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을 먹는 36가지 방법
<와플 선택>

개인의 미각적 기호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집에서 반죽을 만들어 굽든, 밖에서 도우를 사 오든,
이미 한번 구워져 포장된 패키지를 사오든 다 좋으니
구웠을 때 밀가루 맛이 난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너는 와플이 아니라 빵이잖아.’라고 말해주고 싶은 두꺼운 것보다는
구웠다가 살짝 식혔을 때 격자가 아삭아삭하게 씹힐 수 있는
약 1cm 정도로 적당히 얇은 버전을 추천한다.


와플을 먹는 36가지 방법-필수 과정
와플을 굽는다. 노릇노릇하게, 타지 않도록.
실수로 태운다면 덜 탄 쪽으로 뒤집어 놓고 스스로를 위안해도 나쁘지 않다.
양쪽이 다 타서 어느 쪽으로도 위안할 수 없다면 포크를 들고 과감히 긁어낸다.
그래도 구제할 수 없는 경우, 내가 구운 게 아닌 척 하고 다시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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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플을 먹는 36가지 방법-선택 과정


1. 그냥 먹는다.
굽고 나서 바로 먹기보다 1,2 분 정도 공기 중에서 식히면
과자처럼 아삭 아삭해지므로 그쪽을 추천한다.

2. 슈가 파우더를 뿌린다.
이 없는 살림에 그걸 찾아내다니 당신은 대단하다.
슈가 파우더는 뿌려놓았을 때 모양이 보기 좋아서 일단 기분이 좋아지지만
한 입 물었을 때 입가에 가득 묻어 있는 걸 혀로 훔쳐 먹을 때가 제일이니
집에 있다면 알량하게 모양으로만 뿌리지 말고 팍팍 칠 것을 권장한다.

3. 단풍나무 시럽을 종지에 담는다.
그리고 와플을 잘라 포크로 우아하게 찍어먹는다.
4번 방법 보다 시럽이 혀에 먼저 닿게 되므로
향이 입안에 확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4. 단풍나무 시럽을 와플 위에 뿌려먹는다.
3번 방법 보다 편하지만 와플을 통째로 들 경우
와플의 격자 사이로 시럽이 흘러 옷을 버릴 수 있다.

5. 생크림을 뿌린다.
그냥 크림 보다 설탕이 첨가 된 크림을 추천한다.
그렇다고 설탕이 덜 녹아들어가 덩어리가 씹힐 것 같이
대충 만든 생크림이어서는 안 된다.
모양이 예쁠수록 기분이 좋다. 이를 위해 약간의 숙련이 필요하다.

6. 단풍나무 시럽을 뿌린 뒤, 생크림을 얹어 먹는다.
나쁘지 않지만 같은 값이라면 7번을 추천한다.

7. 생크림을 잔뜩 얹은 뒤, 단풍나무 시럽을 듬뿍 뿌린다.
생크림의 폭신폭신함과 단풍나무 시럽의 풍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사실, 단풍나무 시럽으로 생크림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8. 과일을 얹어 먹는다.
딸기, 산딸기, 체리, 블루베리처럼
한 입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고 달달한 것들을 추천한다.
당연하지만 생과일 형태가 가장 맛있다.

9. 칵테일 용 통조림 과일을 얹어 먹는다.
한 입 크기로 잘라져 달게 절여져 있기 때문에
굳이 크기와 당도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10. 냉동 과일을 얹어 먹는다.
해동 시간이 중요한데, 급한 마음에 오븐에 넣지 않기를 바란다.
흐물흐물해져서 색도 맛도 원래 형태를 찾아볼 수 없게 되니
그냥 평범하게 싱크대 위에 놓아두고 언제부터 꺼냈었는지 까맣게 잊었다가
마치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게 아닐까 착각하면서
우연히 공짜 사탕을 발견한 기분으로 시도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적어도 화는 내지 않을 수 있다.

11. 생크림을 뿌리고 생과일을 얹어 먹는다.
일반적으로는 괜찮지만 가끔 과일과 생크림의 맛이 따로 노는 경우가 있다.

12. 생크림 위에 생과일을 얹은 뒤 단풍나무 시럽을 뿌린다.
최고다. 만세, 100점 만점.
단지 지금 먹고 있는 게 사실은 와플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면 된다.

13. 생크림을 뿌리고 칵테일 용 통조림 과일을 얹는다.
둘 다 서로 달달해서 기대하지 않았지만 조화가 좋다.
어차피 생과일을 기대할 수 없는 환경이라면 이것도 나쁘지 않다.

