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2.0시대


클릭하는 순간 전율이 흘렀다. 몇주 전 누군가가 넘겨준 아프리카 시위생중계 링크를 클릭하는 그 순간 말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실시간으로 무너지는 현장을 눈으로 보면서, 이는 아고라의 매우 현대적인 부활인 동시에 극명한 시대적 '변화'의 분기점임을,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것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직관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는지 인터넷을 통한 생중계는 유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촛불문화제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전국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차지했다. 빗방울 같던 촛불이 모여들어 연못이 되더니, 냇물처럼 흘러나와 어느새 큰 강을 이루고 있다. 이 시대에 용비어천가를 다시 쓰면 아마도 아래와 같은 배경이 어울릴 것이다.





온라인은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여과없이 흘러넘치는 공간이다. 거기에는 찬성파, 반대파, 중도파, 관망파, 고도의 찬성까 고도의 반대까들이 섞여있다. 그뿐인가. 온갖 계층의 입장과 목소리가 뒤섞이다 보니 낚시도 있고, 루머도 있고, 선동도 있고, 뻘글도 있으며, 정당한 비판이 있는가하면 최소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비판도 함께 있다. 나는 감히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떤 것은 가치있고, 어떤 것은 무가치하다고 말하지 않겠다. 동시에 나와 의견이 같지 않거나, 저열한 논리나 양태를 보이고 있다고 해서 집단의 수준이나 옳고 그름에 대해서 쉽사리 '판단'을 내리지도 않을 것이다. 한 친구가 <촛불 시위에 대한 모든 비판은 정당하다. 그 비판의 내용이 타당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모든 목소리가 이 정당한 시위를 규정하는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나 역시 이에 동의한다. 이 모든 목소리들이 의미있는 것은 그것이 그 자체로 완결되는 것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향해 열려있기 때문이다. 루머는 확인하면 되고, 낚시는 알아채면 되고, 선동은 안 따라가면 되고, 뻘글은 보고 웃으면 되고. 계속해서 변수가 생기는 상황이고, 때로는 취지에 맞지 않는 오류도 발생한다. 변화 각각에 대하여 한방에 모든 사람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다행히 수정과 보완을 통해 변화해나갈 수는 있다. 열린 구조의 네트워크가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거대하면서도 우발적인 실험이 될 것이다.


결과가 어찌되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경제성장이라는 절대 목표 하에 침묵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심하게 방관하던 사람들이 정치적인 관심을 가지고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정말로 '가능해졌다'는 점이 조중동을 장악하면 끝나던 80년대와 다르다. 불합리하다 생각하는 것에는 정직하게 화내면 되고, 다른 의견이 있으면 들어보면 되고, 들을만한 소리면 수용하면 되고, 그러다 웃을 여유가 생기면 맘놓고 크게 웃어도 되고. 온과 오프의 양측을 기술적으로 연결한 웹 2.0 시대의 진정한 가치는 행동 가능 범위의 확장이 사고의 확장 가능성으로 이어지도록 했다는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DOS시대의 정권은 '나를 따르라'며 삽질에 에러를 거듭하다, 결국 수능이 160일 남은 10대, 넥타이와 하이힐, 유모차와 할아버지, 자기 취미에 골몰한 오덕들과 마찬가지로 취업에 골몰한 20대, 그런 20대의 비정치성을 대표적으로 반영하는 비권 총학마저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 이들을 한 색깔이나 경향성으로 파악하려고 하면 무지개를 보고 빨강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치열하고도 가벼운 동시에 처절하고 또 발랄하다. 이성적이며 동시에 감성적이고, 논리적 판단과 직관적 행동이 섞여있다. 정치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비정치적이고, 평화적이면서 과격한 면도 있다. 긴장이 흐르는 가운데에서 유머가 넘친다. 반대하는 정책도, 구호도 다 같지 않다. 탄력적이고 유동적이라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어디로 튈지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앞으로 계속 이러한 건전성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며, 아직도 말귀 못 알아먹는 MB는 '포기를 모르는 인간'운운하며 전통적인 자기세력 불리기를 위해 시간을 벌고 있다. 우리가 집안에서 삽질하는 동안 국제정세가 말도 못하게 팽팽 돌아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때문에 이대로 대한민국이 진정한 2.0시대로 별 탈 없이 전환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은 하지 않는다. 다만 세대와 소속을 넘어 서로가 소통을 시도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설령 권력을 이미 얻은 자라도 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는 점에 새로운 시대에의 기대를 걸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그 친구 말을 다시 인용하면 <촛불은 언젠가 꺼질 것이고, 오늘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정치가 다시 국회로, 혹은 보이지 않는 어느 밀실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라도 현재의 10대, 20대들에게 정치적 패배주의를 안겨주어서는 안된다. (만약 시민들이 승리하게 되었을 경우 향후 정권의 정책발동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국정운영에 난항을 끼칠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데, 나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국민들의 무관심과 침묵, 그리고 방관이라고 생각한다. 정권은 5년이지만, 국민적 무관심과 패배주의는 세대를 좀먹는다.)


