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2)

솔직히 이글루스 펫으로 소설까지 쓰게 될 줄은 저도 몰랐고요...(먼산)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2)



"들어가 보려무나, 알프레도."

새삼 알게 된 소년의 이름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이르반은 오래간만에 얼굴을 대하고도 여유만만한 비웃음을 한껏 담아보내는 친구와 불꽃 튀는 시선을 나눠야만 했다. 친구? 행여나. 벨라루스가 언제 친구였던 적이 있었던가. 친구라는 건 조금 더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관계에 붙여야 마땅할 것이다. 그녀와는 조금 복잡한, 친구나 적을 따지기가 미묘한 사이였다.


"한동안 조용하길래 인도양 앞바다에서 백해무익한 칼싸움이나 하며 배 쫄쫄 굶고 있는 줄 알았더니."
"돈 아깝다고 선원들 굶기는 바람에 캘리컷 코앞에서 난파 일보 직전이었던 걸 구해준 게 누구였더라."
"길목 잘못 잡아, 몇달 동안 제대로 된 약탈도 못해. 항구에서 돈 한 푼 없다며 식사대금이랑 선박 수리비 꿔간 건 기억이 안 나시나보지, 삼류 해적아?"


억울하면 돈을 갚든가, 조소를 흘리는 입술 근처에서 검은 부채가 얄밉게 팔랑거렸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서로 으르렁거려야 마땅한 해적과 상인이지만, 글쎄. 일단 벨라루스 입장에서 본다면 이르반은 능력의 유무를 떠나 일단 돈 갚을 생각이 없는, 신용이 아슬아슬한 채무자에 불과했다.


"도대체가, 아무리 바보라도 인도까지 무사히 갔다가 돌아오기만 하면 절로 떼부자가 되는 시절에 뭘 어떻게 해야 세 번이나 인도에 다녀오고도 이렇게 빈티가 날까."
"뭐라고, 이...!!"
"뭐, 그건 그렇다치고."


능숙하게 말을 자른 벨라루스가 부채를 차륵, 소리나게 접으며 비꼬았다.


"이 스페인 땅에 맨몸으로 서 있다니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군. 얼굴은 풀려서 과일 봉다리나 끼고 다니고."
"그건 아까 그 애가...!!"
"그렇게 잡히고 싶어?"
"무슨 소리야?"
"촌구석 북해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여긴 요즘 어떤 바보가 스페인 함대만 골라서 박살내는 바람에 분위기 살벌하거든."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드레스 자락이 살풋 떨었다.


"지금 자기 목이 얼마짜리인지는 아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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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가난한 해적 선장 이르반의 수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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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그랬다. 언제부터인가 벨라루스와 관련된 일 이외에도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스페인 함대라면 이가 갈렸던 이르반은 멀리서 스페인 깃발을 꽂은 함선이 보이기만 하면 어떻게든 쫓아가 약탈을 시도했다. 처음 한 두 번이야 그렇고 그런 해적들의 늘상 있는 노략질이겠거니 하고 선주 이외의 누구도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그것이 여러 차례 계속되다 보니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것을 눈치채이게 된 것이다. 피해자들 중 누구도 선장의 얼굴을 본 적은 없으나 그들의 공통적인 진술에 따르면, 펄럭이는 해적선의 깃발이 너무나도 여러군데 궁색하게 기워져 있던 것이 두 배로 충격적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해적이라도 그렇지, 깃발이라는 건 함선의 자존심 아닌가?>, <그러게 말여. 설마하니 그렇게 누더기누더기한 깃발을 세우고 있는 놈들이 진짜 해적이라고는...>, <시상에나, 시상에나, 고딴 깃발 날리는 놈들헌티 고로코롬 당할 줄은 꿈에서도 상상 몬해봤단 말이제.>, <지는 부함장 금마가 모가지 대신 뭐 좀 내노라카는데 무심코 젤루 비싼 옷감을 다발로 내줄뻔 했다 아잉교. 거 나달나달하는 깃발이나 제대로 달라고예.> 등등. 그리고는 그 해적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수배하던 차,


"발렌시아 항구에서 조사관이 혹시 그런 깃발 달고 다니는 해적에 대해 아는 게 없냐고 묻길래..."
"......"
"그거 혹시 침몰호의 이르반?, 하고 지나가듯이 말한 적은 있지. 조사도 안하고 대뜸 수배부터 할 줄은 몰랐지만."
"내 배는, 템퍼런스 호야!!"


