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데스 in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 6 창작: 상상의 서고



껄껄, 예상 외로 자꾸만 길어지는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하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머물라는 말 외에 달리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사라진 왕을 기다리던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손에 들었다. 시간을 가늠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뭔가를


해야만 했다.


   어느 새 그는 지하세계의 영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었다. 둘러싼 공간에는 잔잔하게 퍼져나간 음파의 흔적이 남았다. 일렁이는 공기에 영혼들이 기분 좋게 흐느적거리며 자취를 남겼다. 그 중 어떤 영혼들은 단순히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것뿐 아니라, 뭔가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음조가 바뀔 때마다 안개처럼 부연 주변에 이미지들이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그 찰나의 환영들은 이곳에 사는 누구라도 보기 드문 풍경을 만들어냈는데, 그런 것을 처음 본 악사 역시 마냥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듣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노래.


   이윽고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바로 잡았다. 아폴론의 축복을 받았다는 길고 예민한 손가락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가느다란 줄을 어루만졌다. 노래는 평범하고 고요하게 들렸다. 어찌 보면 리라가 연주를 하고, 그는 그저 손을 얹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정하고도 맑은 음색이 조용히, 계속해서 퍼부어졌다. 돌아보지 않는 사람을 향하는 첫사랑과도 같이. 혹은 홀로 걷는 날 옷자락을 적시는 빗방울처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음표들은 어두운 빈 방에 켜진 촛불인양 꺼질 것 같으면서도 그치지 않고 깜빡였다.


   목소리를 들은 영들은 제각기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하게. 멈춰버린 순간의 영원 속에 사는 그들에게 그럴만한 무언가가 많지는 않을 텐데도 말이다. 어떤 이들은 어머니의 얼굴을 불러왔고, 또 어떤 이들은 오래 전에 떠난 고향을 불러왔다. 충직한 애완견이나, 여름철 이마를 식혀주던 낯익은 손길을 불러오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주변을 제각기 다른 그림으로 번갈아가며 물들였다.


   하데스가 돌아왔을 때, 눈에 바위에 걸터앉아 리라를 조율하고 있는 오르페우스의 곁에는 낯선 장면들이 펼쳐져 있었다. 악사는 폭발하듯 명멸하는 그림들 속에 둘러싸인 채 그것들 하나하나를 제 것처럼 보고 있었다. 이는 그토록 오랫동안 저승에 있으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경이기도 했다.

   왕이 물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노래를 불러보았습니다.”
   “노래? 무슨 노래를 했기에 이렇게 된 것이냐.”


   떠오른 환영들이 다들 제각각인 것을 보며 왕이 흥미로워 하자 오르페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움에 대한 노래였습니다.”


   하데스는 의아해했다.


   “나는 그대가, 굳이 말하자면 사랑에 대한 노래를 불렀을 줄 알았다. 연인을 찾겠다고 여기까지 왔으니.”
   “노래는 듣는 사람을 위해 불러야 하는 법이지요. 위로의 노래라면 특히.”
   “그런데?”
   “평생 사랑을 모르고 지낼 수는 있어도, 그리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군, 하고 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규칙하고 중구난방인 환영들도 설명이 되겠어. 그가 손을 들어 일렁이는 자취들을 어루만지자, 그들은 꿈틀거리며 오르페우스가 앉아있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대를 좋아하는군.”


   기억들은 몹시 연약해서 작은 손짓에도 쉽게 흩어져버렸다. 아쉬워하는 하데스의 얼굴에는 처음 보았을 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오르페우스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에우리디케를 만났는지, 만났다면 잘 있는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슬퍼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나 보채지는 않기로 했다. 하데스의 심기를 거슬러서야 될 일도 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르페우스는 특유의 친근한 말솜씨로 대화를 시도했다.


   “죽음 뒤의 세상은 어둡고 칙칙하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보통 그렇게들 생각하지.”
   “끝없는 비명이나 비탄이 울려 퍼지고,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늪이 가득하다든가.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모든 것을 잊은 채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라든가.”
   “실로 어떤 이들에게는 그렇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이들을 볼 수 있어 조금 놀랐습니다. 지하의 주인께서는 퍽 다정하신가 봅니다.”


   마지막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하데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별 이상한 아첨이 다 있군.”
   “가장 소중히 여기는 기억 한 가지 정도는 남겨주시는 것 아닙니까?”


