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와 함께, 세상의 끝에서 벌어지는 99% 실화로 구성된 테이블 토크. 오늘의 주제는 무려 ‘저녁 식사’. 안 쓰던 카테고리인 북쪽 통로를 개조해 ‘세상의 끝’ 시리즈를 옮겼습니다. 세상의 끝 따위, 통로 구석에나 찌그러져 있으면 족해, 족하다구. “흥, 인터넷 못하게 하면 내가 아무 것도 못할 줄 알았지?” “근데 어느새 시리즈가 된 거에요?” “몰라. 밤이 지나갈 때마다 만담일지만 늘고 있어.”음식 만담 (3) “이게 다 뭐에요? 진짜 파티해요?” “저녁 식사. 그냥 저녁 식사. 평범한 그냥 저녁 식사.” “......메뉴가 많은 걸 보니 화가 났군요. 오늘은 또 뭔데요?” “아파트 관리인에게서 통지가 왔어.” “뭐라고요?” “내가 방 빼겠다는 소리를 1월 2일에 들었으니 3월 31일에 나가게 해주겠대.” “무슨 그런, 2월 말 비행기잖아요.” “게다가 애초에 나는 1월 말에 나갈 생각이었지. 그래서 한 달 전인 12월에 이야기 한 거고.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길래 크리스를 데리고 가서 설명해줬더니 본사가 베를린에 있다고 날더러 편지 쓰래.” “편지?” “그래, 편지. 바야흐로 유비쿼터스 시대가 열리고 있는 찬란한 21세기에.” “하다못해 전화라든가, 팩스라든가.” “문서 관련 일은 확실한 게 좋다고 편지 쓰래. 정확히 말하자면, 써서 가져오래. 자기가 부친다고.” “자기들이 써서 부칠 생각은 없는 거에요?” “알게 뭐야. 그래도 보통 그렇게 하면 정정 된다니까 기다려는 보겠지만 이제 1월은 고작 열흘 남짓 남았다고.”
“안 되면 어떻게 할 거에요?”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겠어.” “뭔데요?” “계좌에서 돈을 뺀 뒤 잠적할 테야. 붙잡으면 내가 못 나갈 줄 알고?” “언니가 그런 소리 하면 진짜 같아서...” “무서워 할 거 없어. 농담이니까.” “흥미진진하겠다고 하려던 참이에요. 그리고 진담인거 다 알고 있어요.” “......”
“자, 일단은 애피타이저.” “어? 메론햄이다.” “그런 촌스런 이름으로 부르지 마. 좀 더 정중하게 대해. 맛있단 말이야.” “하지만 메론햄이잖아요.” “이 이상 하몽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니까. 최소한 ‘하몽을 곁들인 메론’이라고 불러. 맛있다고.”
“아, 진짜다. 맛있다.” “......” “언뜻 보기에는 메론 때문에 디저트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하몽의 그 뭐랄까, 살냄새가 나야한다고 할까, 아무튼 독특한 향 때문에 식욕이 확 도는데요.” “......” “왜 말이 없어요?” “......사랑해, 하몽.” “저기요?” “넌 정말 최고야. 세상의 모든 걸 미워해도 너만은 미워할 수 없어. 정말이지 왜 너는 스페인에서 태어난 거야. 대량생산되는 베이컨 따위에게 밀리지 말라고.” “......그라나다에 다시 가는 건 어때요?” “갈등 느껴진다. 가도 될 것 같단 말이야.”
“이 수프는 뭐에요?” “뭘 알려고 그래. 그냥 먹어.” “그냥 먹기는 너무 맛있으니까 그렇죠. 뭘 넣은 거에요?” “토마토 수프를 끓이려고 했었지.” “제가 아는 토마토 수프 맛이 아닌데요.” “납작한 콩하고 소라 모양 마카로니를 끓이다가 생각이 난 김에 감자도 넣고, 찬장에 보니 옥수수 통조림이 있더군. 거기에 말린 파를...” “말린 파? 그런 거 산 적 없잖아요. 어디서 났어요?” “...뭘 알려고 그래. 그냥 먹어.”
