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Holmes : 전쟁과 평화 버닝의 악당:BBC 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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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셜록.”


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동생이 기어코 입술이 찢어져서 돌아왔을 때, 마이크로프트의 얼굴은 그렇게 침통할 수가 없었다. 그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속에 잠시간 파문을 일으킬 정도로 부드러웠다. 길거리에서 들었다면 당장이라도 유니세프 서명운동에 동참하게 만들 수도 있을 만큼 동정적이이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형의 태도였다.
어디까지나 남들이 보기엔.


“난 네 친구가 정말 마음에 들어.”
“닥쳐, 마이크로프트.”


마이크로프트는 실실 비어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애써 참지도 않았다. 이 얼마 만에 누려보는 신선한 기분이란 말이냐. 이 완벽한 쾌감. 속이 다 시원했다. 2년간 앓던 홧병이 다 낫는 것 같도다.


“존 왓슨이 군인이라 천만 다행이야.”
“존은 의사야, 전직 군의관이고."
“덕분에 세상의 정의가 하나 지켜졌지 뭐냐.”
“누구의, 무엇을 위한 정의가 이따위야.”
“보편타당한 이 세계의 질서를 위한 정의지.”


그러면서 자기였으면 다리몽둥이를 부러트리거나 어디 가둬놓고 삼박 사일 동안 오트밀 죽이나 먹였을 텐데, 곱게 보내주다니 과연 존은 성자라는 둥 하는 것이다. 셜록이 계속 듣자니 기가 막혔다.


“형제가 맞고 들어왔을 때 이렇게 즐거워하는 게 어떻게 보편타당한 정의에 속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군.”
“나야 모르지. 애초에 그런 상황에 빠질 일을 만들지 않으니까 말이다.”


언제 자기가 절친에게 맞고 다닐 일을 만들기나 했냐며, 마이크로프트가 말을 이었다.


“셜록, 난 영국 연방에 맹세코 형제로서 할 도리를 다 했단다. 네가 바란 모든 것을 해줬지. 존에게 네가 살아있다는 걸 말한 적도, 그럴 거라는 1%의 암시도 주지 않았다. 정말 힘든 일이었는데. 중간에 템즈 강에 널 던져버리고 그 현장에 존을 불러내고 싶은 유혹에 몇 번이나 굴복할 뻔했는지 넌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을 거다.”
“죽었다 깨어나봤는데, 영 모르겠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던 것 같구나. 나야 어차피 네 사건으로 완전히 미움을 사버려서 장례식 이후로는 만날 수도 없었으니까.”


말을 말아야지. 조금만 더 내버려두면 오늘을 기념일로 지정하자고 할 기세였다. 희희낙락한 마이크로프트를 보며 셜록은 입을 매만졌다. 입술 끝이 따끔거렸다. 그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청혼을 하더군.”
“너한테?”
“......”
“아, 메리 모스턴 양 말이군.”


그럼 이제 완전히 차인게로군 - 이 말을 하기 위해 오늘 하루 종일 여기서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씰룩이는 입꼬리를 보면서 셜록은 확신했다.


“알고 있었지? 알고 오늘 가라고 한 거지?”
“내가 무슨 수로?”
“존이 갈 레스토랑, 알고 있었잖아.”


마이크로프트가 혀를 찼다.


“셜록. 보통 사람들이란, 마음속에 인생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있더라도 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단다. 머뭇거리고, 갈등하고, 의심하고, 연습도 하고, 실패도 하고 - 수많은 무의미한 과정을 거치다가 결국에는 못하는 게 반이 넘지. 존이 메리와 결혼을 하겠구나 싶긴 했지만, 하필 오늘 청혼할 거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았겠니?”


물론 지난주에 반지를 맞췄으니까 오늘 말할 확률이 80%라고는 생각했지만 말이다. 그 정도면 여름에 우산을 들고 나가서 ‘어쩌면’ 비를 맞지 않을 수도 있는 확률 아니냐는 말을 들으며 셜록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날짜를 늦추려고 할 때 알아챘어야 했다.
입가의 상처를 매만졌다. 까슬한 게 자꾸만 손이 갔다.