   잠시 고민하던 왕이 지나치게 낭만적인 해석이라며 설명했다.


   “레테의 강물이 많은 것들을 지우기는 하지만 무엇을 기억하든, 혹은 다 잊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앗아가는 것도 내가 아니고, 남기는 것도 내가 아니야.”
   “그렇습니까?”
   “하지만 불행한 기억이 많을수록 견디기 힘드니까 대부분은 모두 지우는 것을 선호하지. 아주 드물게 불행한 기억을 감수하고라도 중요한 순간을 남기고자 하는 자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요구가 정당한 경우에 한해서지만.”


   이를테면 평생 악한 짓만 하던 자에게 행복했던 기억만 남겨주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냐는 말에 오르페우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선행과 악행이 뚜렷하지 않거나, 비슷한 정도일 때는 어떻게 됩니까?”
   “호기심은 대체로 미덕이지만,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은 좋지 않아.”
   “감히 저승의 비밀을 풀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 그래야지.”


   왕이 말을 가로막자, 오르페우스는 화제를 바꾸었다.


   “다만 오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었지요. 이런 성공할지 실패할지 알 수 없는 모험보다 한시 빨리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종종 있지, 그런 이들이 - 사랑의 실패로 종종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이들을 보아 온 하데스였다.


   “그럼에도 이렇게 찾아온 것은, 삶이 죽음보다 낫기 때문이냐.”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오르페우스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만약 어떤 잘못 때문에 오랜 시간 벌을 받게 된다면, 가장 효과적인 형벌은 그녀와 저를 갈라놓는 것일텐데, 그걸 당신이 알까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걸 내게 말하는 건가?”
   “이제 와서 숨길 도리가 있겠습니까?"


   오르페우스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자, 하데스는 짐짓 미소지었다. 이런 식의, 살아있는 자와의 대화는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나는... 그대가 모험가 친구의 영향을 받아서 온 거라고 생각했네만.”
   “모험가 친구라시면..”
   “아르고 호를 탔었지 않나. 황금 양모를 되찾겠다던 이아손의 함대에는 헤라클레스도 있었으니 알겠지.”
   “그에게서 저승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헤라클레스의 영웅담은 보잘 것 없는 제 이름의 몇 배나 더 유명하고 용감했으니까요.”
   “그는, 아주 무례한 자였네.”


   하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영웅은 무슨, 법칙이란 법칙은 다 무시하고 공명심에 가득 차 힘을 휘두르는 망나니 같은 자였다고 치를 떨며 말하자 오르페우스의 표정은 불시에 어두워졌다. 뭐라도 좋으니 말을 붙일 수 있을 만한 대화의 끈을 놓쳐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데스가 다음에 한 말은 더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여기서 무슨 일을 저질렀든, 위에서 인간들이 서로를 어떻게 불렀든 개의치 않아. 시간이 지나 수많은 죽음들 사이에 서면 그도 마침내 공평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는 사건에 지나지 않을 테니. 내가 관심이 있는 부분은 오직 하나지.”



   저 위에서 무엇을 했나
   그래서 어떤 대우가 합당한가



   “나는 인간들의 모험담은 잘 모른다. 너희들 사이에서 통하는 명예와 명성을 내가 왜 알아야 하지. 다만 내가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배 위에서 자네가 노래로 이긴 세이렌 때문이야.”


   어째서냐고 묻는 얼굴에 하데스가 말을 이었다.


   “그는 바다를 다스리는 내 형제가 가장 자랑하던 가수였네. 잃고 꽤 오랫동안 아까워했어.”
   “아...”
   “서로의 얼굴도 잊을 만큼 오랜만에 와서 대뜸 한다는 소리가 ‘살려내’였으니 알만하지.”
   “그 때, 그건 모두를 살리려면 어쩔 수 없이 한 것으로...”
   “동기는 상관없네. 어쨌든 나는 그도 돌려주지 않았어.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나.”
   “......”
   “청원하는 자가 설령 신이라도 예외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지.”


