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 음식 만담 (11)
세상의 끝에서 돌아와도 남은 이야기는 계속 됩니당. 오늘의 주제는 미란다, 이녀석!


"왜 이렇게 늦게 올리는 거에요?"
"...갑자기 인터넷이 너무 잘 되잖아."


세상의 끝에서 - 음식 만담 (11)


“어, 웬일이세요?”
“환경을 바꿔서 식사를 해보고 싶었어. 우리 집 부엌 조금 질리기도 했고...”
심심하다 못해 환경을 바꾸고 싶은 거라면 좀 더 좋은 곳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아요?”
“왜, 미란다 냄비 또 안 치웠어?”
두 개나 올려놓고 방으로 사라졌어요.”
“그냥 닦아서 쓰면 안 돼?”
“그러고 보니 거기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게 있어요.”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
"......"
"그니깐 뭘 올라오세요."
"참혹하구나."
"언니는 인마더러 아침에 우유 컵 안 닦고 나간다고 불평하시지만 그 정도는 애교라고요."
"하긴 그건 내키면 내가 닦아버릴 수도 있지."
"부엌 청소 싹 해놓고 샤워하고 나왔는데 이 기름때 묻은 냄비가 눈에 들어오면..."
"와, 그거 굉장한걸. 이 기름때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머리결을 타고 흘러내리면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찝ㅉ......"
"아악. 그렇게 말로 구체화하지 말아요, 좀."



"뭐, 아무튼."
“오오오, 진짜 홍합이네요?”
“그래, 이 맛이야. 가슴 속 깊이 북해의 파도가 물결치는구나.”
“벨기에에서 사온 건 그렇다 치고 이거 북해산이에요?”
“응? 설마 아닐라고.”
“알고보면 '알래스카산 영덕게' 같은 걸지도요.”
“그 정도 디테일은 마음의 눈으로 무마해주겠어.”



"오른쪽은 굴소스 새우볶음이고, 왼쪽은 뭐에요?"
"똑같은 건데, 페코리니 치즈가 들어간 토마토 소스를 넣었어."
"오옷, 여러가지 만들기 귀찮다더니."
"이 정도는 그냥 원소스 멀티유즈지."


"하려던 얘기는 뭐야?"
"그 전에 여기서 말하면 알아들을테니까 호칭을 다른 걸로 바꾸는게 어때요?"
"......"
"......"
"그럼 오란씨?"
"갑자기 왜 그게 나와요?"
"미란다니까."
"그러고보니 한국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연관성이네요, 좋아요."


"글쎄 말이죠. 전 여태껏 혹시 제가 뭐 잘못한게 있는줄 알았어요."
"왜, 오란씨가 뭐라 그래?"
"다른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미란다가 그러는데 혹시 니가 걔 냄비 썼어?'라고 그러는 거에요."
"......"
"......그렇게 냄비를 올려놓는 게 진짜로 절 못 쓰게 하려던 건가 봐요"
"내 식신에 맹세코 지난 넉달 동안 네가 그 집에서 밥 먹은 적은 세번 뿐이야."
"저도 어이가 없어요. 한번은 네가 깜빡하고 물컵이랑 스푼 하나 싱크대에 놓고 잔 적 있거든요."
"근데?"
"다음날 아침에 '좀 씻지?'하고 메모가 붙어있는 거에요."
"......뭣?"
"보는 순간 혈압 올라서 냄비 들고 창밖으로 집어 던질 뻔 했잖아요."


"게다가 더 웃기는 건 그놈의 냄비, 처음엔 저더러 그냥 쓰라고 했단 말이에요."
"이사했을 때 말하는 거지?"
"네. 처음에는 사이 좋았어요."
"그랬어? 늘 티껍게 인사하길래 원래 그런 줄 알았어."
"아냐요. 나름 뮌헨에 같이 여행간 적도 있어요."
"오호."
"언니가 오기 전엔 늘 저녁도 같이 먹었다고요."
"......저녁식사를?"
"네."
"......늘 같이?"
"네."


