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지 여기저기서 사진 관련 글을 많이 봐서 생각난 김에 써둡니당. 별 의미는 없고 그냥...나중에 까먹으면 아까우니깐.열기
내가 처음 사진기를 손에 들었던 것은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그 때까지 사진기라는 건 어른들의 몫이었고, 특히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의 전유물이었다. 그림은 그려본 적이 없고, 음악은 좋아하지만 노래를 하기에는 박치라서 슬펐던 아버지의 거의 유일한 예술적 취미가 아니었던가 싶다. 사진을 보면 구도 감각은 좀 있으시다. 손에 들린 수동 카메라가 내는 섬세한 기계음은 신비로우면서도 동시에 '넌 좀 더 크면 와라. 안 그럼 내가 다친다'하는 포스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만질 수도 없었다. 하여간 사진은 내게 편한 뭔가는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서 필름 카메라를 쓴다는 건 기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어른이 된다는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필름을 현상해도 여유있을 정도의 용돈을 비축해 놓았다는 것도. 요즘이야 어릴 때부터 디카를 잡으니까 그런 부담이 전혀 없겠지만, 내겐 아직도 불필요한 셔터를 아끼는 버릇이 있다.
사진기를 드는 건 아버지였고, 찍히는 건 어머니였다. 나랑 내 동생은...우리가 사진에 많이 안 찍히거나 그런건 아닌데, 스스로 늘 좀 덤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면 사진에 찍힌 내 모양이 영 맘에 안 들었거든. 아주 어릴 때는 꽤 귀여운 구석도 있었건만, 좀 자라고 나서는 왠일인지 시꺼멓고 삐쩍마른 몰골을 하고 있어서 엄청 비루해보였기 때문이다. 그게 싫었는지 맨날 메롱거리면서 부끄러움을 무마하려 들었기 때문에 제대로 남은 게 하나도 없다. 그리고 중딩 때부터는 살집이 붙기 시작해서.........후우, 여기까지. 동생은 악동 중의 악동이었기 때문에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걔도 참 멀쩡히 찍힌 사진이 없다.
언젠가 얘기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는 구석 구석에 젊은 시절 어머니 사진이 가로가 1미터가 넘는 이따만한 액자에 넣어져 여기저기 걸려있다. 요즘은 내가 유럽을 싸돌아댕기며 모아온 대형 명화 포스터들이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였냐면 다른 사람들 방에 영화 포스터나, 연예인 사진, 달력 사진 걸어 놓는 거랑 같은 수준으로 걸려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왠만한 그림이나 포스터가 필요없을 정도로 모델도 사진도 참 작품감이었다. 초상권 침해라고 하실까봐 여기 못 올리는게 아까울 정도랄까. 가끔 내가 농담으로 '난 글쎄, 다른 집도 다 그런 줄 알았어. 근데 친구 집에 가보니 가족사진이 걸려있더라!!'라고 문화적 충격에 대해 말하곤 하는데,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아쉬움이나 섭섭함을 느낀 적은 없다. 어중떠중이 같은 비루한 내가 섞인 가족사진이 걸려있는 것보다 저 사진들이 훨씬 근사하니까 그런 납득은 좀 당연한 거였다. 쓰면서 비로소 깨달았는데 우리 집의 정신적 권력 관계의 기준은 재력이나 뭐 그런게 아니라 아름다움이었던 것 같다. 미에 대한 절대 복종. 나의 탐미적 취향은 분명 유전자 레벨에서 결정된 후, 생활 속에서 강화학습된게 틀림없다. (당연하지만 탐미적 취향'만'으로 이루어져있지는 않다.)
다시 초딩 때 제주도 수학여행으로 돌아와서, 그 때 내게 허용된건 자동 카메라였다. 우와, 나도 이제 사진찍어도 되는건가? 뭘 찍지? 뭘 찍지? 왜 그랬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동급생들을 찍을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우르르 몰려가서 되는대로 프레임안에 늘어서 있는 건 언제라도 찍을 수 있는데다 그 때는 기록 사진의 의미를 전혀 캐치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기본적으로 각이 안 나오는 사진이 엄청 싫었다. 내 어깨를 붙잡고 어린 아이의 드라이한 인간성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기에 앞서서, 이건 뭐라그러지, 청각에 예민한 음대생을 불협화음으로 고문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냥 본능적으로 좀 피하고 싶은 정도.
