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왜 그러세요?" "......피렌체 가고 싶어."세상의 끝에서 마지막 탈출기 - 피렌체, 나의 사랑하는 (4) “그럼 원하시던 건 다 본거에요?” “...아냐. 하나 못 봤어.” “뭘요?”
"메디치 채플[Cappella Medici]에 있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Duke of Nemours)와 로렌조 데 메디치(Duke of Urbino) 묘..." "뭐하던 사람들이길ㄹ..." "...에 있는 조각. 미켈란젤로의 [새벽], [황혼], [낮]과 [밤]이 있어서 꼭 보고 싶었는데, 문을 너무 일찍 닫아서 말야.”
[Tomb of Giuliano de' Medici, 1526-1531, Michelangelo]
[Tomb of Lorenzo de' Medici, 1526-1531, Michelangelo]
"드라마틱한 표현력에 양면성을 결합해서 완전성을 추구하는 게 좋아." "무슨 소리에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마주 보고 있는 두 무덤의 구성이 얼핏 보면 대칭인 것 같지만 사실은 대칭되는 각각의 요소에서 변화를 주고 있잖아.
[Giuliano, Tomb of Giuliano de' Medici(detail), 1526-1531, Michelangelo]
[Lorenzo, Tomb of Lorenzo de' Medici, 1526-1531, Michelangelo]
칼을 들고 '행동하는 인간상'인 줄리아노랑 고개를 돌린 채 '사색하는 인간상'으로 대비되는 로렌조도 그렇지만, 그 아래 몸을 움츠린 포즈의 낮과 밤, 몸을 드러내는 릴렉스 포즈를 하고 있는 황혼과 새벽의 대비가 가져오는 조화랄까. 동세의 방향과 표정에서도 변주가 일어나."
"특히나 행동하는 인간상 주제에 이렇게나 고요하게 우수에 젖은 얼굴이라니, 이런 게 또 묘ㅁ..." "그냥 미남이라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 "......" "구, 굳이 고르라면 난 '밤'의 누드가 좋은데 말이다."
[Night, Tomb of Giuliano de' Medici(detail), 1526-1531, Michelangelo]
"......" "그러고보니 잘 생겼네. 석고상 데셍할 때 쓰는 '줄리앙'의 원판이 이 줄리아노이긴 해. 나이 더 들었을 때 초상화 찾아보면 별로 그렇게까지 미남형이 아닌 것 같아서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뭐랄까, 이건 미켈란젤로식 이상주의의 반영이랄까. 오히려 다비드 상이랑 닮았다고들 하더군. "
[Dawn, Tomb of Lorenzo de' Medici(detail), 1526-1531, Michelangelo]
"아, 새벽, 낮, 황혼, 밤이 시간의 순환과 영원성을 의미한다는 소리는 저도 들었어요." "설명하기 쉽도록 손에 딱 잡히는 테마를 잡아서 집약적으로 구성하는 것도 재능 중의 하나지. 아무튼 내가 근육에 좀더 세심한 취미가 있었다면 틀림없이 미켈란젤로를 숭배했을거야." "어, 아니에요?" "음, 살아서 꿈틀대는 것 같아서 엄청 좋아하는 건 맞는데, 개인적인 로망은 미묘하게 좀 더 베르니니 쪽이라서 말야. 일단 내 안의 판타지와 부합하니까." "보르게제에 있다는 [아폴론과 다프네] 같은 거요?" "응."
[완소스런 아폴론의 손목과 발목. 우리 이 얘기는 좀 더 나중에 하기로 해요 //-//]
"아무튼 못 봤으니 더 할 말은 없어." “저런, 아쉬워라.” “아쉽긴 하지만 괜찮아.” “에? 틀림없이 아쉬워서 미친 듯이 벽을 두드리며 Take me back! Take me back!하는 거 아니었어요?” “괜찮아." "......" "이로써 대놓고 피렌체에 또 가야만한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이 생겼잖아.”
"......솔직해지셔도 괜찮은데." "괜찮다니까." "......" "왜 이래, 정말이지 괜찮다는데!! 아악, 그래. 내가 바보였어. 거기 가서 그걸 못 보고 오다니. "
"전에 로마에서 만났던 어떤 남자가 말야." "민박집에서 잠깐 본 사람말하는 거죠?" "응, 베니스에서 로마로 바로 왔다길래 '어, 피렌체는요?'하고 의아해 했던 적이 있어." "그래서요?" "'거 뭐, 피렌체. 도시 째끄매서 반나절이면 다 보겠던데요. 기차역에서 내려서 슥 보고 왔죠.'라더군." "......"
