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나 저거 다 쓰면 시집 써준담서요.
돔옹: 웃, 2부는 어떻게 되고 계세요?
마녀: 쓰기 귀찮은데.
돔옹: 아니, 그런게 어딨나요!!
마녀: 항해일지나 시집이나 둘 중의 하나라도 주세요.(뻔뻔)
돔옹: 그럼 2부 쓰실거에요?
마녀: 어차피 저는 내용 다 아는데 뭐하러.
돔옹: 아니, 그래도 쓰면서 바뀐다든가 할수도 있잖아요.
마녀: 사실 그림 그려주신다던 선아님이 '스캐너가 고장났어요;ㅁ;' 신공을 쓰신지 한달이 넘었음.
돔옹: ......
마녀: ......
돔옹: 그럼 공평하게 이렇게 하죠.
마녀: 음?
돔옹: 선아님이 스캔하시면, 제가 항해일지 쓸게요. 마님도 2부 쓰세요.
마녀: 오호.
이상, 서로가 서로를 낚는 바람직한 현장 중계를 마치며,
그 중 한 떡밥을 공개하기로 하겠습니다. 낄낄대해적 이르반의 항해일지 - written by wizdom07
- 15xx년 x월 x일 -
항해 8일차.
한눈을 판 사이 스미가 지난 항해일지를 내 서랍에서 훔쳐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갑판으로 달려나갔다. 다들 일기장을 던지고 받고 웃고 떠들고 난리를 피우더니 한참 뒤에는 쥐새끼처럼 쪼르르 내 앞으로들 몰려왔다.
"선장님 해석이 잘 안 돼요. 읽어주세요."
모든 선원들을 선창에 처넣었다.
갤리온은 혼자서도 그럭저럭 몰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도 몸이 고단해서 그냥 저녁에 선원들을 풀어 줬다.
스미는 내가 항해일지에 위도나 경도는 안 적고 쓸데없는 신변잡기만 끄적대고 있다며 화를 냈다. 그 신변잡기 내용 몇 자나 읽을 수 있었냐고 쏘아붙였더니 우울한 표정으로 선창에 틀어박혔다.
문에 빗장을 질렀다.
- 15xx년 x월 x일 -
항해 10일차.
위도 그래도 경도 아무래도. 저쪽 방향 반나절 거리에 스페인 상선.
스페인 상선을 털었다. 그쪽 선원들 두 명 사망, 여덟 명 항복. 우리 편 부상자 한 명. 스미가 명령을 내리다가 혀를 심하게 깨물었다. 제법 웃겼다.
건진 거라곤 물과 식량과 싸구려 럼주뿐이었다. 이런 거렁뱅이들이 뭐가 상인이라고. 포탄 두 발 값이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홧김에 상선 갑판을 몽땅 뜯어버린 다음 보내줬다. 마침 자재가 부족하기도 했고.
스티브와 앤드류에게 야간 경계 하는 김에 지들이 술래잡기 하다가 박살내 놓은 선미루 난간을 수리하라고 시켰다. 이번에는 자재가 부족하다고 헛소리를 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 15xx년 x월 x일 -
항해 13일차. 위도 경도 따질 것 없이 세비야 앞바다.
중앙 광장 교수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일광욕을 하고 싶지 않으면 철두철미하게 해적선이 아닌 양 위장해두라고 선원들에게 엄포를 놓았다. 하는 김에 무적함대의 집중포화라도 받아낸 것처럼 너덜너덜해진 선미루를 고칠 조선공도 불러오라고 시켰다. 스티브와 앤드류는 정말로 유능한 해적이다.
- 15xx년 x월 x일 -
위도 아마도 경도 아마도 세비야 뒷골목 어딘가.
일기를 끄적이며 걷다가 왠 주정뱅이를 만났다. "시인을 위해 건배!" 어쩌구 하면서 대뜸 술병을 내민다. 시상이라도 끄적대며 걸어가는 줄 알았나 보다.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북해를 주름잡는 대해적 이르반을 지금 시인 나부랭이로 착각한 거냐, 하고 호통을 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내가 몇 중으로 손해를 보는 건지 계산이 복잡해서 관두고 술병을 받았다. 술맛 하나는 일품이었다.