“형 말을 들은 내가 머저리지.”
“내 말을 끝까지 안 듣는 걸 보면 머저리긴 하지.”
“뭐?”
“혼자 괜히 흥분해서는 앞뒤 경황도 안 따지고 장난이나 치다가 맞을 짓 한 거야 너지, 내가 아니잖니.”
“오오? 바쁘신 분께서 일부러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구경하실 필요까진 없었는데.”
“보긴 뭘. 안 봐도 훤하다. 내가 널 하루 이틀 안 것도 아니고.”


질린다, 진짜 - 하고 셜록은 생각했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게 더 질리는 부분이었다. 자신이나 존이나 여느 때와 같았다면 어제 저녁의 대참사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존은 옷을 못 입거나, 요리를 못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정장을 빼입고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다니는 타입은 아니었으니까. 의사에서 프로 맛집 블로거로 전직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둘 중 누구에게도 여느 때와 같지 않은 순간이었다는 게 문제였을 뿐이다. 딱 한 호흡 쉬는 동안만큼이라도 생각할 짬이 있었더라면.
마이크로프트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너야 뻔하지. 필경 콧수염에만 정신이 팔려서 기초적인 신호들은 다 놓치고 시덥지 않은 농담을 나불거리다가 날아오는 주먹도 못 피했겠군. 어디보자, 한 번, 두 번... 세 번?”
“안 피한거야. 내가.”
“그러셨겠지. 퍽이나.”
“그래, 그래, 그래. 아무렴 이게 다 형 덕분이고말고.”


잔뜩 긴장해서 메뉴판 외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당연히 누군가와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거기 있었던 거겠고, 장소를 감안하면 십중팔구는 낭만적인 의도였으리라는 것을 알아챘어야 했다. 저승에서 돌아왔다고 한들, 끼어든 자신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테지.
마이크로프트는 숫제 테이블에 기댄 채 찬장에서 꺼낸 크리스탈 글라스에 위스키를 따르고 있었다. 혼자서 축배라도 드는 모양이었다. 그는 글라스를 높이 들어 투명하게 빛나는 색깔을 음미했다.


“관점을 바꿔보도록 하렴.”
“뭘.”
“내 덕에 다시 존의 인생에 끼어들 수 있었잖니.”
“하아?”
“불청객이 남의 무대 위로 뛰어들어서 처음부터 극의 일부였던 것처럼 보이려면, 등장과 퇴장의 타이밍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법이니 말이다.”


더 설명해야하냐는 듯이 바라보는 마이크로프트와 눈이 마주쳤다. 셜록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 또한, 틀리지 않았다. 충격적인 훼방이 아니었다면, 미루는 법이 없는 존의 성격으로 봤을 때 바로 내일이라도 결혼 하러 시청에 갔을지도 모른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나, 마이크로프트는 존의 결혼이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셜록은 마이크로프트가 또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했다.


“뭐하는 사람인데?”
“간호사. 병원에서 만나서 사귀기 시작한 사랑스런 커플이라지. 네 친구의 매력이 꼭 성격 나쁜 괴짜들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닌 모양이야.”
"그거 말인데 상당한 오해가 있어." 셜록이 피식 웃었다.
“존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건 순전히 나 때문이야.”
“넌 존 덕에 더 특별해 보이고? 아서라, 내 눈엔 둘 다 똑같이 느려 터졌으니까.”


마이크로프트는 벽난로 쪽에 있던 거울을 들여다보며 대꾸했다. 내가 너희들 때문에 주름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기는 하냐며 일부러 보여주듯이 이마를 매만졌다. 그 안에 비친 얼굴이 몇 년 전에 비해 부쩍 홀쭉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떤 사람이지?”
“글쎄다, 2년간 존도 본 적도 없는데, 그 약혼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리가 있나.”
“그만 튕겨. 똑같은 패턴이라 질리니까.”
“정말이란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거든.”


위스키를 한 모금 넘기며 마이크로프트가 대답했다.


“들리는 말로는 상냥하고 다정하다더구나. 꽤 센스도 있는 편이고.”
“센스라니? 무슨 센스?”
“혼자 사는 남자들이 죽고 못 살 것 같은, 뭐 그런 게 있다고 하던데."
"누가?"
"안시아가.”