“알았어요. 그 다음엔?” “그리고 나서 토마토 수프 가루를 봤더니 2인분은 남은 줄 알았는데 1인분 남아있더라고. 그래서 그냥 넣고 다른 걸 조금 넣었더니 맛이 괜찮았어. 어때?” “이건 이미 인스턴트 수프가 아니에요. 뭔가 새로운데, 음. 건더기가 이만큼 들어있는 보통 수프라면 무거워서 조금 부담스러워야 하는데 이건 국물이 가벼우면서 토마토 수프 맛이랑 거기에 조금 더 감칠맛도 나요. 사이드로 먹기에는 오히려 좋네요. 뭘 넣은 거죠?” “인스턴트 곰탕 가루 조금.” “......” “...곰탕 좋아. 여기 저기 잘 어울리고, 맛도 좋지.” “그런 게 어디 있었던 거에요?” “내 옷장 안 식량 창고에는 무한한 우주가 펼쳐져 있거든.” “근데 거기 인스턴트 말고 다른 건 없어요?” “없어. 유사시를 대비한 거라 좀 허술한 우주야.”
“이건 뭐에요?” “뭐긴. 밥이랑 생선이지.” “오븐에 굽길래 이름 있는 생선 요리인 줄 알았어요.” “만들어 붙일 수는 있어. 올리브와 레몬, 허브소금으로 버무리고 바질과 후추가 들어간...” “오호, 보기엔 그렇게 안 보이는데.” “...냉동 연어 구이.” “거짓말! 이건 냉동 생선 따위로 가능한 맛이 아니잖아요.” “가능할 수도 있나 보지. 그건 그렇고 완벽한 타이밍에 꺼냈군. 더도 덜도 말고 딱 이 정도 익히고 싶었는데.” “피클하고 잘 맞아요.” “아, 그건 슈퍼에서 사왔어. 차게 하니까 맛있더라고.”
“있지, 아까 청소 다 했다고 그랬잖아요.” “그랬지.”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오늘은 언니 집 말고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할 수 있겠구나 했거든요?” “근데 왜 내려온 거야?” “그새 미란다가 튀김 요리를 해 놓고 안 치우고 나갔어요.” “냄비 안 닦는 미란다?” “닦으면 방으로 냄비 들고 들어가는 미란다요.” “저런, 그랬군.” “인간적으로 너희가 봐도 난 부엌 안 쓰지 않냐고 따지고 싶었어요.” “따져. 내 기억으로 지금까지 내가 너네 집에서 식사한건 딱 3번이고, 반면에 넌 우리 집 부엌에서 거의 살고 있으니까.”
“자요. 마그네슘이에요.” “왜 이 시점에 마그네슘이 튀어나오는 거지?” “부엌을 떠올렸더니 머리가 아파졌어요. 아는 사람이 그러는데 스트레스 받으면 마그네슘이 소모되면서 짜증이 난대요. 듣고 보니 찬장에 있더라고요.” “전부터 궁금했는데 네 찬장에는 약이 몇 종류나 있는 거야?” “약국 차려도 될 만큼. ‘아직도 속에 많아요.’” “고맙긴 한데 이 정도 알약으로 해결될 만큼 하루아침에 형성된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저도 오늘의 '당분 공급'을 마다할 생각은 없어요. 어서 Sugarize me, Sugarize me."
“자, 그러면 오늘의 디저트시간입니다.” “플럼 케이크? 어디서 났어요?” “뭘 알려고 그래. 그냥 먹어.” “알아야겠어요.” “(아득한 시선으로)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냉동식품이 있더군. 그 중의 하나야.” “......지난주까지만 해도 온 세상의 케이크를 먹어치우겠다는 듯이 눈에 띄는 베이커리마다 들어가서 온갖 케이크들을 사 먹고 있지 않았어요?” “그랬지. 케이크를 안 사먹은 건 이태리에서 뿐이었어.” “거기야 다른 게 더 맛있으니까죠. 절 괴롭히고 싶으신 거에요?” “이런 건 괴롭힘 축에도 들어가지 않아. 그냥, 한번쯤 시도해보고 싶더라고.” “음, 맛은 의외로 괜찮네요. 자두가 엄청나게 들어가 있고. 사서 넣어도 이만큼은 못 넣을 텐데.” “거기에 체리를 들고...” “들고?” “초코칩을 잔뜩 뿌린 크림을 찍어서 같이 먹는 거야.” “...아, 좋다. 오늘의 당분이 충전되고 있어요.”
“당분 충전이라고 하니까 말인데, 오늘은 비장의 아이템이 있지.” “뭔데요?” “2 시간 있다가 보자구.”
<2시간 후에 계속, 진짜루>닫기
|
|

독특한 것, 희귀한 것, 아름다운 것들이여, 오라!
by 절세마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