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여행을 떠나자

그대여, 나와 인도에 가자

거리에서 만난 수많은 이야기들,
코를 찌르는 향신료 골목을 지나
손잡고 걷다 목이 마르면 길거리에서 파는 값싼 차이를 한잔 사서 마시고
흙냄새 나는 그 잔을 뒤로 던져 깨고는
유쾌하게 키득거리며 다시 길을 떠나자


사람 냄새 복작거리는 시가지 골목에서
펄럭거리는 화려한 색채들에 눈이 휘둥그래지다가도
피안의 영혼들이 거쳐가는 저 평온한 갠지스 강의 저편을 보면서는
삶과 죽음에 대해 명상할 수 있는
바라나시, 그곳에 가자



그러다 사람에 지치고 여독이 올라
이 어깨의 짐을 내려놓고 싶을 때면
밤 버스를 타고 히말라야가 가까운 네팔에 가자



고요함과 평온함 속, 빛나는 햇살에 포근히 감싸 안겨 산등성이를 걷다가
해가 저물녘 불빛이 어스름히 떠올라오는 곳에 가방을 내리고
민박집 아가씨가 끓여다 준 양젖에 따끈한 차라도 한잔 타 마시면서
지는 해가 안나푸르나의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그날 마지막으로 타오르는 모습을 보자



빨갛게 익은 안나푸르나의 능선 위를 새 떼들이 일렬로 날아갈테고
그 다음으로는 밤 하늘에 별이 뜨겠지
그 별을 헤면서 그리운 이야기들과
혹은 그리운 이들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다보면
우리는 마치 정겨운 집에서 한번도 떠나보지 않은 어린아이들처럼
외롭지 않게 잠들 수 있으리


나와 같이 피렌체에 가자
그 아름다운 도시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과
사랑과 배신과 정치와 음모와 음식과 예술이 있었고
지금도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거리고 있는지 감탄하며 이야기하다가


어린 시절에는 오직 한번에 한 스쿱밖에 허용되지 않던 젤라또를
한 끼에 다 먹지도 못할 만큼 사들고는
밑으로 아르노 강이 흐르는 다리에
사이좋게 마주보고 걸터앉아 보는 건 어떨까
다 먹기도 전에 녹아 떨어지는 그걸 허겁지겁 핥다가
콧잔등에 묻힌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나이가 몇인데 그러냐며
배 터지게 웃다 강으로 떨어질 듯 휘청거려보는 것도 좋겠지



그대여, 나와 아직 가보지 않은 곳들에 가자
지평선까지의 거리를 가늠할 수 없다는 케냐의 초원과
오직 열사의 모래와 바람 그리고 태양뿐인 이집트의 사막과
에게해에 홀로 고립되어있으나 그 이상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을,
아름다운 꽃과 바다의 산토리니와
저 먼 우주의 닿지 않는 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들에 가보자


아무도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 자신조차 스스로를 잊고
모든 것들로부터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워지기를
나 이토록 바라고 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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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번 휴가에 해외로 나가지 않는 것은
나가면 나가는대로 카드의 한도까지 긁고 또 긁고 또 긁을 것 같아서다.
아름다운 브뤼셀과 브뤼헤에서는 몇 백 유로를 서슴지 않고 써버리지만
볼 것 없는 촌동네 카이저스라우테른에서는 양손에 짐을 5KG씩 들고도
택시 한 번 타지 않는 '냉혹한 지갑의 나'라서 그런거다.
그런거다. 단지 그 뿐이다. 진짜 그런거다.

내가 집에 콕 쳐박혀 있을 거긴 하지만
그건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피곤해서 여행하는 상상만으로도 지쳐버려서도 아니다.
나가면 이번에는 그릇박스가 아니라 모자를 10박스쯤 손에 넣은 뒤
돌아올 길이 막막해지면 핑계김에 모자를 팔아
아무데나 눌러 앉아버릴 것 같아서다.
한두개 샀다 팔았다 하는 수준이 아닐 것 같아서다.
진짜다.




