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 음식 만담 (9)
하이디와 함께. 세상의 끝에서 계속되고 있었던 식탁머리 이야기. 오늘의 주제는 음...슬픔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잡동사니로군요.


“그나저나 나 어제 무슨 생각으로 애드립 하겠다고 한 거지.”
“레포트 끝내고 뻗을 줄 몰랐던 거죠.”



세상의 끝에서 - 음식 만담 (9)


“맛있는 거 해주세요!!!”
"......"
"......"
“뭐야, 다짜고짜.오늘은 아직 슬프지 않다고.
"하지만 곧 그럴거에요."


"왜?"
“할 일이 많아요. 빨래하러 세탁실에 가야하고, 가기 전에 50 센트밖에 안 먹는 세탁기를 발로 차지 않도록 동전을 바꿔야 해요.”
“그리고?”
하루에 3시간 밖에 안 여는 하우스 마이스터의 사무실에 가서 3월에 이 집을 나가버리겠다는 이야기도 해야 하고요.”
“앉아서 얘기해. 서류는?”
“프린트해야 하는데, 그러고 보니 아써한테 가서 우리 학점 트랜스퍼도 신청해야하고, 하는 김에 아써한테 프린트랑 메일도 좀 부탁하고, 그러고 보니 아써한테 레포트도 내야 해요.”
“......"
“아, 아써. 지갑 잃어버리면서 없어진 반카드(철도회원카드) 때문에 DB(철도회사)에 전화해야하는데 부탁하면 해주겠죠?”
“해주기야 하겠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아써...”
“......”
“......교수님인데.”


“할 게 이렇게 많은데, 어제 밤에 뭐 했는지 아세요?”
“......뭘?”
지뢰 찾기요. 메모장에 편지 쓰다가.”
“게임 안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게 누구더라.”
“같은 시간에 언니가 프리셀 했다는 거 다 알아요.”
“아냐, 나, 난...”
“......”
“......핀볼했어.”
“그게 그거죠.”
“달라, 좀 더 손가락과 눈의 신체 협응력을 이용해야 한다구.”


“그러니까 맛있는 거 해 주세요.”
“방금 말한 거 다 하면.”
“그럼 이따 저녁 때 먹어요.”
그거 다 하고 집에 들어올 수 있으면 샴페인도 따주지.”
“와!”
“하지만 못할걸?”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돌아왔군. 어떻게 됐어?”
“아써가 위기감에 휩싸인 듯 ‘근데 너 레포트 마감 내일까지인 거 아니?’ 랬어요.”
“그럴만하지. 간만에 나타나서 전혀 관계없는 일거리만 잔뜩 들고 갔으니.”
“알아요. 알지만. 레포트 문제로 가서 상담하고 싶지만 이게 더 급했다고요.”
“괜찮아. 어제 나도 그랬으니까.”
“메일 하나 보내겠다고 해놓고 4개나 보내서 조금 미안하긴 했어요.”
“......”
“두 개 확인할 때까지는 그냥 있더니, 다음 걸 클릭하니까 10분 있다 오겠다고 하고 나가버렸어요.”
“......”
“그리고 부엌에 갔더니 미란다가 못 보던 냄비를 꺼내놨어요.”
“산 거야?”
“아뇨. 집에서 부쳐줘요.”
“......독일 냄비 좋은데, 왜?”
“몰라요. 이제 한 번에 3개씩 꺼내놓는 거 아닐까 살짝 두려워졌어요.”


“......”
“왜 그러세요?”
“음, 남들이 우리 만담을 볼 때 이런 기분인걸까.”
“어떻길래요?”
“웃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웃겨.”