"물론 나도 대도시 좋아해." "그래보여요." "영화광한테 영화 한편 편하게 보여줄 수 없는 소도시 따위. 세상의 끝에서 살아봤더니 다시는 그런 곳에 가고 싶지 않달까." "지루한 것도 싫고 말이죠." "대도시를 좋아한다는 것도 그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대도시가 제공할 수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일면이 좋은 거긴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서울은 나한테 의외성을 좀 상실했지. 너무 오래 살았으니까." "아무튼 그런데요?"
"잘 알지도 못하는 그 남자의 목을 붙들고, 흔들며 토해내라고 하고 싶었어." "뭘요?" "그 사람이 과거에 피렌체에 머물렀던 찰나의 시간, 어쩌면 앞으로 또 들렀다가 풋하고 코웃음치며 지나칠지도 모르는 미래의 전부." "......" "그런 소리 할 거면 제발 나 좀 줘. 여기 수없이 흩어져 있는 보석들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지나칠 거라면 그 시간 전부 내놔. 미술사에 무지해도 좋으니까 '풋'하고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그런 그림쪼가리 돈 내고 볼 시간이 있으면 밥이나 사먹고 해변가 가서 진짜 아가씨들이나 감상하겠다'는 식으로 말하지 마. 나, 난 취향의 차이라는 걸 인정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작품이나 작가를 몰라도 전혀 문제삼지 않지만, 모르는 게 자랑인 것처럼 훗 하고 비웃는 태도는 정말 참을 수가 없어. 당신은 이태리에 왜 온거야. 그럴 돈 있으면 나 줘. 이 도시는 내 거야. 뭘 어떻게 해도 내 것이 되진 않겠지만 그러니까 더더욱 내 꺼라고. 엉엉엉." "하하, 마지막은 무슨 소리에요. 하나도 말이 안 되잖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넌 그런 적 없어?" "음, 글쎄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모네의 아이리스." "아..." "알겠지?" "그 앞에 1분이라도 더 서있다간 손을 뻗어서 훔쳐올 것 같은 충동에 사로잡힌 적이 있죠." "거봐. 순수한 애정이 가장 유치한 형태로 발현되면 소유욕이 되버리잖아. 역은 성립하지 않지만." "이해는 했는데 말이에요,
혹시 그런 식으로 자신의 파산을 정당화 할 생각이라든가..." "......" "......" "너, 요즘 날 너무 잘 읽는다." "붙어서 서너 달 살다보면 그런거죠, 뭐."
“그나저나 파산이라니, 어쩌다 그렇게 되신 거에요?” “내 잘못이 아냐. 지름신의 가호를 받는 도시를 어떻게 물리쳐.” “떠나기 전에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된다!’ 고 하셨잖아요.” “로즈, 상황이란 언제든지 바뀌는 거야. 이를테면 목적 없이 쏘다니던 거리에서 100% 마음에 드는 가방을 발견한다든가 하는 식이지.” “닥터라면 하고 많은 물건 중에 가방을 지르지는 않을 걸요.” “그렇게 찾을 때는 안 보이던 롱부츠가 반액 세일 가격으로 눈앞에 등장한다든가.” “결국 찾으셨네요. 축하해요. 쇼핑 여유 없었을텐데 가방과 부츠면 빠듯할만 하죠, 뭐.” “덤으로 전혀 살 생각도 없었고, 찾을 길도 막막했던 물건이 떠나기 전 날 기적적으로 나타난다든가.” “......” “......” “......뭐 샀어요?” "훗, 맞춰봐."
"눈독 들이던 은접시 콜렉션?" "어이, 난 갑부가 아냐."
"그럼 혹시 물담배?" "아냐, 물론 저 물담배 오른쪽 아래 놓여져 있는 약간 긴듯 날씬한 파이프가 좀 탐나긴 했지만." "......" "정말이야. 저 가냘프고 얄쌍한 디자인이 너무나 탐이 났는데 난 담배를 안 피잖아." "사와서 친구한테 선물한다든가." "'내' 로망이래도."
"양철 위스키 포켓병이라든가?" "내가 거기 로망이 있는 건 맞지만 난 술을 별로 안 좋아해."
