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안 썼더니 한국말로 어떻게 글 쓰는지 까먹어버릴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딱히 영어나 독어로 말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는 건 좀 더 안습한 일이지만. 하루에 A4한장씩만이라도! 문법이 엉터리라도! 전개가 형편 없더라도! 손이나 머리나 가슴이 아니라 발로 쓴 것처럼 보일지라도! 의무적으로 뭐가 됐든 써야 하지 않을까, 내 영혼이 피폐해진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인간답게 살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일단 아무렇게나 스타트!가난한 해적 선장 이르반의 수난 2부 : 1-1
망망대해의 하늘에는 한 마리 바닷새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펼쳐진 흰 돛을 으스러지게 껴안았을 바람도 때마침 낮잠을 자는지 잠잠했다. 주변을 맴도는 상어떼나 거대 문어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닻을 내린 두 해적선, 아니 해적선 한 척과 상선 한척은 폭풍 속을 소리 없이 미끄러져 지나가는 유령선이라도 본 양 일제히 멈춰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발을 구르며 춤을 추다가 그대로 굳어버린 선원에, 선장이 선반에 꿍쳐뒀던 위스키를 허락 없이 한모금 입에 머금은 채 멈춰버린 선원들, 더 이상 돛이 누더기가 아니라며 해맑게 웃는 얼굴로 달려오다가 그 자리에 못질하듯 박혀버린 템퍼런스 호의 이인자인 일등항해사 스미까지. 뱃전으로 밀려들어 거품처럼 부서지는 파도 소리만이 이 광경이 화폭에 담겨진 것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특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갑판 중앙의 네 명은 더욱 그러했다. 경악과 분노가 그들 사이에 팽팽하게 들어찼다. 입을 벌리고 서로를 바라본 그들 중 아무도, 아무도 감히 운명과도 같이 드리워진 정적을 깨뜨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이...이 바람둥이!!!"
에스파냐 최고 악덕 상인 벨라루스의 새된 목소리가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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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해적선장 이르반의 수난 2
-어느 해군 사령관의 꿈과 사랑에 바치는 소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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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달려 있으면 상황 설명 좀 해보시지."
벨라루스는 정말로 화가 난 것 같았다. 높은 공단 슈즈 굽이 뱃전을 또각또각 울리는데, 방금 탈출하는데 성공해서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는 이르반에게는 그것이 마치 조금 전의 사형대에서 들려오던 '죽음이 걸어오던 소리'처럼 들렸다.
"아니, 그러니까 두 사람 손목이 수갑으로 묶여있는 것도 아니고, 사령관이 혼자 기절을 한 것도 아닌데, 대체 어떻게 이 선창에 같이 나타날 수가 있는 거야!" "그게 말이지..." "빠져나오기 쉽게 사형대부터 무너지라고 일부러 대포알도 크고 반질한 것으로만 골라서 발사했단 말야!"
속사포같이 날아오는 그녀의 공격에 딱히 저항도 못하고 듣던 이르반은 그만 발끈하고 말았다.
"날 구하러 온 거야, 죽이려고 온 거야?! 일부러 조준까지 할 건 없었잖아! 둘 다 죽을 뻔 했다고!" "'둘 다'? '둘 다'?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탈출하랬지, 누가 사령관이랑 눈 맞으랬어?" "자기가 뭐라고 썼는지 잊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어디가 탈출하라는 소리였냐. 혈기왕성한 해적의 혈압을 올려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
허겁지겁 대답하느라 정작 가장 중요한 부분에 대한 반론을 빼먹은 이르반의 변명에 벨라루스가 더한층 날카롭게 추궁해왔다.
"뭐? 설마했는데, 진짜 눈 맞아서 같이 온 거야?!" "아니, 그건 당연히 아니지!!" "아무튼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어? 어쩜 납치를 해와도 꼭." "억하심정이라면 많다만, 세비지가 뭐 어때서?"
잘 생겼지, 능력있지, 나같이 유명한 해적을 한 눈에 알아볼 정도로 안목도 있지, 뭐가 문제야? 하고 귀찮다는 듯이 되묻던 이르반은 벨라루스에게 귀를 잡힌 채로 끌려갔다. 벨라루스가 귓속말로 소근댔다.
"정말 몰라? 저 사람은 에스파냐 최고의 성실맨이라고. 월급의 절반을 세금으로 떼어가도 군소리 없이 일하는 충신이라 재무대신의 총애를 받는단 말야."
추격선이 세상 끝까지 따라올 거야. 어쩌면 무적함대로 편성될 수도 있어. 만약 잡히면 내 입장이 도대체 뭐가 되겠어, 하고 벨라루스가 닥달했다. 세비지에 대해서는 그저 비정상적으로 맛이 간 해군 사령관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이르반이 드물게 격앙되는 그녀의 말에 당황해 머뭇거리며 대충 나오는 대로 아무 말이나 주워섬기고 있을 때였다.
"그럴 때야 뭐..너도 그냥 납치당한 척 하면 되는.." "그렇군."
정체불명의 해적선에 올라서도 마이페이스를 자랑하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멈추게 했다.
“당신 입장은 대체 뭐요? 세뇨리따 벨라루스. 자기가 고발한 해적을 자기가 탈출시키러 오다니."
흐트러진 블론드가 목소리를 실어오는 바람에 같이 나부꼈다.
1부랑 2부 사이를 이어주는 <알프레도의 일기>를 다 완성해놨었는데, 컴터 옮기다가 파일이 통째로 날라갔네요. 크흑 ㅠ_ㅠ 하루에 한페이지만이라도 쓰고 싶어서 짧아도 그냥 지릅니다. 으헝
닫기 1부에서 이어집니다.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1)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2)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3)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4) 해적이여, 시인이 되라 (5) 대해적 이르반의 항해일지
# by 절세마녀 | 2009/06/06 10:43 | 서쪽 탑: 상상의 서고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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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것, 희귀한 것, 아름다운 것들이여, 오라!
by 절세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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