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와 함께. 세상의 끝에서 일어나는 99% 실화 식탁 토크(앗, 발음이 어렵다). 주제는 ‘어느 천재와 범재의 이야기’. 오늘은 미란다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근데 이거 이야기하겠다고 한지 꽤 되지 않았어요? 순서 바꿔도 괜찮은 거에요?” “어디서부터 봐도 상관없다는 게 일일 드라마의 장점이잖아.” 세상의 끝에서 - 음식 만담 (8) “하루가 지나니 더 맛있어요. 왜지?” “......” “뭐해요? 조회 시간도 아닌데 가슴에 손까지 올리고.” “아, Deep하다. 정말 Deep하다.” “......” “내가 하고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정말 Deep하다.” “그거 정말 이상한 거 알아요?” “내가 뭘?” “같은 걸 먹고 있는데 괜히 또 먹어보고 싶어지게 만들고 있잖아요.” “하지만 맛있는걸.” “그거야 그렇지만요.”
“옛날 옛적에 말이지, 한 소년이 살았어.” “평범한 시작이네요. 뭐 하는 앤데요?” “그건 잘 모르겠고 아무튼 등장부터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지. 배가 고팠거든.”
그는 부모, 형제 없이 세상에 그 혼자만이 내던져진 채로, 자신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거의 아무 것도 없었다. 세계에는 오직 '자신'과 살아있는 것들이 필연적으로 느껴야만 하는 '허기'만이 존재했다. 나와 남을 구분해주는 이름이나 색채란 주린 배 앞에서 단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는 현기증에 불과했다. 그의 코는 눈앞에 놓여있는 대상이 먹을 만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그의 혀는 그것을 오래도록 맛보고 배고프지 않은 내일을 꿈꾸게 하는 데에만 의미가 있었다.
위장이 스스로의 입술을 씹어 먹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허기가 그를 괴롭혔다. 동시에 그 허기가 그에게 운명적인 배필을 마련해 주었으니, 이름 하여 '요리'였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거리를 전전하던 소년은 마침내 용기를 내어 가장 향기로운 레스토랑에 들어가 '무급에 숙식제공'이면 무엇이든 하겠다며 애원했다. 처음에는 청소를, 얼마 안 있어 팔에 살이 좀 오르자 설거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예민한 후각과 품평은 서빙 도중에 음식의 상태를 주방에 알리는데 퍽 도움이 되었으며, 그것을 눈여겨보았던 주방장에 의해 그는 단순 종업원에서 주방보조로, 보조 요리사로, 어느 새 주방장의 솜씨를 흉내 낼 뿐 아니라 자기 스타일의 요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 진짜 요리사가 되어있었다. 그는 '살기 위해서 요리한다' 라는, 실로 절박한 존재의 이유로 인해 요리사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정말로 요리를 사랑했다.
그것은 단지 그가 굶주려 보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요리를 경외했다. 서로 아무 관련 없는 땅에서 태어났음에도, 같은 물에 씻기고 다듬어져 한 보울 안에서 드레싱이라는 달콤새콤한 옷을 입고 저녁만찬이라는 파티장에 나가는 샐러드를 사랑했다. 활활 지펴 오르는 불이 애정 어린 손길로 리드하면, 구수한 버터와 양파 즙을 맞춘 듯 몸에 감고 무대 위에서 발그레 달아오르는 스테이크에 그는 애정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레시피라도 요리사의 미각과 후각에 의해 수많은 바리에이션이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 깨달았을 때, 그는 신이 자신에게 드디어 허기에서 벗어나는 무한한 자유를 허락하는 것만 같다고 생각하며 환호했다. 만들고, 먹고, 살아 움직인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 창조의 법칙이란 말인가. 온갖 무관계한 재료들을 알맞은 양에 달아, 꼭 맞는 양념으로 버무려 전과는 완벽하게 다른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요리는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신비로운 창조 능력 중 하나였다. 게다가 그와 마찬가지로 하루에 세 번씩, 죽을 때까지 끝없이 허기지는 인간을 구제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유익하기까지 했다.
자신의 허기를 발판으로, 그것을 만족시킬 요리에 대한 열망과 생존의 위협에 따른 성실함마저 갖추었으니 비슷한 또래에 그를 뛰어넘을 만한 요리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사실상 그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발 빠른 미식가들은 그를 최고의 요리사로 격찬하면서 자신들도 최고의 미식가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의 음식을 감상해 본 사람들은 재료들의 정교하고도 완벽한 조합과 세심한 세팅, 퇴보를 용납지 않는 노력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식도락가라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은 날이 갈수록 유명해졌다. 그리하여 매년 열리는 그의 새로운 요리 시연회는 항상 사람들로 붐볐다. 그저 그가 어떻게 요리하는지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참가를 신청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 날도 수많은 다른 날들처럼 새로운 음식 품평을 하기 위해 그의 추종자가 한데 모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너무 너무 ‘요리’를 사랑해서 요리사가 된 당대 최고의 요리사와 신문 기자가 나와.” “천재 요리사라면 만화 많잖아요.” “아니, 요리사가 노력형 범재고, 신문기자 쪽이 요리를 비웃는 천재야.” “에, 어떻게요?” “기자에게 식신이 붙어있었거든.” “......” “마치 나와 내 친구를 보는 것 같지?” “‘마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잖아요. 게다가 그거 어디서 많이 보던 구도인데?” “당연하지. 아마데우스와 살리에리의 패러디니까.” “......”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천재와 범재의 이야기라니까?”