쯧쯧쯧, 벨라루스는 혀를 찼다.


"템퍼런스 좋아하시네. 무슨 말만하면 화부터 버럭 내는게."
"지금 화가 안 나게 생겼어?!"
"침몰이 어디가 어때서. 근면호의 선장, 가난호의 해적 보다는 낫잖아."
"그 얘기가 아니잖아. 사람을 지명 수배자로 만들어 놓고 할 소리야, 그게!!"
"틀린 소리 한 거 있나? 어차피 해적이고, 그거 다 네가 해먹은 짓이잖아."


이제 어디 가서 마음 놓고 맛있는 빠에야를 먹을 수 있냔 말이야아아아아아, 라고 이르반이 마음 속으로 외치거나 말거나 현실은 이미 비정하게도 그의 목에 현상금을 잔뜩 걸어둔 상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신이 정신 놓고 세비야 시내를 어슬렁거리던 바로 그 시각, 위장용 돛 아래 대충 포개 둔 깃발이 수색대에 들통나고 말았다. 부하들은 일단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 우기며 시간을 끌어보았지만 선장이 약속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자 결국 뺑소니쳤다. 남겨진 쪽지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선장님, 당분간 어디 숨어계십셔.
이번 기회에 쌔끈한 걸로다가 깃발 새로 끄너오겠슴다.
-당신의 영원한 이인자 스미



이로써 이르반은 어쩔 수 없이 벨라루스의 저택에 빌붙어 숨어있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밖에서야 분위기가 살벌하든 말든, 이르반으로서는 몸을 숨겼다고 해서 특별히 불편할 이유는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조사관들이 흙발로 들락거리는 저자거리도 아니고 그 누구도 세비야에서 잘나가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상인의 집에 해적이 숨어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틈틈이 부하들의 소식을 체크하면서 웬일인지 신경이 곤두선 벨라루스와 소득 없는 말싸움을 하거나, 항상 바쁘게 종종거리는 알프레도를 차마 뒤따라가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쫓아다녔다. 벨라루스가 술 마시고 뻗어있는 꼴만은 허락하지 않았기에 갑자기 쓸 수 있는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난 이 북해의 해적은 떠날 때 <이 집 요리사를 납치할까, 말까> 같은 부질없는 망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이르반은 외출했다 돌아오는 벨라루스가 <이건 해적도 뭣도 아니고, 쯧쯧쯧>하고 혀를 차며 지나갈 정도로 식객 노릇에 심취해 있었다.


알프레도는...후후후, 글쎄. 셔츠 밖으로 나온 흰 목이 참으로 위태롭게 가늘가늘한 이 소년은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집사라는 명목 아래 벨라루스가 요구하는 온갖 잡스러운 시중-이르반이 보기에는 어쩌면 부러웠을-을 떠맡고 있었다. 오렌지 쥬스가 마시고 싶으니 만들어 오려무나, 날이 더우니 부채질도 좀 하고. 보니까 정원에 물도 주고 장미꽃 꺾어서 현관에 화사하게 장식 좀 해야겠더라. 하는 김에 머리에 난 싹에도 물 주는 거 까먹지 말고. 잠깐, 갑자기 나 포도가 너무 먹고 싶은거 있지, 시장에 가서 좀 사올래? 그 왜, 새파란게 씨는 없고 단걸로. 올 때 옆 집 아가씨한테 들러서 토마토도 좀 가져다 주고. 그리고 새로 들어온 와인들 연도별로 분류해서 창고에 넣어놔. 어머, 얘. 가기 전에 이거 좀 봐주고 가. 내 모자 어떠니, 이 드레스에는 이 구두가 맞을까. 이거, 아니면 이거? 아하, 이거라고. 자, 그럼 저녁 파티에 나갈 때까지 잘 닦아놓으렴.