   절로 침통한 표정이 지어졌다. 저승에 도착해 몇 개의 강을 건너면서도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가졌던 오르페우스였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가. 지하로 가는 길을 알고, 변변찮은 재주로 왕을 독대할 수 있는 자리까지 왔으나, 왕은 자신의 예상을 넘어서는 아주 논리적인 자였다. 차라리 윽박지르고 겁을 주었다면 악을 써서라도 맞섰을 텐데. 왕은 자신보다 더 많이 살았고, 더 많이 알았으며, 또한 누구보다도 욕심이 없었다. 그 어떤 괴물을 마주했을 때보다도 지금이 더 두려웠다. 신이자 형제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았다는 왕을 과연 어떤 말로 설득할 수 있단 말이지.


   “왕이시여.”


   오르페우스가 간청했다.


   “부디 제 노래를 들어주십시오.”
   “......"
   “오직 진실과 진심만으로 부르겠습니다."


   눈앞에 무릎 꿇은 청년을 내려다보며 왕은 생각했다. 앞서 냉정히 자른 말과는 달리, 사실 오르페우스의 명성이라면 이곳 저승에서도 자자한 편이었다. 먼저 이곳에 당도한 아르고 호의 선원들 중에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수가 더 적었다. 내용도 가지각색으로, 그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고된 뱃길도 미풍이 부는 비단길처럼 느껴진다던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준다던가, 또는 눈앞에 있는 자가 누구든 금방 사랑에 빠져버릴 것 같았다던가. 심지어는 예의 그 세이렌조차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말할 때면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에 심장을 쥐어뜯으며 비참해했기에 결국 레테의 강물을 다 마시고 말았지만.


   허락이 떨어지면 금세라도 리라를 켤 것처럼 손을 올리고 있는 예인을 보며 하데스는 에우리디케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이 자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없이 올라가던 그 입매가. 그 무한한 호감 또한 이 노래로 산 것일까. 그 눈에 가득 담겨있던 확고한 신뢰와 애정은 이 자의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동시에,
   듣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이름만큼 실력이 있으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지. 에우리디케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럼에도 하데스는 오르페우스가 제 앞에서 노래하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이 부른 노래 정도에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지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또 그렇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어서 아예 듣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면 그 뿐, 한 개인의 편이 되어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찮은 재주로 나를 현혹하려 들지 마라. 나는 다만 공정하고 싶을 뿐이니.”


   지하의 왕이 오르페우스를 향해 못 박았다.














....
물론 하데스가 헤라클레스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습니다.
반신반인인데다, 제우스가 나중에 거둬가서 신으로 만들었나 별자리로 만들었나 그렇거든요. 낄






덧글

  • 키르난 2015/04/21 10:53 # 답글

    헤라클레스는 죽었을 때 혼을 제우스가 달랑 들어다 12번째로 만들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헤베..였나. 헤라의 딸래미와 결혼시켰고, 덕분에 가니메데는 독수리, 아니 제우스에게 낚여서 그 뒤에 술시중을 이어 받았....
    (최근에 읽은 어떤 소설이 그리스신화적 배경을 깔고 있어서 자세히 보았더랬습니다. 음하하..;...)
    하여간 헤라클레스는 저승에 가지 않고 납치(?)당한 셈이었는데 하데스가 불쾌해했을라나요.=ㅁ=
  • 절세마녀 2015/04/25 10:07 #

    어차피 줘도 안 받았을 거긴 하지만 인터셉트 당해서 기분은 좀 뭣했을듯요. 와 지인플 쩐다 라며...
  • 크림 2015/04/24 13:05 # 답글

    그렇게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들은 하데스는 옛다 하고 에우리디케를 넘겨주는데.....가 되는 겁니까? 원래대로라면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그렇게만은 될 것 같지 않아 보이기도 하고요.
    오아. 분명 아는 이야기지만 마님이 새로 풀어주시니까 또 재미있네요 히히히
  • 절세마녀 2015/04/25 10:06 #

    구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그렇게 노래 하기가 쉬울까? ㅋㅋㅋㅋㅋㅋ
  • 절세마녀 2015/04/25 10:06 # 답글

    으악...lich님. 제가 혼자보는데 끝나고 인사라도 할까요 라며 대댓글을 달다가 실수하고 삭제해버렸네요.
    영문과 대학원생에 총연여배우 ㅋㅋㅋㅋ 적절하네요. 끄앙 ㅋㅋㅋㅋ
  • 2015/04/25 15: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4/25 19:1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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