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여름
덥다. 쩐다. 여름이라고 아이스크림처럼 녹는 체질은 아니고, 여름과 겨울 중 택하라면 차라리 여름을 택하겠지만 올해 여름은 진짜 덥긴 덥구나. 작년에 가진 돈 다 썼으니 어디 여행핑계로 도망가지도 못하겠고. 올라가서 공부하려다가 기숙사비는 벌어야겠길래 덜미잡혀서 앵벌이(..)하고 있는데 노트북도 안 가져왔고. 해서 집에 박혀 며칠 드라마만 보고 있었는데...

...라며 커피 프린스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쓴 임시저장글이 있었다. 빤짝 앵벌이 하던게 7월이니 그때쯤 쓴 것일텐데 벌써 8월 마지막 날이다. 며칠 전과는 바람마저 빛깔이 다르다. 여름용 포스팅 잔뜩 만들었었는데 정신없어서 내팽개쳤더니 이제 못 써먹겠네. 에이, 어떡하지.

2007년 여름은 더워서 예년의 두 배쯤 길게 느껴지면서도 찰나의 반짝임처럼 짧았다. 고작 두 달동안 터지는 사건이 어찌나 많은지 새삼 대한민국이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역동적이고, 좌충우돌하고, 저마다 목적이 다르고, 하는 말이 다르고, 아는 건 많은데 어떻게 할 줄은 모르겠고, 불안정하고, 그 불안정함이 너무 오래되서 가끔은 처절하고 때로는 코믹한. 주가가 2000을 돌파했다가 도로 주저앉지를 않나, 사상 초유의 납치 사건에 학력 위조 파문. 좋은 일 하겠다고 사지에 갔다가 죽을 뻔한 사람들이 돌아오는 건 좋은데 이런 식은 좀 곤란한 것 같기도 하고. 정치에는 관심없지만 LMB아저씨, 운하 공약이랑 서울을 주님의 도시로 봉헌하겠다는 그 말 취소 안 하면 난 세일러문을 지지하겠어. 커피 프린스가 21세기적 트렌디 드라마로 너무 훌륭하게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나했더니 디워가 참...참...글쎄. 개인적으로 작년에 쇼박스 ㄱㅇㅌ 사장님이 전략 시간에 와서 한 말이 있어 추이가 궁금했는데...과연 전국적으로 괄목할만한 결과를 남기며 여름을 장식했다.

아는 친구가 퀴즈 대회에 나가 아깝게 2등을 하면서 상금을 김치냉장고로 받아 집에 좋은 일만 했다며 땅을 치는가 하면, 또다른 친구는 건강검진을 받더니 '이제 케이크를 먹을 수 없으니 내 인생에 의미는 없어'(이상 20대 중반 준 미남자의 발언)라며 무너졌다. 상대적으로 인생에 드라마가 부족한 나한테는 별 일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뭐 그랬다. 목걸이를 세 개 만들고 모자를 하나 사고 그림을 하나 그리고 기타 등등. 동생이 파리로 떠날 시기가 오고 나는 카메라와 노트북과 카드와 라임라이트를 뜯겼...에잇. '곰은 재주가 부리고 사람은 돈이 벌고'라는 동생과 '고양이 잡게 쥐 가져와', '쥐 잡게 고양이 사와', '고양이 잡게 쥐 잡아'라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말을 해서, 20년간 이런 식의 의사소통에 익숙해졌다고 자부한 나를 절망케한 엄마에게 선선해진 거실에 앉아 '가위 줄까?' 라며 사과를 건네며 생각한다. 아, 여름이 다 갔구나.

by 절세마녀 | 2007/08/31 16:48 | 레테의강: 흐르는 일상 | 트랙백 | 덧글(8)
트랙백 주소 : http://ladywitch.egloos.com/tb/162829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泰虛 at 2007/08/31 20:38
저.. 이거 뭔가요. 오래간만에 왔더니 왠 심리학 교재 예문으로 나올 법한 글이... =_=);;;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8/31 20:54
아뇨 그냥 근황보고인데요. 두달 놀았는데 한 일은 없고 그렇게 말하자니 뻘쭘해서 웃자는 용도로 쓴 글만 들고 왔더라, 그런 소리죠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8/31 20:55
이게 어디가!!! (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긴 합니다만)
Commented by 泰虛 at 2007/08/31 21:54
음.. 저도 일단은 백일 휴가인지라 꽤나 오래간만입니다. 올 여름이 덥긴 더웠죠. 훈련소에서는 온도계가 미쳐서 49도를 돌파하기도 했었으니까 말이죠.
Commented by 子桓 at 2007/08/31 22:46
동생님은 그렇다 쳐도 어머님은 뭐가 이상한지 이해가<<<
돌아오셔서 기뻐요>ㅁ<!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8/31 22:50
...그게 아마 리모콘 가져오라는 소리였을겁니다...
Commented by 크림 at 2007/09/03 14:02
원랜 여름과 겨울이라면 여름파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겨울파가 되고 있어요. 여름 옷은 예쁘려면 많이 헐벗어야 해서(...) 겨울옷은 꽁꽁 감싸고도 예쁘게 입을 수 있달까!! 쓰고 보니 미묘한 이유군요(으쓱).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7/09/03 15:20
전 그냥 봄 가을이 좋더랍니다. 겨울은 뭐랄까...전 추우면 살이 아파서 ㅠㅜㅠㅜ

:         :

:

비공개 덧글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
rss

skin by 이글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