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와 함께하는 1%의 변형이 가미된 99% 실화 만담토크입니다. 제 쪽이 언니. 주제는 음식(의 탈을 쓴 디저트). 장소는 여전히 그곳, 세상의 끝. 간혹 나오는 작은 따옴표 인용구는 <닥터후>와 <바람의 집>, <노다메 칸타빌레>등등에서 빌려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음식 만담 (1) “알겠어요, 인정하겠어.” “뭘?” “언니 사주에 붙어있다는 식신(食神)은 정말 유능해요.” “그냥 네가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는 거야. 어떻게 쌀에 물도 못 맞추냐. 그런데 또 희안하게 크림스파게티는 잘 해요. 이상한 녀석.”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슈퍼마켓에서 할인하고 있는 싸구려 토마토 소스와 냉동 해물로 이렇게까지 맛있는 스파게티를 만들 수 있는 거에요? 어떻게 하면 인스턴트 토마토 스프 가루를 최고급 스튜처럼 끓일 수 있는 거죠? 왜 냉장고에 있는 식료품을 죄다 긁어서 아무렇게나 집어넣은 볶음밥이 이렇게 맛있는 거에요?” “자취 생활 6년에 인스턴트와 냉동식품 따위를 정복하지 못할 리가 없잖아.”
“심지어 이건 어제 내가 삶은 스파게티 면이랑 같은 거잖아!! 왜 다른 거야, 왜.” “이 녀석들의 인스턴트와 저장식품은 전혀 진화하지 못했어. 내가 15년 전에 독일에서 살던 때랑 같은 종류의 햄과 소세지들을 팔고 있다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레토르트 산업은 정말 가능성이 있다고 봐.” “아냐, 이건 인스턴트의 문제가 아니라고요. 전에 먹은 그거, 새우랑 피망에 간장 넣고 볶은 거. 정말 새우랑 피망 말고 별 다른 거 넣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맛이 예술이었어.” “집에 가서 연습해. 누가 차려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하지만 정말로 어떻게 이런 슈퍼마켓 와플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는 거냐구요.” “그건 그냥, 시간이 남아서야. “......” “‘내 수명의 10분을 줬어. Worth every second.’랄까.” “와플 따위에 수명까지 소모하지 말아요.”
<오, 이 멋진 디저트 월드>
“그건 그렇고 난 내가 처음 단풍나무 시럽을 살 때, 네가 비웃었던 걸 기억하고 있어. 일용할 양식을 사러 와서, 그 중에 가장 비실용적이고 비경제적인데다 심지어 필수항목조차 아닌 물품을 고르고 있다고. 그리곤 내 소비 패턴이 정말 일관성 있다는 둥 피식피식댔지.” “취소합니다.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근데 양쪽이 어떻게 달라요?“ “아, 눈치 챘어? 오른쪽은 클래식하게 크림 위에 단풍나무 시럽을 뿌린 뒤 체리를 얹고 초코칩에 슈가 파우더, 왼쪽은 초코 무스를 잔뜩 바른 다음 크림을 올리고 똑같이 체리에 초코칩. 마지막은 항상 슈가 파우더.” “그냥 또 집에 있는 걸 다 넣은 것뿐이잖아요.” “와플 먹는 방법을 서른여섯 가지로 뽑아봤더니 현 상황에서 가장 호화스럽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자동으로 머리에 정리되더라. 듀얼 코어 노트북을 286처럼 쓰는 거나 내 시간과 머리를 이런 데 쓰는 거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게 조금 슬펐지. 이런 걸 열심히 만드는 걸 보면 내 식신도 슬픈 거야. 고작 이런 인스턴트 재료를 가지고 신나서 놀고 있으니.” “그 식신, 제가 살 테니 팔아요.” “싫어,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라구. 여하튼 난 아서 덴트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이상한 별에 불시착 한 뒤 샌드위치의 명인 따위가 된 과정을 뼛속 깊이 이해할 수 있어. 안 봐도 훤해. 심심하고, 할 일은 있지만 해낼 방법은 하나도 없는 가운데 그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거야. 고작 완벽한 샌드위치를 만드는 게 말이지.”
“근데 그거 알아요?” “뭘?” “우리 여기까지 와서 그렇게 얼그레이와 에스프레소, 와인 병과 글뤼바인을 비워대는 동안 한 번도 독일 맥주 안 마셨다?” “......헉. 그건 전혀 자각하고 있지 못하던 사실인데.”
“그래서 사 와봤습니다. 맥주”
“......” “......” "......" "...뭔가 말을 해." "음...아, 그래요. 튀김은 못한다더니!!” “기름 닦기 귀찮잖아.” “밀가루 옷이 아삭아삭 해! 오징어가 살아있어! 오징어가 밀가루 옷보다 작긴 하지만 그거야 원래 튀김 봉지 사올 때부터 그랬으니까 그런 거고. 무슨 짓을 한 거에요, 대체.” “별로, 눅눅해지는 게 싫어서 두 번 튀겼지.” “근데 그거 아세요?” “또, 뭘?” “우리 아직까지 맥주 맛에 대해선 아무 말도 안했다는 거.”