그러면서 자기와는 맞지 않는다며 소름끼쳐 했었단다. 센스라니, 그게 뭐냐며 반문하면서도, 내심 그녀가 ‘존과 이야기해보겠다’라고 대꾸했을 때 느꼈던 신뢰감과 자신감 같은 것을 떠올리는 셜록이었다. 셜록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마이크로프트가 물었다.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글쎄, 좀...너무...”


셜록은 적당한 표현을 찾기 위해 몇 번이나 머뭇거렸다.


“평범한 것 같아서.”
“서른이 넘으면 사람은 대체로 다 평범해지지.”
“간호사라니, 자기 조수잖아.”
“조수가 뭐 어때서. 불륜도 아닌데.”


마이크로프트가 웃으며 변호했다.


“간호사 나쁠 게 뭐 있냐. 수입 안정적이지, 상냥하지. 의사인 존을 잘 이해할 거고, 다소 자기희생적일 수도 있고. 주말에 둘이 같이 봉사활동이라도 가면 좋겠군.”
“직업적 편견이야. 판타지라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야 존이 더 잘 알 걸.”
“하지만 그와 함께 있어줬지.”
“......”
“네가 없었던 시간 동안.”


그거면 충분하지 않느냐고, 아무도 덧붙이지 않았지만 셜록은 마치 귀를 거치지 않고 머리에 직접 퍼부어지는 목소리처럼 선명하게 들었다.


내가 없었던 시간.
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유령처럼 이름으로만 떠돌았던 시간.



위잉-


마이크로프트가 단정한 정장 안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메시지를 확인하는 듯 힐끗 보더니 다시 넣는 폼이 별 것 아니라는 투였다.
“아무튼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으니, 먼지 속에서 뒹굴지만 말고 잘 해보려무ㄴ...”

위잉-
위이잉-



진동음이 마이크로프트의 말을 가로챘다. 셜록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누군지 열렬하네.”
“저녁 보고야. 네 형은 바쁜 사람이란다.”
“그럼 그렇지. 누가 형한테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하겠어?"
"잉글랜드?"
"오, 그래? 그동안 내가 꽤 방해가 됐나보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마이크로프트가 안주머니에 폰을 챙겨 넣으며 말했다.


“넌 내 한평생의 방해물 같은 거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주섬주섬 코트와 우산을 집어 드는 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셜록이 다시금 물었다.


“그래서, 진짜 누구야?”
“라자루스가 살아나면 누가 제일 바쁠 것 같니?”
“라자루스.”
“천만에, 라자루스의 형제란다. 자기가 벌리지도 않은 일에 대한 온갖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해줘야 하거든.”
“자업자득이지.”
“적당하면 괜찮은데 가끔 무슨 생명연장의 신기술을 개발한건 아닌가 궁금해 하는 철부지들이 있어서 말야. 그런 낭만주의자들 상대하는 게 꽤 성가셔.”
“그럴 땐 뭐라고 하지?”
궁금하면 일단 죽어보시든가요.
“오...”
필요하다면 그것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만...


두 번은 못 물어보겠군, 셜록이 피식 웃었다.


“심심해하더니 잘 됐네. 가서 일해, 마이크로프트.”


마이크로프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혀를 차면서 자기가 지금 누구 때문에 불철주야 일하고 있는데, 어떻게 저건 빈말로도 고맙다는 소리 한번을 안 한다며 투덜거렸다. 셜록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뿌듯함이 치솟아 오르는 얼굴로 한번 씨익 웃어주고는 형을 내보낸 뒤, 문을 닫았다.




~ * ~




적막. 고요. 지난 2년간 그랬듯이, 거실이며 그에 딸린 방들까지 침묵에 잠겨 있었다. 방 안은 미동도 없는 ‘멈춤’ 상태 그대로였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시계 초침만이 흘러가는 시간의 존재를 증명해주었다. 제 자리라 생각했던 곳으로 돌아왔음에도 베이커가 221B는 쉽게 잠에서 깨지 못했다.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다.

무엇 때문이지.