“아무튼 난 그동안 슬픈 소식을 만들어 왔지.”
“만들지 말아요. 뭔데요?”
“이유는 전혀 모르겠는데 학교 무선 랜, 어제 우리만 접속 안 된 거 같아.”
“......”
“......정말.”
“어, 어, 어째서 그런!!”
“옆에 크리스티나가 앉았는데 쌩쌩하니 잘 돌아가더라고.”
“제 것만 안 돌아가는 거면 이해하겠는데 언니 것도 안 되잖아요.”
“애지중지하다 버리려고 들고 나온 랩탑도 아니고. 작년 8월 생산품인데.”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새우가 잔뜩 들어간 스파게티다.”
“오오.”
“뭐, 냉동이지만.”
“샴페인하고도 잘 어울리는데요? 뭘 넣은 거에요?”
“글쎄, 오레가노하고 나폴리 소스였나. 오늘은 볼로네제 말고 다른 걸 시도해 봤어.”
“아, 오늘 스파게티도 훌륭해요. 이 브로콜리 딱 맞게 익은 거 하며, 면은 또 왜 이렇게 완벽하죠.”
"......먼 옛날, 레토르트 정복 사업을 훌륭하게 클리어한 결과랄까."


“설거지 다했는데......찬장 앞에서 뭐해요?”
“누가 100% 초콜렛도 나름 맛있다고 하길래 고민하고 있어.”
“오, 그래요? 어떻게요?”
“핫초코에 타 먹어보라는 게 생각이 나서 만들어 볼까 했는데.”
“......그런데요?”
“왜 그래야 하지? 핫초코 맛있는데.”
“......다른 방법 없어요?”
“그래서 브라우니를 만들 때 넣어볼까 했지.”
“만들까요?”
“왜 그래야 하지? 브라우니 맛있는데.”
“전에 카레에 넣어서 먹었다는 글 읽어본 적 있어요.”
“그러니까 왜 그래야 해? 카레, 잘 하면 맛있다고.”


“전 사실 그거 쓴 맛 때문이라기보다 좀 느끼해서...”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 번 생으로 도전해 보겠어.”
“오오. 훌륭해요.”
“......”
“......도전한다면서 2g 짜리를 얼마나 더 나눌 생각이에요?”
“같이 하지 않을래?”
“아, 아뇨. 됐어요.”


"......"

"......"
“......”
“푸하하하하하하하”
“......왜...”
난 봤어. 언니 표정 완전 무슨...으하하하하하”
“내가 뭘. 그냥 먹었는데.”
“본인은 모르겠죠. 표정이 완전 100% 초콜렛이었어!!”
“쳇, 들켰나.”
“게다가 맛을 안 보고 넘기려고 꿀꺽하는 걸 나는 봤지.”
“......알았어. 제대로 씹어 먹으면 되잖아.”


“오, 어때요?”
“긴장을 하고 먹어서 그런지 그냥 그런대로 괜찮은데.”
“하긴 저번엔 이게 정말 ‘초콜렛’이라고 생각하고 먹어서 충격이 더 컸겠죠.”
“하지만 역시......"
"......"
"이대로 1시간 지나도 입 안에 남아있을 것 같은 쓴 맛이야.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해요?”
“......‘아무리 지우려고 애를 써도 지워지지 않는 인생의 오점’ 같아.”
“와, 그거 너무하다.”
“어째서야. 초콜렛의 탈을 쓰고 이렇게까지 초콜렛이 아니라니. 마치 이 ㄷ..”
“안 돼. 제발 스톱. 거기까지!!”
“왜? 내가 무슨 소릴 했다고.”
“마치 유럽인데 유럽 같지 않은 이 도시 같다고 할 거잖아요.”
“응, 맞는데.”
“남의 입으로 구체화시켜서 듣고 싶지 않았어요. 제발.”
"...괜찮아. 아직 디저트가 남아있으니까."



"......"
"......"
"이거 수상한데."
"음, 미심쩍어요."
"이유가 뭐야. 왜 오늘은 더 맛있는 거야."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왜 이렇게나 더 달콤한거야!!"
"아아, 이거 한번 더 만들 수 없을까요, 어떻게?"


"음, 노력해보도록 하지."
"좋은데, 어떻게요?"
"...또 손으로 재면 되지 않을까?"
"식신을 잘 달래두세요."

"한국 가서 한 번 만들어 보겠어. 그리고 만든 다음에 파티라도 하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말하는거지."
"오, 뭐라고요?
"이 브라우니는 내 살이요, 상그리아는 내 피라..."
"......킥."