14. 생크림에 냉동 과일을 얹는다.
사소한 문제이기는 한데 먹는 내내 이것이 최소한 통조림 과일일 것이라고
끝없이 스스로를 세뇌해야한다.

15. 생크림에 냉동 과일을 얹고 설탕 시럽을 뿌린다.
14번 보다는 조금 상황이 나아진다.

16. 생크림에 냉동과일을 얹고 단풍나무 시럽을 뿌린다.
뭐 하러 그런 짓을.
냉동과일만 빼면 생크림이나 단풍나무 시럽이나 환상적으로 맛있는데.

17. 설탕 시럽을 뿌린다.
단풍나무 시럽을 구할 수 없거나
비싸서 나는 도저히 감당 못 한다 하는 경우에 추천한다.

18. 꿀을 바른다.
단 맛을 추가한다는 점에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지만
미묘하게 꿀 본연의 향이 강해서 사실 와플의 단 맛과는 잘 맞지 않는다.
더불어 꿀의 무겁고 진득한 느낌은 시럽의 가벼운 느낌과는 꽤 다르다.

19. 애플 쨈을 바른다.
시럽, 생크림, 꿀이 없을 때 가장 손쉽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이다.
두껍게 바르면 너무 달아져서 금방 물릴 수 있으니
간신히 아쉬울 정도로 얇게 펴 바른다.

20. 애플 쨈을 바르고 생크림을 얹는다.
조금 평범한 감이 있지만 나쁘지 않다.
하긴, 시럽이 없을 때는 이것만으로도 꽤 호화로는 느낌이다.

21. 애플 쨈을 바르고 생크림을 얹은 뒤 과일을 올린다.
과일 타르트를 만들 셈인가, 라는 주변의 항의만 물리친다면
시럽도 안 바른 주제에 꽤 사치스러운 와플이라 평할 수 있다.

22. 집에서 만든 애플 무스를 바른다.
애플 절임과 애플 쨈 사이의 무스를 만들었을 경우에 해당된다.
사과 덩어리 모양이 뭉개져 있지만 어쨌든 덩어리를 유지하고 있으면서
사과 본래의 향과 강렬한 당도를 자랑하고 있다면
이건 사실 어디에 발라먹어도 맛있다.

23. 슈퍼에서 파는 애플 무스를 바른다.
사과의 형태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그야말로 정진정명 무스일 경우
설탕과 사과 조각을 넣고 졸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최악의 경우, 밍밍해서 와플과도 썩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24. 슈퍼에서 파는 애플 무스를 바르고 생크림을 얹는다.
대체 이 밍밍한 애플 무스를 바르기나 했는지 잊어버리게 된다.

25. 초콜렛 시럽을 뿌린다.
사실 초콜렛 시럽에는 회사나 제작자의 특성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다.
시럽에 들어가는 녹말 성분의 정도에 따른 걸쭉함이 그 첫 번 째이고,
두 번째로는 녹말 성분의 정도에 따른 텁텁함의 차이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시럽이라면 맛에 별 지장은 없지만
어디선가 튀어나온 싸구려 시럽을 잘못 바르면
버터 바른 밀가루 빵에, 초콜렛 들어간 밀가루 시럽을 잔뜩 발라먹고 있는
자신을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자각하게 되면서,
앞서 다른 시럽과 함께 먹을 때 애써 잊고 있었던 건강과 살찜에 대한
온갖 스트레스를 새삼스럽게 불러일으키게 된다.
당연하지만 그런 와플은 행복하지 않다.

26. 초콜렛 무스를 바른다.
이건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우유나, 우유와 생크림으로 만든 무스니까 텁텁하거나 느끼하지 않아서
초콜렛이 죽을 것처럼 달아도 맛있다.

27. 초콜렛 무스를 바르고 생크림을 얹는다.
초코 버전 와플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짓이 아닐까 싶다.
생크림 위에 화룡점정으로 케이크 용 초코칩이나 절인 체리를 얹어도 좋다.

28. 와플을 조각 내 한 조각씩 Taza(스페인식 걸쭉한 핫초코)에 찍어 먹는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초코 퐁듀라고 말할 수 있다.

29. 커피에 넣는 초코 거품을 뿌려본다.
맛은 좋은데 생크림만큼 점도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크림이 빨리 녹는다.
뿌려놓고 빨리 먹지 않으면 크림이 줄줄 흘러버린다는 단점이 있다.

30. Nutella(빵에 발라 먹는 고소한 독일산 초코 크림)를 발라 먹는다.
아직 시험해보지 않았다.

31. 티라미스 무스를 만들어 발라본다.
이번 주말에 시험해 볼 생각이다.