허드슨 부인이 가재도구들만 간단히 정리하고 거의 그대로 두었다고는 했지만, 보아하니 몇 가지 실험도구들이 없어지기는 했다. 부인을 바라보자, 그녀는 셜록이 묻기도 전에 근처 학교에 기증했다고 설명했다. 한동안 그것들을 볼 때마다 부엌을 난장판으로 어지럽히던 자신이 떠올라서 괴로웠다고. 하지만 차마 쓰레기처럼 버릴 수는 없었다고. 셜록은 괴로움의 이유가 ‘보고 싶어서’ 라면, 물건들을 지니고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특별히 아침 식사를 차려주고 싶다며 음식을 들고 방문한 허드슨 부인의 손에 아직 후라이팬이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첫날, 유령을 본 듯 거침없이 후라이팬을 휘두르는 부인에게 맞을 뻔 했던 기억이 선명했다.)


셜록은 거실 소파에 어색하게 기대어 앉았다가, 팔짱을 낀 채 모로 누웠다. 방 안의 풍경이 기울어졌다. 허드슨 부인의 말을 곱씹어보았다. 볼 때마다 떠올라서 괴로웠다고?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여기 있는 다른 것들도 다 기증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그는 이내 자신의 생각에 수정을 가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말하자면 이 집에 있는 것들 중 그 실험도구들만이 온전히 자신에게 속해있는 물건이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다른 것들은 딱 잘라 누구의 것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셜록은 눈만 돌려, 탁자 위에 놓여있는 머그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군가 그 머그잔이 누구 것이냐고 묻는다면, 셜록은 존의 것이라고, 존은 셜록의 것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존이 사온 것을 셜록이 제 물건처럼 쓴 거지만.


그런 식이었다. 셜록은 존이 사온 머그잔에 홍차를 담아 마시고, 그가 화장실에 던져둔 치약으로 양치질을 했다. 존은 셜록의 책장에 자신의 책을 듬성듬성 얹어놓았고, 셜록이 샀다가 조도가 마음에 안 든다며 처박아 둔 램프를 발굴해 그 빛으로 신문을 읽었다. 처음에는 셜록의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존이 더 애용한 것들도 있었고, 그러다 나중에는 누가 사왔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함께 살았던 몇 년의 시간은 사물의 소유권을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와중에 존이 절대 건드리지 않았던 걸 꼽자면 그것뿐이었던 셈이다.



‘저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무슨 실험을 하는지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나중에 탈나도 내게는 묻지 마.
그리고 다 끝났으면 꼭 식탁에서 치우기나 해.’



존은 짐이 많지 않았다. 이사 오던 날 달랑 옷가지 몇 벌이 든 가방과 노트북을 들고 오기에 셜록이 그게 다냐고 물었을 정도였으니까.



‘별 거 없어. 굳이 말하자면 총이 하나 있긴 하지만.’
‘유사시에 위협이라도 할 생각인가?’
‘그런 건 아닌데... 저 쓰레기들을 치워주면 고맙긴 하겠군.’




사람 사는 집에 발 디딜 틈이 없지 않냐고 구시렁대기에 반나절 간 이리 밀어두고 저리 넣어두고 해서 겨우 앉을 자리를 만들었었다. 한참이나 부스럭대던 소리를 듣고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거실로 나온 존은 대관절 아까와 무엇이 달라졌는지 틀린 그림 찾기 하듯 바라보았지만 알 수 없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 알아서 자기 자리를 만들었다.


존의 소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소파도 본래 존의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셜록이 들어오기 전부터 이 집에 있었던 것인데, 221B의 모든 방문객은 그것이 존의 자리라고 생각했다. 언제인가부터는 본인도 그렇게 여기고 그 주변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다. 심지어 지금에 와서는 셜록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존 의 소 파
의 의 소 파
소 소 소 파
파 파 파 파

그 의 자 리




이상했다. 저렇게 큰 물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공간 전체가 뻥 뚫려있는 것 같다니. 거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인 소파. 마땅히 그 자리를 메꾼 채, 할 일이 없으면 꾸벅꾸벅 졸기라도 해야 할 동그란 뒤통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반대편에서 자신의 검정색 소파가 긴 팔을 내리고 시무룩하게 침묵하고 있었다. 먼지가 앉아 희뿌연한 것이, 잘 하면 옷을 벗기든 그대로 한 꺼풀 벗길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비척비척 일어나서 제 자리에 옮겨 앉았다. 여러 날 동안 쓰이지 않았던 소파는 무지근한 소리를 내며 몸을 깊게 받쳐 들었다. 먼지가 풀풀 피어오르며 어깨에 쌓여있던 세월을 털어냈다. 회색빛 시간들이 온통 달라붙었지만 셜록은 개의치 않았다. 그는 팔걸이에 턱을 괴고 맞은 편 빈 소파를 응시했다. 그러나 뚫려있는 공간이 더 잘 보일 뿐, 가까이 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여기 오면 당연하게도 존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


“그것 참 멍청하군 그래.”


