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

무려 작년 9월에 꿨던 꿈 이야기 정리

꿈: 바닷소년의 기억




이상한 꿈을 꾸었다.


쇠락한 어촌에 흔하게 전해져오는 전래동화같은 꿈이었다.
나는 아마도 그 어촌의 몇 안되는 아이였던 모양으로, 또래의 동네 아이들과 뜀박질이나 자치기 같이 수수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을이 크면 먼 바다로 나간 큰 배에 물고기가 하나 가득 실려 돌아오는 것을 기다릴 만도 하건만, 이곳은 너무도 작고 초라해 만선의 꿈은 기대도 할 수 없었다. 때로 김이나 미역을 한다발 캐 돌아오는 아낙들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쫓아다니는 아이들은 있었다. 그러나 내 꿈에 등장하는 내가 거의 늘 그러하듯이, 나에게도, 그리고 그들에게도 '어머니'나 '아버지'는 없었다. 그냥 있을 것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 마을에 문득 생각나기라도 했다는 듯 '그녀'가 나타났다. 푸른 빛이 살짝 도는 백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는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마을의 일상적인 풍경처럼 녹아들었다. 우리는 그녀를 좋아했다. 아니, 새로운 것에 흥미를 보이며 신기해하면서도 쉽게 다가가지는 못하는 보통의 아이들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맴돌았던 것 같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모르나 나는 무리 중에서도 그녀와 꽤 가까운 사이-물론 개인적인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였다. 바위 위에 앉아 석양이 한숨처럼 내려앉는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 옆에, 그녀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 있는 거리를 모른 척 하고 앉을 수 있던 것은 나 뿐이었고, 가끔 들을 수 있는 혼잣말에 무심하게 대꾸하는 것도 나 뿐이었으므로. 이런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주로 빠지게 되는 상투적인 착각이나 다소의 오만함이라고 해도 좋다. 솔직히 나는 혼자만 알게 된 그녀의 미소-다른 사람을 향해서는 잘 웃지 않았다-에 조금 우쭐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런 식의 전개도 얼마나 평범하기 그지 없는가-, 배를 묶어두는 부두에서 큰 소리가 났다. 마을 사람들을 한데 모이게 한 소란의 주인공은 이 작은 어촌에서는 몇 번을 다시 살게 되더라도 보기 어려운 바다의 맹주였다. 왠 상어가, 그것도 입을 한껏 벌리면 사람 한 두명은 그대로 삼켜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상어가 뭍까지 다가와 난동을 부렸다. 사람들은 어쩔 도리 없이 조각배들이 더 작은 나무 조각들로 산산조각나는 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 역시 너무 놀라 압도적인 분노와 힘 앞에서 멍한 정신-평소처럼 돌을 던지고 어쩌고 할 정신도 없이 말이다- 으로 입을 헤 벌리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그녀가 평온한 발걸음으로 다 부서져가는 부두 위를 걸어갔다. 그러더니 날카로운 이를 세우고 맹렬하게 달려더는 상어에게로 손을 뻗었다. 우리는 여전히 이 당혹스런 사태를 이해할 수 없어 머뭇거리던 참이었다. 잊혀져가는 바닷가에 집채만한 상어의 등장과 위기의식이라고는 없이 내뻗은 가냘픈 여인의 손-그것도 어촌에는 걸맞지 않는 흰 손-중에 어느 쪽에 더 위화감을 느껴야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다정하게, 정말 아무 거리낌없이 이 바다의 불청객을 어루만졌다. 성난 숨소리가 가라앉고, 나무 파편에 상처입고 피 흘리던 이를 감추자 위험천만해 보이던 포식자는 유랑극단의 맹수들처럼 얌전해 보였다. 그리고 상어는 바다로 돌아갔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아니, 어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시의적절한 해명을 하지 않았기에 그녀 주변에서 떠돌던 호기심 어린 눈초리들은 점점 의혹과 의심에 물들어갔다. 결국 어느날엔가부터는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부외자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이 또한 통상적인 전개다). 그리고 그러한 나날들이 반복되었다. 때로 그녀는 마을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바다에 면한 바위에 올라앉아 지는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주위를 맴돌던 아이들도 하나 둘 줄어 마침내 나를 제외한 서너 명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어느 정도의 간격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이어서 간혹 그녀는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묘한 미소를 보내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어디선가 모포를 주워와서 몸에 둘둘 감고 그녀의 곁에 앉았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고, 또 열흘이 스무날이 되고. 이런 식의 일상이 당연해져버려서 나는 그녀가 바다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라고 별 이유도 없이 확신했다. 돌아가다니, 그녀가 바다에서 왔음을 알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녀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하는지, 심지어 인간이 맞기는 한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이 또한 나의 근거 없는 감으로 어쩌면 그녀가 바다에서 온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또다시, 여느 날들처럼 햇빛이 내리쬐는 한낮이었다. 정오에 그녀가 있을 법한 곳으로 향했을 때, 그녀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당황해 그녀를 찾았다. 바다를 향해 달리던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어린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이 원을 그리는 사이로 어렴풋이 흰 은발을 늘여트린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 멈춰 세우고 싶었는데, 이름을 몰라 부를 수가 없었다. 외침은 웅웅거리는 메아리가 되어 바람에 지워졌다.


