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데스 in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3 창작: 상상의 서고






   감았던 눈을 떴을 때, 왕이 보게 된 것은 지금까지 제가 저승에서 본 것 중 가장 묘한 장면이었다. 오르페우스라는 인간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던 것은, 특별히 그의 말주변에 감동했다거나 같은 감상적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팔 할 정도는 인간세상으로 치면 다분히 민원을 들어주는 공무원적 감각에 가까웠고, 덤으로 약간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저승에 산 사람이 제 앞까지 올 수 있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다니. 뭔가의 오류인 것은 확신했지만 금방 고칠 수 있는 일일 거라 여겼다. 그러니 자신이 기대하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든 지금 이 순간과는 완전히 다른, 지극히 이해할 수 있는 어떤 것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하데스가 처음 마주한 것은 까맣게 일렁이는 밤이었다. 빛이 없는 이곳에서도 그 무엇보다 깜깜한 밤. 동시에 무엇 때문인지 이해할 수 없는 반짝임으로 깜빡이고 있는 별빛. 그런 걸 여기서 마주치다니, 왠지 형언하기 어려웠다. 인간들이 사는 모든 나라의 언어를 알고, 또 그 경계가 무의미한 왕으로써 말문이 막히는 것은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런 순간을 대비한 적이 없었다.


   그것이 사람의 눈이라는 것을 왕은 잠시 뒤에야 알아챘다. 뒤로 한 발짝 물러서자, 밤하늘의 달덩이 같은 얼굴이 비로소 한 눈에 들어왔다. 그 자는 무슨 생각인지, 왕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둘은 말이 없었다. 그저 눈과 눈만이 존재해서 영원한 순간 속에 붙박여 버린 것처럼 그렇게 서로를 볼 뿐이었다. 만약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면, 하데스는 헤아릴 수 없는 밤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마냥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다.


   “내 이름을 부르다니, 너는 누구지?”


   그가 물었다. 짧은 질문에는 순수한 호기심만이 담겨 있었고, 보통 저승에 온 자들이 흔히 보이는 불안이나 공포, 히스테리 같은 것은 요만큼도 들어있지 않았다. 속삭임을 어떻게 들을 수 있었는지를 더 궁금해 해야 했던 찰나에 너무나 당당하게 누구인지를 요구당한 왕은 그만,


      ‘그러게, 나는 누구지?’


   하고 항상 스스로에게 묻곤 하던 오래된 질문에


      ‘누구길래 이렇게 여기에서 너를 보고 있나.’


   같은 새로운 의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왕을 채근해오자, 무심코 대답하고 말았던 것이다.


      “Ἅιδης.


   왕에게는 이름이 많았다. 명계의 왕, 망자들의 수호자, 올림푸스의 명예로운 형제이자, 지하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지옥과 저승의 신. 혹은 죽은 자들의 주인. 그러고보니 요즘은 사람들이 제 이름이 불길하다며, 플루토라고 부른다던가. 너무 많은 이름과 수식어들 사이에 묻혀 자신도 거의 잊고 있던 이름을 툭 내뱉고 나서는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칭호나 별칭으로만 불리던 시간이 더 길었던 탓이다.


   에우리디케는 허공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쓰며, 이 철자와 발음이 맞는지 가늠하느라 몇 번이나 억양을 바꿔가며 고쳐 불렀다. 그러면서 마치 제 이름을 제대로 부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 진지하게 반복하곤 자신의 표정을 살펴왔다.


   왕은 자신의 오래된 이름이 불리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이렇게 쓰이고 저렇게 불릴 때마다 신기하게도 모두 다른 이름이 새로이 태어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왜인지 좋은 느낌이었다. 몇 번은 일부러 아닌 척 고개를 저어 보기도 했다. 만족스러울 만큼 이름을 불리운 다음에야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게 부르면 된다.”
      “그렇구나, 나는... 아, 이미 알고 있지, 참. 근데 어떻게 알았어? 누구한테 들은 거야?”
      “어쩌다보니."
      “어쩌다보니?"
      “그냥 알아.”


   에우리디케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럼 넌 혹시 알아? 여기가 어딘지?”
      “......”
      “저기, 이봐?”


