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데스 in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5 창작: 상상의 서고






   조금 걷겠냐는 말에 왕은 엉겁결에 그 뒤를 따랐다. 에우리디케는 주변을 아주 세심하게 살피며 걸었다. 나뭇가지 하나, 풀잎 하나까지 다 외우려는 듯이. 키 큰 수풀이나 큰 나무를 보면 팔을 들어 방향과 각도를 쟀다. 뭐하는 거냐고 묻자 에우리디케가 대답했다.


   “기억하려고.”
   “길을? 계속 앞으로만 걸었잖아.”
   “그게 아니라...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그러고는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아까 우리가 출발한 데 기억나?”
   “응.”
   “거기를 시작점이라고 쳐. 계속 걷다보면 다시 거기가 나오거든. 이곳이 어디부터 어디까지 반복되는지를 알아야 출구를 찾아도 찾을 것 같아서 말야.”
   “......”
   “아, 대체 여기는 어디길래 이렇게 생겨먹은 거지?”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애초에 출구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한 번도 고려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왕은 눈을 깜빡거리며 바라보다 불쑥 내뱉었다.


   “미안.”
   “왜?”
   “몰라, 그냥.”


   정말로 그는 잘 알 수 없었다. 죽은 자들의 세계는 응당 이러함에도, 너를 이런 곳에 한 달이나 방치해서? 혹은 네가 이런 곳에 있게 된 데에 대한 관리소홀의 책임이 나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더라도 한 번 이곳에 들어온 이상 너는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 이대로는 산 채로 묻힌 것이나 다름없을 너에게 지하 세계의 진실을 말해줄 수도 없어서. 그리고 또...


   “그냥, 잘 모르겠어서.”


   하데스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흔들었다. 죽게 된 정황을 들어보니 사고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특별히 원한을 산 사람은 없는지 물어봤는데 평범한 음유시안 가정에 그럴 만한 일이 있겠냐며 도리어 갸우뚱하는 것이 딱히 짚이는 곳도 없단다. 그러고 보면 저 성격에 남의 미움 받을 만한 일을 만들고 다닐 것 같지도 않았다.

   잠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더니, 에우리디케가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나도 모르는데 나중에 온 네가 어떻게 알겠어.”


   그러더니 잠깐 저 쪽으로 가보자며 가리켰다. 왕은 잠시 멈칫했다가, 팔짱을 풀고 다시 곁에서 걸었다.


   에우리디케는 이런 저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혼자 있더라도 가슴이 뛰고, 두려울 게 없어진다고 했다. 한 여름 모닥불가에서 부르는 노래, 계절이 다가올 때 처음 피는 꽃봉오리, 뜀박질할 때 우스꽝스럽게 들썩이는 어깨, 해질 무렵 바다너머로 펼쳐지는 노을이며 그런 것들.

   그러다가 이런 거 물어도 될지 모르겠는데, 라며 운을 띄우더니,


   “있잖아, 너는 어떻게 죽었어?”
   “...뭐?”
   “죽을 때 어떤 기분이었니?”


   그는 대답할 수 없었다. 왕은 죽음을 겪은 적이 없었다. 애초에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이유가 없는, 죽지 않는 자이기에 지하세계의 왕이 된 것이니. 게다가 그가 모든 이들에게 칭송받는 공정함을 오랜 시간 미치지도 않고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야 말로, 그들 중 누구에게도 감정이입하지 않은 채 자로 잰 듯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 아닌가. 저승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자 - 그 특별한 위치가 그와 지하의 주민들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만들었고, 덕분에 그는 딱 필요한 만큼 무심하고 무감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데스는 문득, 자신이 인간들이 죽음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그걸로 정말 이해한다 말할 수 있는 것인지에 내심 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죽은 자의 ‘반응’은 지겨울 정도로 잘 알았지만 그들의 '기분'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지금껏 아무도 그에게 그런 것을 묻거나 말해주지 않았으므로 그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다. 물론 왕이 그 질문에 꼭 답할 의무는 없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왠지 핵심을 찔린 것처럼, 진짜 지하의 주민들이라면 누구나 대답했을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갑갑함마저 느꼈다.


   침묵이 길어졌다. 그러자 뭐라고 생각했는지, 에우리디케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
   “...왜?”
   “말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것도 있겠지.”
   “......”
   “괜찮아.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하지 않아도.”