“아, 아무튼 그래서요?” “오늘 같이 추운 날씨에 열린 시연회에 처음으로 취재 하러 온 젊은 기자가 일을 낸 거지. 지각해서 허둥대며 들어온 주제에, 처음으로 개발해서 디저트와 같이 내 놓은 핫초코를 한 입 마셔보고는 무례하게도 레시피에 중대한 수정을 가했거든.” “어떻게요?” “옆에 놓여있던 민트 초콜렛을 한 조각 넣어 휘휘 젓고는 무심코 ‘음, 맛있네.’라고 해버린 거야.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추종자들은 당황했지. 따라 해봤더니 맛있지 뭐야.”
“잠깐, 그런 중대한 사건에 왜 민트 초콜렛이 들어간 핫초코인 거에요?” “내가 그 때 그걸 그렇게 마시고 있었거든.” “......” “인스턴트 핫초코에 질려서 그만.” “......뭐, 어떤 의미에서는 아주 틀린 예도 아니네요.” “심각한 걸 기대하지 마. 이거 어디까지나 개그니까. 그리고 어떤 중대한 사건이라도 충분히 사소한데서 시작할 수 있어.”
“그, 살리에리는 어떻게 반응했는데요?” “관록이 있으니 처음에는 여유 있게 대처했지 뭐. 어디서 뭐 하는 녀석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몇 마디 이야기 하면서 관찰하다 보니 시원시원한 구석이 있어서 친구 비슷한 게 됐어. 하지만 역시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살리에리 자신에게 있어서는 악당 같은 놈이었던 거야.” “왜요?” “그의 전부였던 ‘요리’에 경외감이라곤 없었거든. 요리를 할 때 레시피대로 한다든가, 아니면 나중에 그대로 재현할 수 있도록 기억을 한다든가 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친구가 된 살리에리를 가끔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는 그를 정신적으로 고문했어. 그게 또 자기 딴에는 대접을 한 거라 뭐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게 이중으로 악당스러운 부분이지.”
“나는 정말이지 자네를 이해할 수가 없네. 좋아하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아, 그거 맛있었어요? 영광이네요, 하고 그가 설거지를 하다말고 이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사주를 보셨는데 식신이 붙어있더래요. 미신이 다 그렇듯이 믿을 건 못되지만요, 그가 덧붙였다.
“나쁘다. 심지어 믿지도 않네요?” “응.”
분했다. 억울했다. 최고의 요리사가 되기 위한 포석이 아니었다면 어린 시절의 고통은 대체 무엇을 예비하기 위함이었단 말인가. 청년은 요리를 잘 했으나, 즐겨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딱히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거대한 위장이 되어 세상과 함께 자기 자신까지 소화시켜버릴 것처럼 고통스러운 허기를 그는 겪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일에 바쁜 그에게 있어 요리는 최소한의 사치이자 식당에 가서 메뉴판을 보고 무엇을 고를까 생각하는 정도의 가벼운 유희였다. 심지어 녀석은 먹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다. 정도를 벗어나는 식탐에는 약간의 죄의식마저 가지고 있어, 음식 맛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친구들에게 조소를 흘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청년의 감각은 가히 천부적이었다. 모두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인류가 기아와 포식의 연속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왔다는 것이 자명하다지만-멀리서 그가 와인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서있었다.
“역시 그거,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바보 같아요, 하하하하하”
턱시도를 입은 남자들의 경박한 웃음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다. 그는 참을 수가 없었다. 청년이 이곳에 살아 숨 쉰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같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색해진 공기를 무시하고, 그 길로 돌아와 골방에 틀어박혔다. 청년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며 인생 전체를 비웃었다.
오오, 신이시여. 어찌하여 저에게는 음식에 대한 열망과 걸신만을 주시고, 식신은 내려주시지 아니하였나이까.