바다 연안에 거의 다 도착해서야 그녀는 뒤돌아 보았다. 나는 아직 모래사장을 건너기 전, 마을과 바다를 가르는 차도를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다시 망설임 없이 바다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안돼, 가지 말아요. 나는 아직 이별을 준비하지 못했고, 늘 전하고 싶었으나 차마 쑥쓰러워 하지 못했던 말도 있다. 그래서 다급하게 보도 블록 아래 차도로 발을 내딛는 순간...


땅이 유사처럼 쑤우욱 꺼졌다. 깜짝 놀라 눈을 감았다 뜨니 이미 푸른 빛이 어른어른대는 바다 속. 여전히 저 앞에는 그녀가, 바다 물빛으로 푸르게 물든 그녀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주위에서 깔깔거리며 따라다니던 아이들은 어느새 지느러미가 예쁜 물고기가 되어 그녀를 뒤따랐다. 물론 나도.


미로같은 해초 사이를 지나 그녀가 다다른 곳은 바위로 둘러싸인 어느 보금자리였다. 그곳에는 푸르스름한 그림자를 걸친 한 남자가 가로 누운 채 병이라도 걸린 듯 간신히 숨을 잇고 있었다. 눈에는 인간 남자처럼 보였음에도 나는 그가 이전에 마을을 어지럽히던 상어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의 곁에는 정말이지 반질반질 이쁘장하게 윤이 나는 새끼상어가 얌전히 잠든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고기들은 지느러미를 팔랑거리며 그녀 주위에 몰려들었던 그 때처럼 새끼상어를 감싸고 돌았다. 남자는 다소 원망어린 시선을 그녀에게 보냈다. 그리고 말했다.


왜 이제야 왔어.


얼마나 기다렸는데-라고 금방이라도 내뱉을 비난을 가까스로 참고 있는 그를 보고 있었으면서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늘 그렇듯이 부드럽게 미소지었을 뿐. 언젠가와 똑같이 손을 내밀어 애정어린 손짓으로 쓰다듬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듯 할딱이던 남자는 그것이 무슨 생명줄이기라도 한 것처럼 절박한 몸짓으로 입을 맞추고 눈물을 흘렸다. 아름답고, 신비하고, 또 슬펐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가 인간이 아닐지도 모른다든가, 내가 이 바다 밑에서 어떻게 숨을 쉬고 있느냐와 같은 문제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여자와 그 남자(라기보단 역시 상어)가 어떤 관계인지, 또 그 새끼 상어는 무엇인지, 왜 내 친구들이 물고기가 되어 있는지 보다도, 그 자리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나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처음으로 따뜻하게, 그러나 곧 익숙한 습관처럼 웃어 주던 나날들과 마찬가지로 사실 그녀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어쩔 줄 몰라 일그러진 나의 입 모양을 따라한 것 뿐인지도 모른다.


