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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어학원 옆 FANCO(학교 안 까페 이름). 음악이 제법 내 취향이다. 지난 겨울에 가르쳤던 녀석한테 전화를 걸었다. 긴장과 기대가 뒤섞인 채로 듣기 좋게 풀린 목소리였다. 입학식장에 가서 놀겠다니, 나를 비롯해 내가 아는 선배들이 절대 해본 적 없을 짓을 하러 간다며 사준다는 커피를 뿌리쳤다. 태도는 자못 불량했지만 그건 이제 막 고3의 깊은 수렁을 빠져나왔기 때문이리라. 그래, 과연. 이제 막 시작하는 새내기에게는 뭔들 즐겁지 아니할까. 다음 사람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들고 있던 녹차라떼 잔에 물고 있던 녹차 라떼를 뿜어버릴 뻔했다. 이글루의 왠만한 사람이라면 알법한,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이곳에서 덕후 냄새를 풍기지 않는 이 사람의 통화연결음은, 역시 왠만한 애니 덕후라면 다 아는 후르츠 바스켓의 OP이었다. 삭막한 내 가슴에 따스한 봄날같은 멜로디는 데미지가 좀 있었다. 과연 덕후루스. 세상 천지에 안 그럴 것 같은 사람마저 조금만 살펴보면 이렇다니, 내가 몇달 전에 수집했던 MBTI결과는 확실히 모집단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세상에는 B형과 B형 아닌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B형에 대한 약간의 피해 의식을 가진 채 내내 그런 B형에 휘둘려온 A형 친구가 있다. 그는 어제 2MB는 분명 B형일 거라며, 앞으로 B형에 지배당하는 삶이 얼마나 불행하고 처절하며 정신산만하고 가슴이 벌렁벌렁할지에 대해 소심한 의견을 A형 특유의 개그 형식으로 피력했다. 나는 '그럴리 없다!! B형이 아무리 제멋대로라도 운하를 가로가 아니라 세로로 뚫을리 없어!' 라고 반박하며 네이버 지식인을 뒤졌다. 그는 B형이었다. Mㅔ가톤급 B형이라서 MB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펐다. 어제 매점에 갔다가 불시에 습격을 받았다. 가해자는 매 시간마다 바뀌는 매점 알바. 그 시간대에 보기 드물게 젊고 여리여리하게 생겼던 그 알바는 생긴 것과 다르게 불특정 다수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알바 처음하는지 한 열명쯤 계산대에 세워놓고 버벅거리던 그는, 코앞에 서있던 마찬가지로 여리여리한 여학생에게 '저, 저어...이 사탕 그냥 드세요.' 라며 심하게 쭈뼛거렸고, 여학생은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다가 역시 쭈뼛거리며 '아, 네. 가, 감사합니다..' 하곤 사탕을 받아들고 나갔다. 둘 다 얼굴이 심하게 빨갰다. 알바는 자기가 여태 몇명을 계산대에 세워두고 있는지도 잊은 듯 멍하니 5초쯤 여학생의 뒤를 눈으로 쫓았다. 사탕 하나로 궁극의 낚시를 하는 모습을 목격한 줄 서 있던 기숙사생들의 표정이 단숨에 10년치 썩어버렸다. 그게 바로 내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아침부터 Fanco까지 기어나와 베이글 샌드위치와 녹차라떼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것은 이런 것들이 내맘에 데미지를 주어서가 아니다. 개강을 해서다. 그런거다. # by 절세마녀 | 2008/03/03 11:16 | 레테의강: 흐르는 일상 | 트랙백 | 덧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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