"설마 전에 봤던 크리스탈 잉크병 세트를 질렀다든가?" "아무리 로망이 좋기로 인생 초기에 벌써부터 가산 탕진할 일 있나. 저거 백만원 넘어." "왠일로 상식적인 소릴 하세요." "무슨 소리. 난 훌륭한 상식인이야." "......" "가질 수 없으면 사진이라도 찍는다!! 무리 없이 대리만족 스킬을 터득했는데 훌륭하지 않아?" "......" "......" "말해놓고 조금 자괴감 느끼지 않았어요?" "...응."
"아무튼 그럼 뭐에요?" “피렌체에 왜 그 예쁜 공예지 파는 가게들이 많잖아.” “그렇죠.” "들어가서 구경하는데 이런 이니셜이 찍힌 봉투 모음을 본 거야.“
“헉, 이건 처음 보는 디자인인데!” “완벽하지? 이걸 찍을 수 있는 금속 도장을 샀어.”
“언니가 그렇게 퇴짜를 놓던 수많은 다른 도장들과 비교하면 정말 최고의 퀄리티!” “고딕체는 딱딱해서 매력이 없고, 그렇다고 이탤릭체는 좀 단순했고, 두 이니셜 겹쳐놓은 건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들었고, 고서체는 화려해서 좋은데 배경이 너무 복잡해서 왁스에 찍으면 모양이 잘 안 나오고...” “그나마 L자에 꽃장식이 휘감아져 있는 건 꽃잎 모양이 유치하다고 패스했었죠." "훗, 나의 최종적인 승리지. 이제 저 나무 스틱만 무라노 글라스로 바꿀 수 있으면 완벽해."
"솔직히 말해봐요. 저거 사려고 몇 군데나 들어갔어요?" "뭘 알려고 그래. 그냥 즐겨." "궁금하잖아요." "가시거리에 있는 곳 전부." "언뜻 떠오르는 곳만 해도 언니랑 같이 갔던 데가 10군데는 되는 것 같은데..." "이번에 가서 새로 발견한 곳만 열 군데가 넘어." "징하다. 다른 건 안 그러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거엔 엄청 까다롭네요.” “내 쇼핑 철학 중 하나야. ‘기호품일수록 현실과 타협하지 마라.’ 찾다 지쳐 포기하고 그나마 가까운 대체재를 집어버리면 직후에 내 마음에 쏙 드는 게 나타날 확률이 높지. 이미 하나 샀으니까 또 사지는 못하고, 삼립호빵 노래를 부르며 집에 돌아와 울면서 이미 산 물건을 타박하게 되거든.” “...Is that your religion?” “......” "......" "It's a belief." "......느려요." "너무 오래간만의 패러디라."
“그랬더니 어느 순간 주머니에 돈이 딱 12유로 (=약 15000원)남아있더군.” “헉.”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원두 커피를 알량하게 500g 사고, 남는 돈을 긁어모아 저녁 시간만 되면 사람들이 붐비는 이태리 식당에 가서 피자 한 판을 포장했어." "......" "길거리에 나와 한입 물었는데 그야말로 눈물이 핑 돌더라.” “왜요, 서글퍼서?” "아니, 맛있어서."
"......" "진짜야. 별이 빛나는 밤에 시뇨리아 광장에서 악사들이 연주하는 옆 벤치에 두 시간 동안 앉아, 한 손에는 피자를 들고 막 울면서 먹었어. 이렇게 좋은데 나는 왜 떠나야 할까 하면서." "......" “흑흑, 이태리에서는 피자 도우에 약을 넣는 걸까. 주머니에 60센트밖에 없다는 시름조차 잊고 밤에 취해서 해파리처럼 부유했어. 어떤 의미에서는 잊을 수 없는 밤이었지." "치즈가 약을 먹었을지도요." "아니면 소스용 토마토를 키이스가 재배했나!! 왜 이렇게 맛있는 거야. 그냥 피자일 뿐인데.” "이태리 피자가 좀 눈물나게 맛있긴 하죠."
하아,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덕분에 한국에 와서 피자랑 스파게티는 입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쌀국수 좋아하지만 그걸로 연명하는 것도 이젠 ㅠㅜ
덧. Ladywitch의 L자 입니다. 전 L자로 시작하는 성과는 관계 없어용. 덧. 깜빡하고 빼먹을 뻔 했는데 저 도장은 우피지에서 강쪽으로 나와 우피지를 등지고 오른쪽으로 한 3,4분 걷다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깃펜이니, 도장이니, 카드니 이런거 파는 가게에 있답니다. 덧. 이로써 내일부터 베니스 카니발 사진 올릴 수 있게 됬군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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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절세마녀 | 2007/04/12 14:39 | 북쪽통로: 세상의끝 시리즈 | 트랙백 | 핑백(2)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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