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데스 in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4 창작: 상상의 서고







   '죽었던 기억이 난다'고, 그가 말했다.


   새벽에 누가 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서 깼거든. 곁에는 오르페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고. 깊이 잠든 것 같아 깨우지 않았어. 어차피 목이 마르기도 했으니 깬 김에 잠깐 나갔다 오려고 했지.

   밖으로 나갔는데 정원 너머 저쪽 숲속에서 인기척이 나는 거야. 그래서 갔더니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어. 처음 보는 종류였는데, 향기가 은은하니 정말 좋더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보여주고 싶더라고. 그래서 몇 송이를 꺾고 있는데...


   스슥 스스슥-


   발치에서 끌리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왼쪽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차갑게 날을 세운 죽음이 발목을 휘감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선득했던, 소름 끼치는 감각. 걷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본능적으로 움직이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발목에서 종아리, 무릎 안쪽의 움푹 파인 곳까지 슬금슬금 올라온 그것이 온 허벅지를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죄었다. 그제야 그것이 뱀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도 매우 사악한 의도를 가진.


   차마 내려다 볼 수 없었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암살자가 자신을 해할 것 같아서.
   식은땀조차 흐르지 않는, 긴 1분 1초가 흘렀다.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르페였다. 식은 옆자리를 발견하고 금세 따라 나온 모양이었다. 오르페,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그런 희망과는 달리 까치집 같이 엉클어진 머리를 한 그가 저 덤불 건너편에서 서성이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바보 같은 웃음을 만면에 가득 띤 그가 에우리디케를를 발견했다. 숨도 못 쉴 것처럼 긴장한 표정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는, 혹은 도망치라는 듯한 절박한 눈짓. 시선을 내린 오르페우스는 그의 다리께에서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있는 황금빛 독사를 발견했다.


‘제발, 그대로 가만히 있어. 이쪽으로 오지 마.’


   소리 없이 입모양만으로 전하려 했지만, 그보다 오르페우스가 달려드는 것이 더 빨랐다. 그 뒤에 이어진 찢어질 듯한 고함 소리는 누구의 것인지 뒤섞여 알 수 없었다. 에우리디케는 발목에 끔찍한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온 몸이 굳고, 숨이 막혔다. 독사는 처음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리도 없이 빠르게 도망쳤다.


   오르페우스가 어쩔 줄 몰라 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혈을 하고, 또 급히 상처에 입을 대어 독을 빨아내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오르페우스가 목숨보다 사랑했던 사람은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그래. 확실히 그랬던 기억이 나.”
   “오...저런.”

   왕은 자신의 죽음을 이렇게 차분하고 명료하게 설명하는 자를 본 적이 드물었기 때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잘 알 수 없었다. 지나치게 짧은 자신의 말이 다소 미적지근하고 어색해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은 나중이었다. 그러나 크게 개의치 않는 듯, 이렇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눈을 떴는데, 이곳이었어.”


   그리고는 내처 묻는 것이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여기 지옥이니?”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하데스가 깜짝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 글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집에 갈 수가 없잖아. 분명 아주 가까운 곳인데.”
   “......"


   있잖아, 하고 그는 마주보던 고개를 돌려 어떤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저기 너머를 봐봐. 하데스가 그를 따라 눈을 돌렸다. 해가 뜨지도 지지도 않는 지하에서, 밝은 빛이 어슴푸레하게 들어오는 방향이었다.


   “너를 만나기 전부터 나는 계속해서 한 방향으로만 걷고 있었어. 여기가 현실이라면 저 쪽으로 채 마흔 발자국을 안 가서 우리 집이 나와야 해. 그런데...”


   왕은 저도 모르게 목이 바짝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의 다음 말을 듣기가 두려웠다.


   “벌써, 한 달이 지났어.”


   순간 그 낮은 목소리에서 절절히 전달된 것은 분노였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나 질책은 하나도 없이, 오롯이 자기 자신만을 향해 있는 뜨거움. 끝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하여, 끝없이 달릴 것이나, 오직 달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그런 정직한 화.


   “만약 내가 죽은 게 아니라면, 깨지 않는 꿈을 계속 꾸고 있거나 마침내 미쳤다는 건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도 하데스는 그 눈빛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느 쪽이든 이 자는 돌아갈 생각이었다.
   자신이 죽었든, 살았든.
   이것이 꿈이든, 미친 짓이든.