"......"
"......어."
"풉"
"그러고 보면 언니가 온 다음부터 묘하게 툴툴거리기 시작했는데."
"푸하하하하하하하, 미안해 미란씨."
"뭔가 그 다음부터 인사도 티껍게 받기 시작했..."
"고의는 아니었는데, 저녁 식사 말상대를 뺏어가서. 푸하하"
"......"
"외로웠으면 말을 하지. 같이 먹을 수도 있는데. 푸하하하하하하."
"오란씨, 내가 좋았으면 말을 해, 말을."
"소심하고 치사하게 반항의 퍼포먼스를 펼쳐봤자 너무 오래 걸린다고."


"게다가 생각해보니 오란씨가 썸씽이 있던 남자애가 있었어요."
"근데?"
"그때쯤부터 안 오기 시작했어요."
"오오, 뿌리 깊은 이중의 원인 발견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이 사는 사람한테 이게 뭐에요?"
"같이 사는 사람한테 불만이 생기면 빨리 풀어야하는데 넌 나만큼이나 이 집에 안 붙어있잖아."
"사는데 뭔가 사건이 일어나야 잊어먹기도 하고 그럴텐데 이 동네 지겹도록 시간은 안 가고 말이죠."
"이 지겨운 동네에서 집에만 있으니 성격 버리는거 당연하지."
"거기다 남자 문제 스트레스였다니."
"애도 아니고, 어디서 화풀이야."
"애 맞아요."
"응?"
"나이가 언니보다 한참 어려요."
"......미스테리 풀렸으니 디저트나 먹자."




"......"
"......"
"대체 이유가 뭘까요."
"왜 이태리는 과자조차 맛있는 거지."
"칸투치니도 그렇지만 저번에 사온 무리노 블랑코의 초콜렛 과자."
"그것도 좋고 이거, 버터 함량은 적고 곡류를 잔뜩 넣어서 만든 것 같은 이 쿠키의 건전함. 소금과 버터, 초콜렛을 미친듯이 넣은 독일 과자랑은 차원이 달라."
"......"
"마치 태양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통밀과 보리 같은 걸로 만든게 아닐까 싶은데, 느끼하지도 않고 그렇게 달지도 않으면서 달달한 것이 커피랑 먹으니 환상적..."


"...안되겠어요."
"응?"
"이태리 가야겠어요."
"뭐?"
"과자 얼마 안 남았다고요."


"......"
"......"
"잘 다녀와."
"왜 안 말리는 거에요?"
"가는 김에 내 것도 좀 사와."
"......"
"넌 할 수 있어."
"......"
"트롤리 빌려줄게."
"......"
"지금 가면 카니발도 할걸. 가서 보고 와."
"......"
"겨울에 유럽에 있을 수 있다는게 인생에서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거든. 갈 수 있을 때 가."
"와, 이 악당. 유혹하면 갈 것 같아요?"
"카니발 보러 가는 김에 덤으로 과자 좀 사오면 되는 건데 뭘, 안 그래?"
"음, 으음. 하지만 저 어머니 오시면 파리도 가야하는데..."
"파리에는 저 과자 없잖아?"





























<결국 과자사러 이태리까지 밤기차 타고 14시간 넘게 달린 용자,
그대의 이름은 하이디>





유레일 패스가 남았었어요(...)
아참, 왕복으로 기차 타고 갔다 왔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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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 2007/02/28 02:28 | 북쪽통로: 세상의끝 시리즈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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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동굴아저씨 at 2007/02/28 02:33
007 영화 보고 포스팅좀 한 다음에 벨리를 보니 제일 먼저 보이는 이글.
...
과연...오란씨.(푸들들)
이태리의 과자가 먹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죽기전엔 이태리에 여행을 가봐야겠군요.
요리도 먹고 과자도 사오고...
그런 유로제한이 얼마더라...(멍~)
Commented by 니니아 at 2007/02/28 02:41
푸하하하하 ㅠ,ㅠ
저 막 머리 박구 웃었어요.
하이디님 너무 멋져요 ㅠㅠ!!! 한국의 개념으론 부산에서 서울에 과자먹으러 KTX타고 가면 되는건가요...() 와 멋져요 O<-<
맨왼쪽위에 있는 과자 왠지 바나나킥의 향기가 느껴져요 맛있을거 같네요 [침]
대구로 저 과자 한개만 EMS로 부쳐주시면 안될까요 [짝]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2/28 03:03
동굴아저씨님// 죽기전엔 꼭 가셔야해용//-///////////