질투할 수는 없었지만 항상 그녀의 마음을 빼앗고 있는 바다가 부러웠다. 어깨 너머로 힐끗 힐끗 보이는 그 남자도 부러웠다. 비난이었을망정 자연스럽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와 그녀의 대화가 겹쳐지는 경우는 없었으므로. 설령 그가 그녀에게 잊혀졌거나 버림받은 존재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가 아픈 이유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었고, 이렇게 되어서야 깨달았지만 나도 그러했다. 저기 누워있는 것이 그 아닌 나라 해도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바다를 사랑했으나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고, 뭍의 바람을 사랑했지만 나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바다는 더 이상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물 속에 뿌리를 둔 맹수와 어촌의 소년은 바다의 가호를 잃어버렸다. 물 속을 떠날 수 없었을 남자는 죽어가고 있었고, 바다는 나를 도저히 차마 삼키지 못해 토해냈다.


파도에 밀려 마을로 돌아왔을 때, 동네를 헤집던 어른들이 달려나와 다그쳤다. 나는 대답했다. 아이들은 바다의 연인이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데리고 갔노라고. 그리고 거기서 영원토록 행복한 어린아이로 있을 수 있을 거라고. 나는 다른 세계를 엿보고 돌아온 이들이 대부분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대답했다. 몇몇은 울겠지만 곧 체념하고 안도하도록.


나는 돌아옴을 기약하지 않고 마을을 떠났다. 아니, 꿈이 계속해서 이어졌다면 분명 그랬을 것이다. 보통의 이야기 책이 그러한 것처럼. 미련 없이 혹은, 상처받아 외면하듯. 그리고는 마을을 떠나 평범하게 나이를 먹고, 평범한 사람을 만나 더할 나위 없이 평범한 삶을 꾸리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나면 그제서야 첫사랑의 추억을 회상이라도 하듯 궁색한 핑계를 애써 찾으며 마을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철모르는 어린 아이 시절에 바다를 만나 사랑에 빠졌음에도 삶과 도락에 지쳐 잊어버린 뒤, 자신의 아이가 생겨야 비로소 그들을 위한 휴양지로 다시 바다를 떠올리는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곳에는 그녀도 없을 것이고, 알던 얼굴들도 바뀌었을 것이며 어쩌면 마을조차 사라져 다른 장소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내가 바다였던 그녀를 향해 그 언젠가 그의 목소리를 빌어 무슨 말부터 꺼낼지는 자명하다.

















...그 남자가 상어만 아니었어도 머리 속에 떠오르는 개그이미지를 어떻게 눌러놓고 금방 끝낼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상어라니...상어라니...제 무의식은 왜 이런거...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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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 2007/04/06 00:20 | 서쪽 탑: 상상의 서고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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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泰虛 at 2007/04/06 01:36
세상의 끝에서 살았으니까..? 음.. 어려운 문제인 것 같지만 그렇다고 또 납득이 안가는 것도 아니군요.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4/06 01:37
...그곳에 가기 한참 전에 꾼 꿈이라는 반전>-<-0
Commented by 아름다운달 at 2007/04/18 01:00
언니 - 언니의 글솜씨에 감탄 -!!
자주 와서 읽을게요 ~ 예쁜 글 많이 올려줘요 ~^ ^



마음에 드는 구절 - 어쩌면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어쩔 줄 몰라 일그러진 나의 입 모양을 따라한 것 뿐인지도 모른다.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4/18 01:17
호, 호곡? 희안한 데를 좋아하는구나. 낄낄 자주 놀러 오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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