하루는 전직 해적이자 현직 겁없는 식객 이르반이 평생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티타임을, 마치 늘 누렸던 것인양 요구했다. 벨라루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뒷 마당에 걸린 빨래를 걷어오던 알프레도를 잡아챘다. 그리고는 한없이 즐거운 얼굴로 <부엌에 가서 홍차 마실 티포트와 케이크랑 쿠키를 은쟁반에 담아 가져오렴. 엎지르면 안된다? 오는 길에 문간에 편지 온 거 있나 확인하고 있으면 편지 뜯는 칼이랑 같이 가져오고.>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산만해진 알프레도는 일단 빨래를 어디다 두어야할지 헤메다가 주방에 이불 뭉치를 가져다 놓고 세탁실에 가서 홍차를 찾는다든지, 티포트와 케이크와 쿠키 중에 하나를 빼먹든지, 티포트에 물을 안 담아 온다든지, 다 와서는 카페트에 걸려 넘어지거나, 물을 쏟거나 잔을 깨먹거나 하면서 끝없이 일거리를 만들어냈다. 그러면 벨라루스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고 <쯧쯧, 성실하고 상식도 있는 애가 어째 일하는 건 저럴까.>라고 다 들리게 투덜대며 말했고, 알프레도는 잔뜩 쪼그라들어 후덜덜 떨며 물러가곤 했다. 


[대강 이런 느낌...?]



기가 막힌 이르반이 차마 벨라루스한테 대들 수는 없고 녀석을 괜히 불러세워 너는 원래 하는 일이 그런 거냐, 이건 부당 노동 요구 행위가 아니냐며 밥먹고 부당한 짓만 하는 해적으로서 참으로 부당한 질문을 던졌더니,

"...제가... 워낙... 제대로 할 줄... 아는...게 없어서...그래도 안 쫓아...내시는...좋은 분...이세요."
"좋기는 개뿔..!!!"
"마님...제 팔...이런...이런 거..에 대해선...아직...한...마디도...안...하셨어요."

라며 방긋 웃을 뿐 낑낑거리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주어진 일을 해내고 있었다. 물론 손이, 그 지경(...)이라 속도도 느리고, 실수도 잦았...다기 보다는 끝없는 실수의 연속이었지만 어쨌거나 북해의 거친 바다 사나이들 틈바구니에서 자라 그렇고 그런 사내녀석들만 보던 이르반의 눈에 알프레도는 참 귀여워만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넘치는 명령을 내리는 벨라루스에 대한 방향성 없는 분노는 커져만 갔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모처럼 벨라루스는 외출도, 외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책상에 앉아 잔뜩 쌓인 서류들을 뒤적거리며 일하고 있었고, 해적으로서의 정체성이 표류하고 있는 이르반은 그 앞 소파에 기대 어제와 마찬가지로 농땡이를 피우는 중이었다.
그가 물었다.


"저 애는 어디서 데려온 거야?"
"왜, 탐나?"


붉은 깃펜을 들고 뭔가를 써내려가던 벨라루스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타, 타, 타, 탐나긴, 무슨 말을 해도..."
"세번이나 더듬을 정도로 마음에 들면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든가."
"내, 내가 뭘 더듬었다 그래!!"
"말 더듬었잖아, 방금."


쯧쯧쯧,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쓸 데 없이 과민해, 도발하면 하는대로 다 넘어가. 그래서 해적 노릇은 제대로 하냐.


"아, 하긴 해적질로 지명수배까지 됐지."
"...그것도 그거고, 인상이 워낙 이러니까 날 겁내는 것 같아."


이르반은 자신의 자랑인 짧은 턱수염과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긴, 고녀석이 눈에는 좀 터프할테지, 벨라루스가 납득할만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길에서 주웠어."
"뭐?"
"정확히 말하면 비오는 날 산책하다가 시장에서 주웠..."
"납치하지 마!! 댁이 해적이야?!"


종이에 펜 사각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불안한 마음에 돌아보니, 벨라루스는 소리 없이 눈으로만 웃으며 편지 뜯는 칼을 날리기 일보 직전. 먹여주고 숨겨줬더니 이게 사람을 뭘로 보고.

아하하하, 제 방정맞은 입이 실언을 했습니다. 그러실리가요, 암. 이르반은 간신히 한 차례 그녀의 불같은 성질을 가라앉혔다. 벨라루스는 10분 전과 다름 없는 우아한 모습으로 앉아 이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으며 말했다. 팔이 저 모양이라 집에서 쫓겨났대. 비 오는 날 맨발로 거리를 걷고 있는 걸 데려온 거지. 월급도 착실히 주고 있으니까 '제삼자'가 참견할 구석은 요만큼도 없어.




제삼자가 참견할 구석은 요만큼도 없어.
제삼자가 참견할 구석은 요만큼도 없어.
제삼자가 참견할 구석은 요만큼도 없어.
제삼자가 참견할 구석은 요만큼도 없어.