어쩌면 이 모든 사태에 그다지 동의하지도 않고 관심없을 누군가 당신을 나는 딱히 설득하려고 들지는 않겠다. 어차피 나부터가 누가 설득한다고 해서 넙죽 동의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나한테 우수한 설득의 자질이 있는 것도 아니니, 나는 말로써 당신이 생각을 바꾸길 종용하지 않겠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그 누구에게도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는 촛불을 드는 것을 강요하지 않겠다. 그러나 최소한 판단보류 상태에서 '관찰'할 것은 권하고 싶다. 이후 차츰 변화해갈 한국 사회의 흐름을 신문이나 방송에서 입수하는 정보만 가지고 '피상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싶지 않다면, 입장을 정하기 전에 한번쯤은 나와서 직접 보았으면 좋겠다. 당신과 같은 계층, 같은 의견, 같은 소속이 아니더라도, 당신과 함께 앞으로를 살아갈 사람들을 관찰해보았으면 한다. 이런 의견, 저런 의견, 이런 낚시, 저런 낚시, 장점, 단점 다 겪어보고, 긍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직접 그 거리에 서 볼 필요가 있다.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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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 2008/06/07 12:26 | 촛불배후: 파라핀 공장 | 트랙백 | 덧글(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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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라모 at 2008/06/07 13:28
좋습니다. ^.^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7 14:36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zolpidem at 2008/06/07 14:08
스스로 보고 듣고 생각하라.
... 좋은 말이고, 어려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 성공과 실패는 아직 미지수라고 생각합니다.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7 14:14
네, 저도 성공과 실패를 점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아직 해결된 문제는 아무것도 없다시피 하니까요. 다만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시기라고 본다는 거지요. 개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향후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민감한 시기에, 관심 끄고 살다보니 휩쓸려서 원치않은 길을 선택당했다고 말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지 말입니다.
Commented by zz at 2008/06/07 14:20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나니

개천이 흘러 바다에 가나니.

국문관가요?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7 14:31
미학과/경영학과 나와서 경영대학원다닙니다만. 국문과였으면 글을 좀더 잘 쓰지 않았을까요? 아하하하하하(먼산)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8/06/07 14:30
하나하나의 의견이 샘물이고, 개울물인겁니다. 예전처럼 우물로 그치지 않더군요. 그리고 그게 모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그 끝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바다가 나오든 결과는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습니다.'ㅁ'