32. 티라미스 무스를 만들어 바른 뒤 생크림을 얹는다.
역시 이번 주말에 시험해 볼 생각이다.

33. 땅콩버터를 바른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악취미인가, 당신.

34. 아이스크림을 얹어 먹는다.
샤베트보다는 크림 류를,
과일이나 인공 맛(이를테면 배스킨 라빈스의 오션 어쩌구 하는 것 같은 것)
보다는 평범하게 바닐라나 초코, 혹은 너트 류를 추천한다.
지금 생각으로는 위즐에서 나오던 바닐라에 너트 들어간 게 어울릴 것 같다.
뜨거운 브라우니에 올려먹는 것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꽤 맛있다.

35. 아이스크림에 시럽과 생크림을 약간 얹은 뒤 절인 체리를 보기 좋게 올린다.
당신에게 응용력이 있음을 인정하겠다.

36. 2번을 제외한 모든 경우의 수에 슈가 파우더를 뿌린다.
당신에게는 응용력뿐만 아니라 센스도 있다.



<함께 마실 것> 평범한 커피와 홍차
아니, 설탕이나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정말로 평범한 커피와 홍차 말이다.
향이 진하고 개성 있어서 온갖 시럽과 크림이 올라가 한껏 단내를 풍기는
와플에 전혀 밀리지 않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와플을 먹을 때마다
처음 먹는 것처럼 혀의 감각을 돌려줄 수 있는 커피와 홍차가 필요하다.
같은 이유로 지나치게 단 코코아와 쥬스,
그리고 와플에 어울리지 않는 녹차는 기각.





별로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의 하나 정말 손이 미끄러져서 이 글을 퍼 가시는 분이 있다면, 이 글이 인터넷이 안 되니 세미나 자료를 찾을 수도 없고, 근처에 영화관도 없어 하루에 세 번 디저트라도 먹지 않으면 지루해서 견딜 수 없는 <세상의 끝>에 불시착한 난민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모든 실질적인 변수와 표현은 상당히 개인적인 상황과 미각에 의존하고 있음을 출처와 함께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주말에 이런 거나 쓰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구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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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 2007/01/21 00:23 | 북쪽통로: 세상의끝 시리즈 | 트랙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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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동굴아저씨의 개인창고 at 2007/01/30 02:10

제목 : 맛있는 와플을 먹을 수 있는 36가지 방법.
와플을 먹는 36가지 방법 절세마녀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합니다. ... 뭐랄까... 멋진 분이라고 밖에는 말 못하겠습니다. 일반적인 재료로 36가지의 방법을 생각해 내시다니... 그렇다면 일반적이지 않은 재료까지 섞인다면 더 많은 방법이 생길 노릇일런지도... ... 이걸 보고 나니 와플이 먹고 싶어졌다는 것은 이상한게 아니겠죠. 아아... 파스타가 먹고 싶다.(응?)...more

Commented by 류즈이 at 2007/01/21 00:43
벨리타고 들립니다만... 이건 뭐... 브루주아 시군요 -ㅁ-;;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1/21 00:47
상황을 제대로 아신다면 쪼끔 처절하게 들릴 수도 있을걸요. 아마도 >-<-0
Commented by mint at 2007/01/21 00:49
와플 사랑합니다 >_<//

글 잘 읽고가요.ㅎ
Commented by wizdom07 at 2007/01/21 01:07
마님 이 글 너무 걸작이시지 말이빈다....ㅠㅠㅠㅠㅠㅠㅠb
Commented by 김정훈 at 2007/01/21 02:25
필수 과정은 왜 36가지가 아니고 저것 뿐인고?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1/21 03:29
음, 그리고 아마 진짜 부르주아라면 와플 먹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주방장에게 시키겠지요, 맛있는 와플을 만들어 오게, 라고. (먼산)

민트님//흑흑, ;_; 감사합니다.

돔군//사람이 할 일이 없다보니 망상에너지를 저렇게 쓰기도 하더군요. ....망상이 아니라는게 더 무섭지만 OTL

김군//필수 과정은 그야말로 '필수'니까 카운트 할 필요가 없잖아. 36가지 방법을 필수와 선택으로 나눠놓은 것 뿐이지.
Commented by esatto at 2007/01/22 08:57
어쩐지 마지막까지 읽고 나니까 서글퍼졌어요...
Commented by 泰虛 at 2007/01/26 20:26
음.. 와플 완성의 공통/선택과정인가요?
잘 보고 갑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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