   에우리디케는 침착하게, 차근차근 타오르고 있었다. 혼자서 숲 속을 달려야 했을 한 달의 시간 동안, 당겨진 불씨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그렇게 살아있던 순간의 모든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채로. 시간의 흐름이 아직도 멈추지 않아 영영 망자가 될 수 없는 자인 채로. 정당하지 않은 죽음에 힘껏 저항하는, 꺾을 수 없는 인간의 의지 그 자체를, 새까만 눈 속에 꺼지지 않을 불처럼 뜨겁게 지핀 채로.













죽은 아내 내놓으라고 땡깡 피우는 오르페우스나
죽었든 살았든 나는 일단 집에 가야겠다고 땡깡 피우는 에우리디케나..

그 정도는 되야 구하러 갈 맛도 나고 그렇지 않을까요 ㅋㅋㅋㅋ





덧글

  • 키르난 2015/03/24 08:32 # 답글

    흐흐흐흐흐흐.. 왕이 오르페우스나 에우리디케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역시 다른 존재들과 다르기 때문이겠네요. 다만,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이나 궁금한건 그렇게 만나고 싶다면 오르페우스가 에우리디케를 데리러 가는 것보다 만나러 가는 것이 더 빠르지 않았을까라는 점입니다. 자살하면 만나지 못한다는 것도 아닐테고요..? 그 왜, 남편이 탄 배가 바다 저편에서 침몰하는 것을 보고는 절벽에서 바로 몸을 던졌더니 불쌍히 여긴 신(아버지였나;)이 그 둘을 새로 만들었다는 신화도 있으니 말입니다? =ㅁ=
    그보다 이 버전에서는 그냥 뱀에 물리는 군요. 제가 본 버전에서는 양치기가 에우리디케에게 관심을 가지고 쫓아오길래 도망가다 뱀을 밟아 사망-이었습니다. 처음 읽었을 당시는 뒤에서 남자가 쫓아온다고 왜 도망가나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했던 것이 참.. ... ..(먼산)
  • 절세마녀 2015/03/28 14:32 #

    네, 뭐 양치기 버전을 비틀어서 좀더 호러스틱하고 섬뜩하게 구성할 수도 있었겠지만서도..
    하고 싶은 말이 그런 내용이 아니라서 걍 뺐습니다.

    그리고 오르페우스가 데리러 갈 수 있었던 건 이 양반도 기본 속성이 음유시인 + 모험가라서 그런게 아닐까 합니다. 나름 소싯적에 이름난 친구들과 돌아다니던 모험가였잖아요? ㅋㅋ
  • 키르난 2015/03/28 20:14 #

    악, 맞다! 그 양털 원정대 초기판에 오르페우스도 있었던가요? 다른 이유로 빠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데.... (뭐였더라.) 하여간 양털 원정대의 그 대장이 어느 소설의 패러디 소설에서 아주 극악무도한 놈으로 묘사된 터라 이미지가 참 안좋습니다... 하하하하.
  • 절세마녀 2015/04/14 21:06 #

    움? 오르페우스는 아르고 호에서 세이렌을 물리친 것으로 유명해졌으니까요.
    초반에는 있었는데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저도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네요 ㅎㅎㅎ
  • 키르난 2015/04/14 21:15 #

    엉뚱하게도 양털 원정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라파엘전파 그림으로 유명한 '샘에 물뜨러 갔다가 요정들에게 홀린 청년'입니다. 그 원정대에는 그 당시 유명한 영웅들은 다 모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끝이 좋았던 인물이 있던가요..? 헷갈리는 고로 시간 날 때 그리스 신화 정독해야겠습니다.;;;
  • 절세마녀 2015/04/14 22:22 #

    딱히요? 신에게 도전했다가 해피엔딩 맞은 이야기 자체가 좀 드물지 않던가요?
    이아손도 폭망, 헤라클레스도...반신반인이었기 망정이지 해피엔딩이라기엔 가족이 폭망, 오르페우스는 말할 것도 없고, 날개달린 친구들도 그렇고, 항해사들도 다 죽었고...심지어 잘 나가던 테세우스도 끝에는 쓸쓸하게 죽었죠.
    일단 선장 이아손이 망했기 때문에..그 파티는 망해써요...끌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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