㅋㅋ
음악이며동영상이며 대체 어떻게 올리는지 원 -_-;
저 노란 접시(?) 매우 탐나는군요~
Commented by muru at 2006/12/14 21:06
국제적으로 동물과 교류하시는 군요:D (;;)
어른거리는 빨간 포쓰(!)와 어둠이 어우러진 플라멩코라니!! 뭔가 굉장해보입니다:)
비바람의 환호에서 이제는 몸 따숩게 계신지 또 걱정이 되네요;ㅅ;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6/12/16 02:24
라미님//오우, 가든에 등록해 두면 들어오시는 분도 있었던 거군요(...). 사진이야 그냥 찍어서 그림 올리기로 올리고 있고 동영상은 제가 있는 곳에서 영 돌아가는 프로그램이 없는지라 유튜브를 앵하고 있습니다만서도. 접시는 코르도바 기념품 가게 에 걸려있었답니다. :)

무루님//...고양이 한테는 방언은 있어도 외국어는 없으니까요.(거짓말)훗훗훗, 스페인의 날씨...방심할 수 없었어요. 끝까지 방심할 수 없도록 따라다니던 배드 클라우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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