“...쓰네.” “크리스가 이거 맛있다던데.” “난 카프리가 좋아. 생맥주 집에서 파는 레드락도 좋아하지. 유리잔을 물에 적셔서 마시기 10분 전에 냉동실에 넣어 놓았다가 살짝 얼었을 때 꺼내서 맥주를 담으면 일품이야.” “크리스, 이 거짓말쟁이. 기차 안에서도 술병을 끼고 있는 주당 주제에.” “하이네켄을 사오지 그랬어?” “잊고 있는 거 같은데 그거 사실 독일 거 아니에요.” “코로나는?” “그것도 아닐 걸요, 맞나?” “다음엔 벡스 사 와.” “그거 이쪽 슈퍼에 없었어요.” “벡스도 안 파는 거야? 독일이잖아.” “안 팔아요. 이 ‘죄악 깊은 도시’에 뭘 기대하세요.” “독일 맥주에 의리 따위, 이 한 병으로 끝내주겠어.” “아직 필스너 한 병 남았는데요?”
“...됐으니까, 그간 우리가 만들어댔던 상그리아의 레시피를 정리해 주지.”
간단히 만드는 상그리아 적당 레시피1. ‘보기 좋은’ 유리병을 산다(매우 중요).
2. 맛있어 보이는 레몬과 오렌지를 골라 '적당히' 얇게 저며 아래쪽에 넣는다. (각각 반 개 정도)
3. 설탕이나 꿀을 '적당히' 퍼 넣는다. 기호에 따라 많이 넣거나 적게 넣거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너무 단 것보다는 적당히 달달한 것이 맛이 좋았다.
4. '적당한' 와인을 사서 한 병 몽땅 넣는다. (보르도랑 시실리, 로제 와인으로 해 보았는데, 로제는 워낙 너무 음료수 같은 구석이 있어서 이왕 사다가 넣는 거라면 레드 와인 쪽이 낫겠다는 결론을 내림. 시실리는 쪼끔 쌉쌀한 감이 있어서, 보르도 쪽이 취향. 화이트 와인 계열에는 개인적인 취향으로 인한 정말 사소한 문제가 있었는데, 만들어 놓고 보니 색깔이 평범한 음료수 같아서 패스. 아니, 상그리아가 음료수 맞긴 하지만.)
5. 뚜껑을 닫거나 랩으로 밀봉해서 냉장고 안에서 '적당히' 하루나 이틀 정도 재운다.
5. 쓴 맛과 알코올기가 많이 날아가서 부드럽고 향기로우며 살짝 달달하면서 새콤한 상그리아 완성
6. 붉은 와인 색이 잘 보이는 크리스탈 잔(없으면 유리잔)에 담아 마시기(역시 중요)
7. 기호에 따라 촛불을 켜도 좋음
닫기
“어때?” “이건 전혀 맛을 재현하기 위한 레시피가 아니잖아요.” “상관없어. 보기 좋은 게 맛도 있으니까.” “언니의 평소 주의와 달라요. 평소에는 ‘모양이야 어떻든 맛있으면 된다’ 였잖아요.” “음, 그건...” “......그건?”
“...그건 디저트가 아니니까.” “다른 겁니까.” “달라. 디저트의 필수 요건은 모양과 색채, 분위기와 재료, 그리고 맛.” “본식사는 그냥 맛있으면 되고요?” “고작 한 두 명이 먹는데 모양까지 신경 쓰는 건 시간 낭비지.” “그냥 귀찮은 거죠?” “귀찮아하기조차 귀찮아.” “그럼 저 와플은 뭐에요?” “그건 디저트잖아.”
“그냥 귀찮아하는 것 치곤 전의 그 참치전,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형상이 너무 괴물 같았어요. 맛은 죽음이었지만. 생활 물리에 약하다는 걸 굳이 그런 데서 티낼 거 없잖아요. 이왕 맛있는데 모양이 그래서 2% 부족하다는 건 좀 아깝지 않아요?” “관심 없는 부분은 신경 끄고 대충 사니까 그렇겠지. 모양이 그 지경이니까 기대않는 와중에 맛있다는 의외성도 있고. 그리고 잊고 있는 것 같은데, 그 마지막 2%까지 고민하기엔 나는 요리사가 아니야.” “숙련을 쌓아요. 이십여 년 간 밖의 요릴 먹으면서 툴툴댄 제가 보증할 수 있어요. 언닌 정말 멋진 요리사가 될 수 있어!” “이태리도 아니고 독일 따위에서 요리사로서의 가능성 같은 거 발견하고 싶지 않아.”
“하긴 이태리였으면 삼시 세끼 디저트에 열중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죠.” “매일 다른 종류의 하몽과 프로슈토를 사다가 팬에 볶아서 냄새를 베게 한 스파게티 면에 싱싱한 로마 토마토를 갈아 넣고 온갖 야채랑 해산물을 듬뿍 넣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걸. 면도 다섯 종류는 사다 놓고 매일 바꿔 먹을 지도 몰라. 그 왜 검정색 오징어 먹물 면이랑 초록색 고소한 면이랑 그런 것들. 관심 없던 메뉴지만 라비올리랑 라사냐랑 리조또도 하겠다고 덤볐을 거야. 석류랑 자두랑 오렌지도 잔뜩 사서 쟁여 놓고.” “아웅, 생각만 해도 맛있겠다.” “디저트에 열중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어. 우리 성격에 벌써 커피 머신이랑 커피 사다가 쌓아놓고 온갖 과자들을 종류별로 시도하고 있었을 걸. 자, 고개를 들어 저기 찬장을 봐."
"저번에 여행 갔을 때 가방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과자 사서 따로 한 봉다리 들고 오는 걸 봐. 인정해. 우린 그냥 디저트를 좋아하는 거야.” "볼 때마다 생각하는 건데 저것들이랑 같은 방에서 살면서 어떻게 안 먹고 버티는 거에요?" "볼 때마다 네가 맡겨 놓은 거라고 세뇌하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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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절세마녀 | 2007/01/22 23:58 | 북쪽통로: 세상의끝 시리즈 | 트랙백(2)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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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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