(덧붙여, 13일부터 19일까지 롯데에서 와인장터+초특가전을 한답니다. 바쁘신건 알지만... 후후후후후;;;)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7 14:34
네, 저도 낙관적인 결과가 나오길 바랍니다^^.
(오, 롯데에서 장터하는군요. 근데 저 지난번에 롯데 가보고 다신 안가기로 해서...6개,12개 단위로만 배송을 받아서 무지 불편하거든요. 전 와인나라에서 여는 와인시음+장터 13~15일까지 하는거 노리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슬견 at 2008/06/07 14:47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7 21:54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ㅇㄹ at 2008/06/07 15:11
이번 촛불은 다양하기에 더 빛나는 것 같아요. 말씀에 동의합니다. ^^//
신문을 보니 mb측 인간들이 쏟아져 내려오더군요.....어우 깝깝해ㅜㅜㅜㅜㅜ
부디 이 많은 목소리들이 목표를 이루길 바래요.. 꼭!!!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7 21:56
어휴 저도 보고 있으려니 깝깝합니다. 안그래도 오늘도 한건 해주셨고...(먼산)
Commented by 하리 at 2008/06/07 15:26
저도 앞으로 국민들이 정부가 맘에 안든다고 시위로 반대하는것에 맛들리면 어떻하나 그점이 좀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니 걱정할거리도 못되더군요.

촛불시위같은 흐름은 일부러 만든다고 만들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Commented by 다비 at 2008/06/07 17:00
시위로 반대하는게 직접행동이고 민주주의인걸요 ^^;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7 21:59
그렇기도 하고...전 침무하는 군중들을 이끌고 다니는 것보다 시끄럽고 귀찮더라도 가능하면 민의를 효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게 더 건전하다고 생각하지 말입니다.
Commented at 2008/06/07 15: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7 22:00
음...그 얘기도 들었습니다. 국민대책위에서 말도안되는 삽질을 했담서요.
Commented at 2008/06/07 16:0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사람 at 2008/06/07 19:27
조금 거창해 보임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7 22:16
음...낙엽을 보면 천하에 가을이 온걸 알라고 하는게 가훈이라(...) 이쯤에서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짚어보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따지고 보면 결국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것들도 당시에는 미시적인 선택의 누적에 다름아니었을 겁니다.
뭐 어쨌거나 거시적인 부분이 있다고는 해도 결국 개인에게 요청하는건 대단히 사소하지 않나요. 스스로 보고 듣고 생각하라는게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결국 개인의 자성과 태도의 문제니까요.

더불어 저는 로그인, 비로그인 댓글을 딱히 구분해서 차단하지는 않지만 이왕 비로그인으로 하고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좀 앞뒤 맥락을 확실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대충 무슨 소린지 캐치는 한 것 같은데 그것과는 무관하게 '조금 무례해 보임'니다. 오키?
Commented by 아이비 at 2008/06/07 19:48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대한미국 2.0이란 용어가 참 좋네요. 사진, 굉장히 감동적입니다.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7 22:07
헉, 대한미국!! 오타시겠죠? ^^ 웹 2.0에서 기반했다고 시위 2.0이라고 부르길래 한번 대한민국 2.0이라고 써봤습니다. 그리고 사진은 아침에 '촛불의 바다'라고 제목이 붙은 기사가 떴더라고요. 보니까 생각이 나서^^
Commented by amish at 2008/06/07 22:23
문제는 누구 말씀대로 이 시위의 끝이 결국 경제독재에서의 탈피가 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들 인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결국. 이 상황의 배후는 결국 삼성일테니까요. -_-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9 01:44
삼성도 연관이 있긴 하지만 그거 하나만 가지고 뭐라고 할 순 없을 것도 같고요. 결국 한 사회의 절대 가치가 돈이 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일과 폐해를 거의 다 겪고 있지 않나요, 요즘^^.
Commented by 불휘 at 2008/06/08 04:39
유유상종이라더니

훌륭한 친구분들을 두셨군요 부럽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8/06/09 01:45
헉, 과찬이십니다. 칭찬 감사드려요. 말씀은 제가 그친구에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하겠네요 ^^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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