by 절세마녀 | 2009/07/30 01:10 | 중앙광장:방랑자의피리소리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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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동굴아저씨 at 2009/07/30 04:55
생활력이 강하신 마녀님...(...)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9/07/31 01:30
아니 뭐 꼭 사고 팔며 여행을 하겠다는건 아니지만요 ㅋㅋ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9/07/30 07:45
가끔 생각하지만 여행은 그 자체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이 훨씬 두근두근하고 재미있어요. ... 그건 제가 재미없는-일상같은 여행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ㅁ-
(이번에 도쿄 가면 무조건 천... 퀼트... 책...;ㅁ; 하지만 환율이 안 도와줍니다!)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9/07/31 01:31
가끔은 정말 그렇기도 하더라고요. 떠나기 전에 상상하면서 준비하는게 참 두근거리고 즐겁고..피곤할 일도 없고 무엇보다도 좋죠. ㅎㅎㅎㅎ
Commented by Vampire at 2009/07/30 09:14
믿어드리겠습니다. (=_=;;;)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9/07/31 01:31
감사 감사 ㅋㅋㅋ
Commented by 라즈 at 2009/07/30 09:31
그대여 ~ 모든곳들에 가보자.. 이부분이 정말 마음에 드네요
갑자기 훌쩍 떠나고싶어졌습니다. 물론 휴가는 없지만.. [..]
링크추가해 가겠습니다~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9/07/31 01:33
칭찬 감사합니다. 보통 여행기를 쓰면 그 도시에 있어도 다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게 만들고, 음식평을 하면 먹고 있어도 한 입 더 먹고 싶어지게 쓴다고들 하더라고요. ㅋㅋ 링추도 감사드려요.
Commented by 살아가자 at 2009/07/30 09:53
눈물나요.....orz
그래도 휴가를 얻으셨군요!!!! ;ㅁ; 쟁취하셨군요1!!!
전 그냥... 계속 에어콘 있는 회사족으로 남겠습니다 orz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9/07/31 01:33
내일까지 일 다 해야 휴가를 쓸 수 있는 나는 오늘도 그저 놀고 있을 뿐이고..이러다 어찌되나 싶을 뿐이고..
Commented by 각혈염통 at 2009/07/30 17:39
아... 그러니까요, "현실은 시○창."이라는 거죠?
그런 거죠? 동감이에요. 프로그래머로 오래길래 왔더니 전화상담하는 중간에 간간이 코딩해요. 뭐라뭐라해서 자기건 듀얼모니터 하더니 야구보다가 눈아프다고 나가버리네요. 푸르름이 부족하면 창(win) 너머 들판(background)을 감상해야하네요. 그리고 말이죠, 휴가가 "가지말지 뭐."하면 없어지는 거래네요? 어어???
Commented by 각혈염통 at 2009/07/30 17:42
그리고 이런 것도 있더라구요. 이럴줄은 몰랐어요.
http://www.flickr.com/photos/40738726@N03/3750325595/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9/07/31 01:34
그래서 참 방학이 그립더라고요..몇달씩 여행다녀서 그런지 꼴랑 며칠 쉬는 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오네요
Commented by louie at 2009/07/31 14:18
아... 첫 사진을 보고 나서 커리먹고 싶어졌어요.
저도 다음주는 휴가라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쌓아놓고 보낼려구요 ㅎㅎ
일단은,
홍대 앞에 맛있는 냔을 만들어주는 커리집이 있으니.....거기부터 가봐야죠.
혼자라도 가서 먹어야 될려나.. orz...
그리고 하몽이랑 치즈를 사들고 집으로 틀어박히면, 휴가(?!)인거죠
힘내셔서 휴가쟁취하시길!!!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9/08/02 23:41
오호, 홍대 앞에 그런데가 있나요? 전 집 근처 신촌에 썩 괜찮은 인도 커리 집이 있어서 자주 애용한답니다. 치즈와 와인은 집에 잔뜩 잇는데 그놈의 하몽이 문제네요. 당췌 가격이 떨어지질 않으니 ㅠㅠ
Commented by louie at 2009/08/03 11:23
홍대앞에 잘 찾기는 어렵지만 -숨어있어서- 어쩌다 발견했는데 쫄깃 바삭 향기넘쳐주시는 냔이 나와요~*
신촌이시면 가까우니까..
휴가 끝나고 올라오시면 한번 대접해 드릴께요~^^

남은 휴가도 즐겁게 보내세요~*
Commented by 절세마녀 at 2009/08/03 15:48
오호, 맛있을 것 같아서 기대되네요^^ㄲㄲㄲ
휴가 잘 쉬고 올라가겠습니다^^ 루이님도 주말에 잘 보시고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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