니니아님// 낄낄낄낄 한국 개념으론 부산에서 함경도까지 기차타..는것보다 오래 걸립니다 낄
Commented by 나무벌레 at 2007/02/28 07:09
푸하하하하! 하이디님 최고네요...............하아아...
Commented by 泰虛 at 2007/02/28 08:36
돌아오셨군요.
Commented by 泰虛 at 2007/02/28 08:42
우와아.. 환경의 힘이란 경이롭군요.
Commented by esatto at 2007/02/28 09:01
같이 있으면 서로 닮는건가요 용자님이 두분이네요(..
Commented by 비류연 at 2007/02/28 09:06
흑흑... 절세마녀님 포스팅을 보고있자면-
유레일 패스도 없고, 여권도 없는 저도 이태리에 가고싶어져요(...)
Commented by ★花夜★ at 2007/02/28 10:37
크하하하 미란다의 냄비의문이 풀렸군요 ㅋㅋ 그 과자가 그렇게 맛있는 거에요!!!!
Commented by Belphegor at 2007/02/28 10:38
과자를 위해 14시간을 달리다니...미스터 초밥왕이나 식객이보면 패배를 인정할지도요;
Commented by aida at 2007/02/28 11:40
으하하하하하 못살아영 하이디님 진정 용자!!!!! ㅠ0ㅠ)b 근데 쿠키 진짜 맛있게보여요 하앗
Commented by 에이미 at 2007/02/28 12:50
하이디님 멋져요..푸하하. 남은 유레일 패스에 왕복으로 과자만..과자만~! 저도 라면 하나 먹겠다고 강 건너가는 일이 있지만 이건 비교도 할 수 없네요. 언젠가 이태리에 꼭 가야겠어요.
Commented by muru at 2007/02/28 13:57
정말 서로를 뽐뿌질하는 음식만담콤비!!
호식미식의 염장이 휘몰아칩니다ㅠㅠㅠㅠㅠ
보기에도 맛나보이는데 아래 설명이 참으로 침샘자극이라...밤에 과자사러가는 대인배플레이(!)가 이해가 됩니닭.......ㅇ<-<
Commented by 카시아파 at 2007/02/28 14:48
푸하하하~~~ 미란다와 오란씨....미란다와 오란씨.... ㅎㅎㅎㅎ
그러고 보니 일본애 카오리 뒷담화를 깔 때 홍어로 부른 적이 있죠. 가오리와 홍어. 헌데 말하다보면 홍어라고만 하는 게 아니라 멸치 꽁치 문어 각종 해산물은 다 나왔었다는.....ㅎㅎㅎㅎ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3/02 09:12
나무벌레님//네덜란드에 계시는 님도 하실 수 있어욧!! 물론 거기서 기차타고 이태리 가는 건 쪼끔 무리겠지만서도요.

태허님//환경적 가능성이란 인간에게 무한한 힘을 줍니다. 네 ㅠㅜ

에사찡//...하이디 저 녀석이 좀 카피가 빠르더라구용..>-<-0

비류연님//ㅠㅜㅠㅜ엇그제 갔다온 저도 또 가고 싶어져요 ㅠㅜㅠㅡ

화야님//네, 냄비에 대한 의문은 나름대로 내렸습니다...만 역시 다시 생각해도 좀 이상한 애에요 ㅠㅜ

Belphegor//근데 또 나름대로는 뭐랄까, 그 도시가 싫다보니 유럽의 다른 어떤 도시로든 떠날 핑계거리가 필요했던건지도 몰라요. 우훗

아이당님// 웃흥, 맛있어요, 맛있어요. 그니깐 횟감 싸들고 오세영 //-//

에이미님//뭐, 정말로 겸사 겸사 카니발 보러 간 거긴 하지만요. 과자 진짜 맛있거든요 ㅠㅜㅠㅜ

무루님//낄낄, 이거 무려 대인배플레이인겁니까!!

카시아파님//전 종종 헷갈려서 미란씨라고 부르긴 했어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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