   그 때 하데스는 에우리디케가 미간을 찌푸릴 때마다 가려지는 눈을 보며 생각하는 중이었다.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막상 뭐라고 묻는지 흘려듣고는, 자신의 눈 앞에서 손을 흔들 때까지 멍하니 그러고 서 있었다.


      “미안. 뭐라고?”
      “여기가 어딘지 아냐고.”


   그러면서 이상한 곳이라 둘러보고 있던 참이라는 것이다. 이상한 곳이라니. 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은 덤불이 우거진 숲 속에 서 있었다. 간간이 나뭇잎 사이로 빛이 파고들었다. 진짜 햇빛일리는 없고, 눈앞에 있는 자의 무의식이나 기억에서 딸려온 것일 터였다. 죽은 뒤에도 여지없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거나, 사방이 불타는 전쟁터 속에 서 있는 자들에 비하면 특별히 이상하거나 긴박할 것이 없다고 여긴 하데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잘 좀 봐봐.”
      “보았다만.”
      “여기 말야, 우리 집 뒷산이랑 똑같이 생겼거든.”
      “그런데?”
      “걸어도 걸어도 집이 나오지를 않아.”
      “......”
      “게다가 아무 것도 없어. 아무 소리도 안 나. 바람도 없고...”

      바람도 없고-

      “이 맘 때쯤 지저귀는 새들도 없고...”

      새들도 없고-

      “아무래도 너밖에 없는 것 같고...”

      너 밖에 없고.


   하데스는 잠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갑작스레 죽은 자들이 자신이 임종한 장소를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는 경우는 자주 있었지만, 이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럴 수 없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죽은 뒤에 꾸려지는 장소는 대개 자신의 집이나 매일 걷던 거리처럼 망자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가 많았는데, 그런 게 불려오지 않는 경우도 없었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의 죽음에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었다. 망자들에게 공정하고자 하는 왕에게는, 일을 꾸민 자가 누구든 잡아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갑자기 이곳이 저승이며, 자신이 이 세계를 다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제 입으로 알리고 싶지 않아졌다. 끝까지 모를 수야 없겠지만, 잠깐 동안만이라도. 이런 식의 대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대상과의 여상한 대화가 너무 오랜만이었던 탓에 들떠서인지도 몰랐다.


   이곳을 싫어하거나 겁내지 않았으면 했다. 여기가 저승인 것을 알면 에우리디케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대다수의 인간들은 이곳이 저승임을 깨닫는 순간, 뒤늦게 따라온 공포와 슬픔에 휩싸여버렸다. 무지로 인해 빛나던 어린아이가 자라서 진실을 알게 될수록 금세 때가 묻듯이. 태초의 밤처럼 새까만 두 눈에 하늘을 뒤덮는 축축한 먹구름이 몰려오면 금세 바다만큼 짠 내음이 가득해지겠지. 그러면 그 안에서 북극성처럼 반짝이던 광채는 빛을 잃을 테고. 하데스는 그런 순간이 조금이라도 늦춰지기를 바랬다.

   그러니 그는 영영 모를 것이었다. 이어지는 자신의 말에 왕이 얼마나 위안을 받았는지.


      “미친 소리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말야, 내 생각엔 여기가 지하세계인 것 같아.”










하데스만큼 시간 많은 능력자면 좋겠네요.
시간은 없는데 이야기는 왜 자꾸 길어지는지...





덧글

  • 라비안로즈 2015/03/21 15:45 # 답글

    ㅎㅎㅎ 잘 읽고 갑니다.
  • 절세마녀 2015/03/24 00:52 #

    헤헷, 감사합니다 :)
  • 키르난 2015/03/21 19:06 # 답글

    ..=ㅁ= 길어지는 분위기?
    Ἅιδης를 구글에 돌려보니 Aidis가 나오네요. 하데스의 오래된 이름이 이런 것인줄은 몰랐습니다. 거기에 잠시, 에우리디케의 사인을 생각하고 ... ... 아니, 그렇다면 그 직전에 벌어진 일도 생각나야 하는 것 아닌가? =ㅁ=
  • 절세마녀 2015/03/24 00:52 #

    뭐 하데스같은 시간 개념에 맞춰서 생각하면 길어지나 짧아지나 어차피 한 순간인 걸요 ㅎㅎ.
    네 그건 저도 구글에서 돌려서 찾은 옛날 이름이 맞습니다. 아이디스, 하이디스, 하데스 이런 식으로 변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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