셜록이 혼잣말로 내뱉었다.


부재(不在)를 목격한다는 것은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존이 셜록의 제안을 거절했더라면, 그래서 처음부터 221B에 함께 산 적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자신이 사람들에게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존이 셜록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의사로 일하다가 평범하게 여자를 만나고 평범하게 연애해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그런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또 모르지. 어느 순간 연금 전부를 술에 꼬나 박고, 그의 누나처럼 알콜 중독자가 되는 수순을 밟았을지도, 그리고 자신은 여태 한 번도 친구 비슷한 것을 가져보지 못한 그대로, 이곳에서 312가지의 담뱃재와 씨름하고 있었을지도.

다 모를 일이다.


“......”


방 안에는 2년 치 먼지가 곱게 가라앉아 있었다. 몸을 움직일라치면 매캐한 입자가 허공으로 둥둥 떠올랐다. 셜록은 한동안 그것들이 춤추는 모양을 보고 있었다. 아무도 없었던 집에 고인 시간은 실로 무한에 가까웠다. 쌓여있는 먼지 입자들은 다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영영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 2년 동안 아무도 들어와 보지 않은 것은 잘 알겠다. 자신이나 마이크로프트, 허드슨 부인이 움직인 것 말고는 문도 뻑뻑한 것이 거의 열린 적이 없는 듯 했으니. 셜록은 자신이 기억의 방에 보관하던 상상 그대로의 풍경에 마침내 안착한 것과 같은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의문에 빠졌다.



왜 존은 이곳에서 나가버린 걸까.
그리고 왜 그동안 한 번도 돌아오지 않은 걸까.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영원히 해가 뜨지 않을 것 같은 새벽이 다 지나도록 그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BBC셜록 시즌 3의 1편 볼 때 써놨던 건데
언제 더 쓸지도 모르겠고 자꾸 늘어져서 공개합니다. :)



아, 맞다. 가끔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셔서 써두자면,

투홈즈 시리즈: 오만과 편견, 노트 매진
투홈즈 시리즈: 사랑과 전쟁 은 재고있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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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Charlie 2014/08/17 18:19 # 답글

    !!!!!!!
    훌륭합니다!
  • 절세마녀 2014/08/18 21:42 #

    ㅎㅎㅎ, 감사합니다^^
  • 키르난 2014/08/17 20:34 # 답글

    ///// 절로 상상되는 저 장면들.. 으흐흐흐. 이번에도 형님께 감정 이입하여 더 밀어 붙여!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으흐흐흐흐.
  • 절세마녀 2014/08/18 21:43 #

    저도 항상 마형한테 감정이입해서 셜록 갈굴 때가 제일 재미납니다. 물론 형님이 휴가를 상상하고 있을 때나, 셜록이 고민하고 있을 때도 좋아하지만요 ㅋㅋㅋㅋㅋㅋ
  • 너테 2014/09/09 21:41 # 삭제 답글

    "오, 그래? 그동안 내가 꽤 방해가 됐나보네."
    "스르로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넌 내 한평생의 방해물 같은 거니까."
    이 부분에서 정말 형님의 센스에 입꼬리가 찢어지는 기쁨을 맛봤습니다. 아이고ㅋㅋㅋ 부디 시즌 4 나오기 전에 절세마녀님께 집필신(??)님이 강림하여 [전쟁과 평화]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프롤로그가 시들해져가던 셜덕심에 다시 불을 붙여주네요. 간만에 다시 셜덕셜덕하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절세마녀 2014/09/23 23:41 #

    낄낄, 셜록 같은 동생이 있는 사람으로서 마형 대사 쓸 때가 참 쾌감이 있죠.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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