"역시 이 밀크티, 남은 기간 동안 수련할래요."
"좋을대로. 마시고 싶은 양보다 우유를 조금 더 적게 끓이다가 설탕을 녹이는 동안 옆에 커피포트로 물을 쪼금만 끓여서 차를 우려내다가..."
"내다가?"
"'에잇, 알량하게 한 두잔 마시는데 찻물 우리기 귀찮아!' 라면서 찻잎을 우유에 던져넣는거야."
"......"
"그리고 계피는 대충."
"......그게 다에요?"
"응, 다야."





<내일 이 시간에 계속...
...이라고 말하기엔 저 이 도시 탈출할래요. 브뤼셀 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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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 2007/02/02 03:40 | 북쪽통로: 세상의끝 시리즈 | 트랙백 | 덧글(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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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너구리 at 2007/02/02 03:47
아아.. 브뤼셀.. 초콜렛과 와플과 방쇼와 홍합찜.. 다음번 음식만담 기대하고 있을께요.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2/02 03:51
헉, 빠르시다. 올리자마자 ㅠㅜㅠㅜ 홍합찜 먹고 싶어요 ㅠㅜㅠㅜ
Commented by 泰虛 at 2007/02/02 03:54
기다렸습니다! +_+)!
Commented by 카시아파 at 2007/02/02 03:56
너무너무 기다렸어요!!!!!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2/02 04:03
아니, 왜 이시간에 다들 ㅠㅜㅠㅜ
Commented by 泰虛 at 2007/02/02 04:03
아아... 결국 초코렛이 아닌 카카오에 도전하셨군요. 72%도 한참 가는데.
그곳을 탈출하더라도 식신은 틈틈이 챙기세요. (귀)신은 신경안써주면 삐진댑니다.
Commented by 泰虛 at 2007/02/02 04:05
아, 무선인터넷이 안된다면 무선인터넷 카드를 바꿔보세요. 무선랜이겠죠?
회사별로 성능이 천차만별인 것 같던데요.
Commented by LOKIEL at 2007/02/02 06:55
그러게 '지워지지 않을 오점' 따위 왜 또 먹어본거야 풋;;;
'유럽 같지 않은 유럽'인줄 알면서 왜 교환 갔던거야 큭;;;
'웃으면 미안할 거 같은데 웃길' 줄 알면서 왜 쓴거야 헷;;;

대체 너는,
다 알면서도 루트를 바꾸지 않는 게 나쁜거야 ㅋㅋㅋ
(그래서 또 내가 자네를 사랑하지 ㅋㅋ)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7/02/02 08:55
밀크티 레시피 메모~. 그러나 이걸 재현할 수 있을지는....;
오늘도 재미있게 보고 밀크티 마시러 갑니다.>ㅁ< (홀짝)
Commented by Vampire at 2007/02/02 09:46
USB로 연결하는 외장형 무선랜을 써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esatto at 2007/02/02 20:47
부서질 줄 알면서 뛰어드는게 인생일까용~☆
Commented by 동굴아저씨 at 2007/02/02 20:49
우와...으외로 밀크티의 제조법은 간단...(과연 간단한걸까?)
문득...새우 파스타를 보니 새우가 미친듯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그것도 살이 통통하게 오른 대하로...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2/03 02:06
泰虛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몇 주 있으면 한국 돌아가지 말입니다...돌아가면 별로 문제 없이 쓸 수 있어요 ㅠㅜ 반년 전에 산 거라구요 ㅠㅜㅠㅜ

로킹//내가 좀 호기심 천국이잖아...내 미각에 이상이라도 있나 했지 뭐. 치사한 놈, 너도 다 알았으면 날 좀 말리라고 ㅠㅜㅠㅜㅠㅜ(라뷰)

키르난님//사실 만드시고 나서 맛있다고 마음 속 깊이 우기시면 되는 거지 말입니다. 웃흥

뱀파이어님//...이 도시만 나가면 어디서든 연결은 잘 되지 말입니다 ㅠㅜㅠㅜ

에사찡//and that's so human, isn't it?

동굴아저씨//쉬, 쉬운게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하, 저도 대하 먹고파요 ㅠㅜㅠ

Commented by ★花夜★ at 2007/02/05 12:30
너무 재밌어요
대화가 예술입니다....우울할때 맛난거 먹음 기분 좋아 지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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