어쩐지 화가 났다. 자신이 어느 포인트에 화를 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제삼자 맞지. 맞아. 맞는데. 맞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걱정도 하고 살 수 있고 말야, 그런건데 그렇게 콕 찝어 말할 필요는 어, 어, 어, 없잖아. 듣는 제삼자 귀에는,

너 따위 제삼자니까 우리 사이에 끼어들지마. 오호호.


이렇게 들리지 않겠느냔 말이다.


"얼씨구, 웬일로 그런 짓을 다 하셨나. 본거지에서는 이미지 관리 좀 하시는 모양이지? 그래봤자 그 성격 어디 가겠냐마는. 어디, 세비야에 잘 보이고 싶은 남자가 있나, 아니면 혹시 저녀석이 얼굴만은 꽤 봐줄만 하다는 걸 알고 그랬을..."
"......"
"까나..."
"......"
"......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까와는 달리 치켜뜬 눈이 웃지 않는다.


"......봐줄 만한 얼굴이란 건 네 놈 눈에 비칠 때를 말하는 거겠지."
"저기..."
"해적은 머리를 굴려도 그 수준으로밖에 못 굴리나?"
"아니, 그게..."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삼류 해적 소리밖에 못 듣는거야."


뒷걸음질치고 싶을 만큼 살기 어린 침묵을 앞에 두고, <말로는 이길 가망이 없는 상대한테 왜 자꾸 대드냐, 나는>이라며 눈치를 살폈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울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짧게 앞선 질문의 답을 읊조렸다. 무슨 소리인지 어리벙벙하게 있다가 그게 전부냐 묻자 <그럼 뭐가 더 필요한데!!>란다. 하긴 본격적으로 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금 글썽인 눈에 홀려 여기까지 오게 된 이르반으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있을 수 없었다.


"그...평소에 워낙 꿍꿍이가 많으시니깐 그렇...지.
뭐 좀 색다른 이유가 있나 하고..."


오래 전. 다른 장소에서 누군가에게 <믿은 적이 없으니 배신이 아니야.>라던 벨라루스의 말이 떠올랐다. 울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집에서 쫓겨난 아이를 거두는 그녀와, 살인만 안한다 뿐이지 사기와 협잡, 배신과 음모에 있어서 웬만한 해적을 능가하는 그녀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아, 어쩌면 살인도...우아하게 청부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해적선장이었다. 여하튼 그녀의 마음에 따라 오늘은 이렇게 이 집 응접실에서 빈둥거리고 있지만, 내일 아침 눈을 뜰 때는 밧줄에 묶여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선악구분이 남달라 거짓말을 거짓말 같지 않게 하는 이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에이, 그러면 또 어쩌겠어. 해적이 다 그렇게 사는거지. 이르반은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며 앉아있던 소파에 미끄러지듯 누웠다. 참, 쿠션이 좋단 말이야.


"마음 바뀌면 미리 얘기해."
"뭘?"
"탈출할 때 여기 요리사 납치할 시간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지만 우리 인간적으로 살자고. 이르반이 큭큭대며 흘깃 돌아보니 벨라루스는 머리맡에 물음표를 여러 개 띄운 것처럼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소린지 고민 좀 해보시지. 시간은 저녁 식사 때까지면 되려나. 그럼 나는 그 사이 낮잠이나 한숨 자볼까. 이르반은 팔을 쭉 늘려 기지개를 켠 뒤 발치에 있던 쿠션을 베개삼아 몸을 묻었다.

담배 연기에 취해 피던 파이프를 입에 문 채로 잠에 막 빠져들 때쯤이었다. 자욱한 안개 사이로 <난 또 무슨 헛소린가 했네>, 라며 머리 위에서 얄밉게 발음이 똑똑 떨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그는 잠의 문턱에서 끌려나와 게슴츠레 눈을 떠야만 했다.


"이봐, 잊고 있는 모양인데 여긴 내 홈 그라운드야."
"으으음? 그게 뭐?"
"그깟 보상금 몇 푼이 탐났으면 벌써 감옥에 쳐넣고도 남았다고."
"......아."
"쯧쯧쯧, 쫄기는. 가난해서 간덩이까지 팔아치웠냐?"


그럼 왜 날 숨겨주는 거지, 이르반이 의혹에 찬 시선으로 되물었다. 자신이 알기로 눈 앞에 있는 여자는 기본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 아니, '기브 하나에 테이크 내 맘대로'라는 가치관의 수호자였다. 솔직히 여태껏 자신이 이 집에서 놀고 먹으며 노닥거리고 있는 것이야말로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약간 후환이 두려울 정도로. 뭐, 조금이지만. 음. 아주 조금.