- 15xx년 x월 x일 -
세비야, 벨라루스의 저택.
벨라루스라고 쓰고 마녀라고 읽는다. 마녀가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꼬챙이처럼 마른 몸에 그야말로 꼬챙이 모양인 양 팔에 답답할 지경으로 말이 느리고 똑바로 해내는 일이라곤 없는데다 분통터지도록 자기주장을 모르는 (부록으로 머리 위에 싹도 난) 불쌍한 녀석을 이 지경으로 부려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요는 그런 녀석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름이 알프레도랜다.
부하놈들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
돌아오면 올리브기름에 빠뜨려 죽일 테다.
- 15xx년 x월 x일 -
세비야, 벨라루스의 저택.
가만 보면 알프레도는 너무 말랐다. 밥이나 먹고 다니나.
- 15xx년 x월 x일 -
세비야, 알프레도벨라루스의 저택.
아침부터 정원을 손질하는 알프레도를 잡아다 정원 구석에 주저앉혀 놓고 내가 아는 벨라루스의 모든 악행을 간략하게 주워섬겼다. 반나절 하고도 반의 반나절이 더 걸렸다. 숨을 몰아쉬며 성토를 마치자 알프레도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마녀가 나타나 하루종일 일도 안 하고 뭘 했느냐며 알프레도를 닦아세웠다. 볼멘 목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내가 네 악랄한 과거 행적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것 뿐이야! 왜 애꿎은 애를 들볶고 그래!"
거의 신고당할 뻔했다.
알프레도가 미소지을 때마다 가슴이 자꾸 벌렁거린 이유는 술을 못 마신 지 오래 돼서다. 틀림없이 그렇다. 우중충하고 짠내 나는 제미랄 북해가 그립다. 이 빌어먹을 도시의 빌어먹게 맛있는 음식들과 빌어먹게 감질나는 밀크티도 슬슬 진력이 난다.
- 15xx년 x월 x일 -
오밤중에 식당으로 내려가 술판을 벌이는 하인들을 털었다. 약탈품은 빠에야와 하몽과 와인과 건포도빵 각각 4인분씩. 사상자 및 포로 없음. 나는 어디를 가나 훌륭한 해적이다.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알프레도를 깨웠다. 둘이서 한참을 먹고 있는데 촛대를 든 마녀가 유령처럼 옆을 지나쳤다.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둘이 사이좋게 잘 먹네." 어쩌고 말할 뿐 일체의 구박이 없었다. 나는 시키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해, 해적 체면에 약탈 대상들하고 약탈물을 나눠먹을 수는 없잖아. 호, 호, 혼자 먹기엔 너무 많아서 평소에 못 먹고 다니는 것 같은 저 애를 깨, 깨웠을 뿐이야! 바다사나이가 음식을 허투루 낭비할까 보냐!
마녀는 졸려 죽겠는데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쏘아붙였다. 그런데 얼핏 곁눈질로 바라본 멀어지는 마녀의 입가에 분명 미소 비슷한 게 걸려 있었던 것 같다. 뭐 이유가 대체 뭘까.
- 15xx년 x월 x일 -
두 달만에 부하놈들과 연락이 닿았다.
스미가 그새 글을 제대로 깨친 모양이다. 편지에 철자 오류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아무튼 짐을 챙겨서 항구로 나오랜다. 언제냐면 오늘 저녁까지. 저번처럼 오래 정박해 있다가 또 들켰다 하면 이번에야말로 만사가 뭣되는 거라나.
개새끼들아, 알프요리사를 납치할 시간은 주라고 좀.
- 15xx년 x월 x일 -
항해 40일째. 위도 경도 집어치우고 도버 앞바다.
말린 살구를 씹으며 알프레도에게 보낼 편지 초안을 잡았다. 상자 안의 살구가 동날 때까지 초안을 잡는 데 그쳤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안을 잡다 말다 잡다 말다 집어치우다 다시 잡다 말다 잡다 말았다. 마녀에게 받아온 종이의 절반이 끝장났다. 아무래도 런던엘 좀 다녀와야겠다.