“......” “......” “음식에 대한 열망과...” “......” “......걸신.” “응, 걸신.” “......걸신 OTL.” “내 보잘 것 없는 명예를 걸고 말하자면, 저 대사만큼은 내가 쓴 게 아니야. 개인적으로는 제일 좋아하지만.” “누가 쓴 거에요?” “가난한 디아길레프의 절규를 그대로 옮겼어.” “디아길레프...” “예술을 사랑했지만 뭘 해도 재능은 없었고, 대신 돈이 많아서 지원 사업을 주로 했던 사람. 하지만 내 친구에게는 돈 대신 식탐과 허기가 있지.” “문어라는 친구분요?” “지금쯤이면 캐나다에서 냉동문어가 되어있을 그 친구. 내 식신 이야기를 듣자마자 진짜 저렇게 말했다니까.”
“그러다 죽겠어요. 좀 쉬엄쉬엄 해요.”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이 지경이 되어서도 손을 멈추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자네는 아나?”
글쎄요, 하고 청년이 대답했다. 그런 걸 제가 알 리가 있나요. 저는 요리사가 아니라 신문 기자라 요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고요.
자신이 가진 재능의 위대함을 모르는 천재의 무심한 말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오직 젊은이들만이 자신의 젊음을 비난하고, 재능이 넘치는 자만이 그것의 무의미함에 대해 이야기하지.
"나는 지금 최후의 만찬에 비견될 만한 '최후의 레시피'를 연구하고 있다네." "과식해서 산책하러 나가는 사람이라도 혹하게 만들 법한 이름이군요. 그런데 최후라니 무엇의 최후를 위한 건가요?"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네, 하고 그가 웃었다. 누구의 최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 자네의 최후가 될지, 혹은 나의 최후가 될지 모르니까.
"그렇게 걱정되면 자네가 한 번 이 뒷부분을 완성시켜보지 않겠나."
그가 건넨 레시피를 본 청년의 눈에 흥미와 호기심이 파문처럼 번져갔다. 그와 비례해 남자의 마음속에는 질투와 죄책감이 뒤범벅되어 엉클어진 웃음이 비릿하게 피어올랐다.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라. 이것은 내가 아니라 신이 너에게 내리는 벌이다. 스스로의 재능을 몰라보고 그것을 깎아 내린 너의 죄. 감히 노력하는 자와 노력하는 자의 시간과 그 사람의 세계를 능멸한 너.
“그 뒤는 영화랑 똑같아. 청년은 죽고 살리에리는 살지.” “......어떻게요?” “뭐, 어떻게든. 천재의 광기보다 범재의 집념이 더 무서울 때가 간혹 있으니까.” “레시피는요?” “살리에리가 평생 들고 있다가 발표 안 하고 죽어. 아, 마지막 문장이 이거야. ‘그의 희망대로 ’최후의 레시피‘는 그의 사후에도 공개되지 않았다.’ ” “......” “요리를 사랑했으나 신에게까지 사랑받지는 못한 남자의 세계에 대한 소심한 저항이지. 자기만이 알아봤던 천재성에 대한 사소한 경의의 표현이기도 하고. 최소한 자기 이름으로 발표는 안 했다고.” “......그럼 결국 그 최후의 레시피는 뭐였던 거에요?” “공개되지 않았다잖아.” “궁금하잖아요.” “그게 포인트지. 하여간 <아마데우스>, 멋진 영화야.”
“이거 원본은 어딨어요?” “처음에는 신나게 쓰기 시작해서 도입부, 중간, 끝부분을 썼는데...” “어, 그럼 다 쓴 거 아니에요?” “말 그대로 앞부분 4문단, 중간 2문단, 그리고 마지막 한 줄 밖에 안 썼어.” “설마 지금 보여 준 게 다라는...” “응.” “......” “......진짜야.”
“왜 다 안 썼어요?” “글쎄, 쓰다 보니 내가 너무 나쁜 놈 같아서였나?” “......” “아니, 생각해 봐. 아무리 경박해 보였어도 모차르트는 음악가에 진짜 천재였지만 이 신문기자는 견습요리사조차 아니었단 말이지.” “......” “살리에리, 이해한다고. 인간이면 보통 다 이해할 수 있어.” “......” “날 믿어. 인생의 다른 부분에선 나도 살리에리니까. 사실, 주로 살리에리야.” “하긴.” “아무튼 그래서 계속 썼다간 살리에리가 꿈속에 나타날 거 같더라. 그래서 더 이상 쓸 수 없었지.”
“......” “......진짜야.”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귀찮았던 거 다 알아요.” “쳇, 눈치 채긴.”
<내일 이 시간에도 올 수 있으면 애드립으로 옵니다.> 한 시간쯤 삽질하다가 스페인 친구 컴퓨터로 접속했습니다. 왜, 왜지. 도대체 왜 저와 하이디 컴퓨터로만 접속이 안 되는 걸까요.
이 회선 자식!!! 날 거부하지 마!!!!닫기
# by 절세마녀 | 2007/01/31 01:23 | 북쪽통로: 세상의끝 시리즈 | 트랙백(1) | 덧글(12)
|
|

독특한 것, 희귀한 것, 아름다운 것들이여, 오라!
by 절세마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