검은 부채가 다가와 앞머리가 헝클어진 이마를 장난하듯 토옥, 톡 쳤다.


"그건 네가,
알량한 상금보다 더 나은 걸 해줄 수 있는 인간이란 걸 믿기 때문이지."


때맞춰 들어온 알프레도가 문을 열고 와당탕 넘어지면서, 옆 방에 티타임 세트가 준비되었다는 말을 간신히 전했다. <쯧쯧, 조심 좀 하지. 칠칠맞게 허구헌날 넘어지니 한번이라도 마음 놓고 일을 시킬 수가 없잖니.> 이르반은 <맘 먹고 일 시키면 어떻게 된다는 얘기야>, 라며 누운 채로 올려다보다가, 처음으로 부채 뒤에 가려진 벨라루스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어, 이거 왜 길어지죠? :)


원래 4편 정도면 되겠지 했는데 늘어나서 5편 될 것 같아요.


그나저나 내일까지 기다리기 지루해서 올렸더니
3편 비축분 없고요....
이걸 어쩐다?



음...이 당시 이르반이라면 나이가 스물에서 스물 하나 정도일 겁니다. 좀 더 어리게 볼 수도 있고요. 알프레도야 로망의 소년 이상 청년 미만이고요. 여기 벨라루스는 나이가 별로 많지 않아요. 기껏해야 이르반이랑 한 두살 차이.


<중간에 그림 그려주신 esatto 님, 고마워요 고마워요. 손이 느려서 이제야 써먹네요 //-//>
<전 사투리 지역 구분 못해요. 섞어서 썼더라도 쟤들 말이 그러려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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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 2007/08/30 00:38 | 서쪽 탑: 상상의 서고 | 트랙백 | 핑백(2)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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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이상한 마녀의 수상한 서랍장 .. at 2008/01/17 01:10

...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1)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2)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3)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4)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5) ============================= ... more

Linked at 이상한 나라의 어딘가 다른 세.. at 2009/06/06 10:43

... 통째로 날라갔네요. 크흑 ㅠ_ㅠ 하루에 한페이지만이라도 쓰고 싶어서 짧아도 그냥 지릅니다. 으헝 닫기 1부에서 이어집니다.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1)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2)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3)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4)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5) ... more

Commented by wizdom07 at 2007/08/30 00:45
3편 주세요 3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Commented by 에이미 at 2007/08/30 00:54
재밌어요~~ 전에 쓰셨던 문장이 중간중간에 박혀있군요! 다음편이 기대되는데 안 쓰셨다니....; 3편 올리실 때까지 눈 반짝반짝모드로 기다릴께요. ^^
Commented by 선아 at 2007/08/30 05:10
재밌어요ㅠㅁㅠ 아 그런데 알프레도 너무 귀엽습니다ㅠㅁㅠ
Commented by 와니 at 2007/08/30 08:57
저희 낭만해적단에게 하는 얘기인줄 알았습니다 ㅎㅎ;
Commented by 니니아 at 2007/08/30 23:38
알프레도 넘 귀엽구요.
하악 이르반. 이분 넘 귀여우십니다. 요즘 트렌드에 맞춰 새침 부끄 기술까지 연마하신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참으로 훈훈 합니다.

마녀님의 글은 언제나 즐겁게 읽고 있답니다. 다음편을 ㅠㅠ!!!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8/31 13:47
돔군// 오늘 9시에 올려볼까요

에이미님// 음? 언제 썼던 문장이요? 아, 그 광분하면서 '이거저거그거 쓰고 싶어 어쩌구'하면서 올렸던 걸 말씀하시는..?

선아님// 우호호, 그건 제가 기본적으로 벨라루스의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지도...?

와니님// 낭만해적단 이름 좋네요 :)

니니아님// 귀여워해주셔서 감사합니다....이르반은 뭐랄까, 지금 저한테 과도하게 혹사당하고 있는 무늬만 해적이죠. 히히히
Commented by 泰虛 at 2007/08/31 21:16
음.. 어째 알프레도의 비중이 낮아보이는게 앞날이 걱정됩니다. 마지막도 그렇고.
^^)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8/31 22:54
음? 훗훗훗훗훗훗후후후후 설마하니 벨라루스와 이르반이 연결될 일은 없습니다. 안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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