   그러고는 되레 손을 뻗어 하데스의 등을 토닥이는 것이다. 영문을 모르고 멍하니 바라보자, 아무래도 자기가 실수를 했다고 여긴 모양인지 마구 되지도 않는 위로를 했다. 정말이야, 내가 꼭 궁금해서 물어 본 게 아니라... 궁금해서 물어본 거긴 한데, 아니 그냥 내 말은, 네가 말을 잘 안 하다보니까 내 얘기만 하게 되길래, 그렇다고 특별히 너에 대해 뭐 아는 게 있어야지, 그래서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 싶어서 묻는다는 게 그만, 그게, 그러니까 우리의 공통점이라는 게 일단 그거 같아서,


   죽은 거.


   아, 아니, 아니, 저기, 그, 내가 지금 한 달 만에 사람 만난 게 처음이라 반가워서 말이 막 헛나와서 그래, 으아 - 왕은 점입가경으로 흐르는 내용보다도 에우리디케의 얼굴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변화를 홀린 듯 바라보았다. 혼자서 위로를 했다가, 난처해하다가, 손사레를 치다가 결국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의 입에 저도 모르게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그걸 본 에우리디케가 얼굴을 풀며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어쩌면 여기가 지옥까지는 아닐 수도 있겠다.”
   “응?”
   “어쨌든 너도 있고.”


   씨익-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자 인상이 한층 달라졌다. 눈이 가로로 접히며 자글자글한 주름을 만들었고, 그 아래로 예쁜 보조개가 생겼다. 하데스는 그것도 뚫어져라 지켜보았다.


   “또 여긴 오르페랑 맨날 오던 뒷산이니까. 생판 모르는 곳에 떨어진 것보다야 낫지.”


   그 순간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몰려왔다가,


   “그러니까 꼭 같이 나가자.”


   스르륵 녹아서 사라졌다.








   왕좌로 돌아온 왕은 거의 울 것 같았다. 제멋대로인 에우리디케의 추측에 맞는 말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넘겨짚는 솜씨가 어쩜 그렇게 없는지 하마터면 ‘그런 게 아니다,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라며 다 설명해줄 뻔 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네가 죽은 자라는 것이, 그리고 거기 갇혀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안타까웠다.


   ‘Ἅιδης-’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그 긴 세월동안 자신을 그런 식으로 불러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눈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 한 사람도. 지하세계의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자신을 대하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 눈을 마주치기는커녕 자신을 삼키기부터 한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저 멀리 올림푸스 꼭대기에 살고 있는 형제와 누이들, 그리고 어머니까지도.













거 참...보고 싶은 장면까지 가려면 갈 길이 바쁜데 ㅎㅎㅎㅎ





덧글

  • 키르난 2015/03/26 08:55 # 답글

    ... 보고 싶은 장면은, 그, 뒤돌아보는 그 장면일까요? 하데스가 저렇게 휘둘리는 것을 보니 신선합니다.. 만. 이미 기억의 뒤안길로 사라진 오르페우스.OTL 에우리디케의 이미지가 참 강렬하군요.
  • 절세마녀 2015/03/28 14:16 #

    개인적으로 제가 보고 싶은 장면은...맘에는 들지 않지만 하데스가 약속은 지켜야 하니 께름칙해하면서도 보내주는 장면입니다. 오르페우스가 뒤돌아보는 거야 기정사실인데요 뭐 ㅋㅋㅋㅋㅋㅋ
    어쨌든 저는 그 오페라의 캐릭터 해석이 심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관계로...이런 걸 계속 끄적거리고 있네요 흑흑
  • 대건 2015/03/26 09:06 # 답글

    저 말많은 에우리디케가 남편 뒤따라 가면서 얼마나 재잘재잘대고 싶었을지 참 마음이 짠합니다...
  • 절세마녀 2015/03/28 14:18 #

    아...그런...좋은 포인트네요. 참고 하겠습니다.
  • 크림 2015/04/01 20:41 # 답글

    아 뭔가 끝이 슬플 것 같아요. 물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자체도 슬프지만 거기 플러스 알파로 더 짠내날것 같은....!? 마님은 짠내연성의 지극한 도에 이르신듯 합니다그려 ...ㅠ
  • 절세마녀 2015/04/14 21:05 #

    끝이? 왜 슬프지? 오르페우스 이야기 해피엔딩 아니었....구나. 아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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