- 15xx년 x월 x일 -
항해 45일째. 런던.
값비싼 종이를 다섯 짐이나 들여왔다고 부하들의 원성이 말이 아니다. 스미가 정중하게 물어왔다. "저 글씨체 연습 하라고 사오신 거죠?" 네놈 낯가죽으로 피지를 만들어서 연습을 하던가 해라, 하고 쏘아붙였다.
종이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으니 마음에 좀 여유가 생긴다.
- 15xx년 x월 x일 -
너를 처음 본 운명같은 토마토 네가 없는 세상은 내 마음은 캘리컷에 가져다 파는 셰리주 사랑은 베네치아 빠에야처럼 부글부글 끓는 그날의 밀크티는 사실 되게 사랑의 약탈자 누구 마음이 호수라던데 마님 밥사주세요 무적함대가 가로막아도
이런 제기랄.
- 15xx년 x월 x일 -
카리브해 어딘가.
편지를 열 통이나 보냈는데 답장이 한 통도 안 오는 건 무슨 경우냐고 애꿎은 스미를 붙잡고 으르렁댔다. 놈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인도에서 실어온 후추, 카사블랑카 앞에서 털리는 거랑 같은 원리지 뭡니까?"
지금까지 털어 온 상인들이 조금 불쌍해졌다.
- 15xx년 x월 x일 -
인도에서 실어온 후추를 카사블랑카 앞에서 털린 것 같은 나의 애타는 마음을
아냐, 아니야, 아니라고. 스미 이 쓸모없는 놈.
- 15xx년 x월 x일 -
항해 며칠째. 카리브해와 플리머스의 중간 어디쯤.
에스파냐 최신예 군함 1척과 조우. 해적기는 내린 상태였지만 저쪽에서 뱃머리에 선 나를 발견하고 "이르반이다!" 하고 외치는 바람에 어쩔 도리 없이 교전에 들어갔다. 내가 좀 악명을 떨치는 해적이지, 싶어 절로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지근 거리에서 포격을 한참 주고받던 와중에, 알프레도에게 보낼 편지 초벌이 박살난 선장실 창문을 통해 바람을 타고 적함으로 날아들어갔다. 적 제독놈이 즉시 품 안에 챙겨넣더니 쾌재를 부르며 퇴각을 명령했다. 급격히 선회하는 적함의 꽁무니를 노려 심각한 피해를 줬지만, 따라가 붙잡을 여력까지는 없어 피눈물을 흘리며 도망치도록 놔둘 수밖에 없었다. 부하 선원들이 수군거렸다. "아무래도 우리 선장님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지? 군함을 상대로 이겼으면 용한 거지 뭘 더 바라고 난리야."
니들이 내가 저거 쓰는데 며칠 걸렸는지 알기나 해?
- 15xx년 x월 x일 -
플리머스 앞바다에 옷토 스피노라 함대가 보였다.
자칫 걸렸다간 끝장이란 마음에 부리나케 줄행랑을 놓았다.
- 15xx년 x월 x일 -
항해 여러날째, 식량이 아슬아슬하게 하루치 남았다.
별 일 없으면 내일이면 도버에 도착한다. 배는 부하들에게 맡겨 두고 잠시 런던에 다녀와야겠다. 장물아비를 통해 처분해야 할 짐도 한가득이고, 오랜만에 런던 집에 들러서 쉬고도 싶고. 어쩌면 알프레도가 그쪽 주소로 답장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긴 무슨 재주로 해적선 앞으로 답장을 보내겠어. 분명 집에 가면 그간의 답장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게 틀림없다. 단골 술집에서 한 잔 하면서 여유있게 새로 보낼 편지 내용을 구상해야겠다. 어쩐지 시상이란 게 떠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집에 갔더니 외상값 독촉메모와 수리비 청구서와 골때리는 왕실의 모범해적 지명서와 벨라루스의 편지가 반겨줬다는거 ㅠㅜㅠㅜㅠㅜ
님 내가 격하게 사랑하는거 알졍? ㄲㄲㄲ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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