그래서 영예의 첫 사진은...제주도 식물원 가는 길에 있는 왠 돌덩이조각을 찍은 거였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특별히 감동을 받은 것은 아니고, 그냥 사람 아닌 뭔가를 찍으면서 구도 실험을 한 것 같은데...좀 재미없긴 했지만 색깔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나머지 사진들은 몇장을 빼곤 죄다 풍경이다. 제주도 풍광이 광활하고 참 좋은데 거기 빨갛고 파랗게 통일성없이 흩어져 있는 우글대는 인간들은 뭥미...싶기도 하고. 근데 그렇게 중딩 때까지 몇번 수학여행 다닐 때 사진을 찍다보니 별로 재미가 없었다. 당시 내가 찍는 사진의 목적은 주로 '가족들한테 보여줘야지' 같은 거였다. 풍경이나 대상을 정확히 옮겨서 보여주는 타입.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사람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 도판 사진들과 다를게 별로 없었다. '있는 그대로' 뭔가를 사진에 옮겨서 보여준다는 건 그 대상의 특징이나 핵심부분을 잡아내지 못하면 정말 재미없는 밋밋한 사진이 되는데 그때가 딱 그랬다. 자연은 물론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걔가 나한테 찍어달라고 들이대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로 옮겨봤자 대상 그 자체가 되주지도 못할 뿐더러, 솔직히 내가 기자나 포토그래퍼도 아닌데 특별한 사진이 나올리가 없잖은가.
사진에 약간의 환상과 두근두근한 맘을 가지고 있던 중딩소녀는 낙담했다. 그렇구나, 난 그림도 못 그리더니 사진에도 재능이 없구나. 그리고 이 돈 많이 드는 취미를 쉽게 잊어버렸다.
다시 사진기를 손에 든건 고딩 때였다. 자로 잰 듯이 딱 떨어지는 모범생의 탈을 쓰고 인내와 극기 속에 칸트형 인생을 보내고 있던 2학년의 어느 날. (지금 생각인데 그런 생활이 가능했던건 내 안의 B형인자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ㅋㅋ) 정말 여러 방면에서 나와 반대되면서, 또 여러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 중에서도 눈길을 확 끌었던 건 걔가 온 몸으로 뿜어내고 있는 '에너지'였다. 왜, 가끔 있지 않나. 밝고 활기차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우와, 이건 진짜로 완전 연소하고 있는 인간이다 라는 느낌.
처음으로, 시간이 흘러가는게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 때까지는 '시간'이 내가 있는 자리에서부터 수평선 너머까지 쫙 펼쳐져있는 느낌이었는데, 걔를 보고 있으면 그게 몽땅 한 곳으로 흘러들어서 급류를 탔다. 나한테 모자란 그것, 넘치는 생명력이 팔팔하게 이글거리다가 어디론가 사라진다는게 정말 억울했다. 듣는 본인은 '얘가 뭔 헛소리를 지껄이는 겅미?'하는 눈으로 바라봤지만, 나한테는 그것조차....그게 그러니까...음...살리에리를 핍박하는 모짜르트의 천진함, 나단의 고뇌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미르와 같은 거였다.
...그래서 사진기를 들이댔다.
시간을 멈추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다고, 그렇지 않으면 휙 하고 급류에 말려들어가 언젠가 다 까먹게 될 거라는 묘한 압박감이 던져뒀던 자동 카메라를 손에 들게 만들었다. 의외로 사진기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데다 웃을 때 시원하게 웃어서, 정말 억소리나게 사진발 잘 받는 녀석이었다는 것도 불을 질렀다. 단지 하나, 치명적인 난점이 남아 있었는데...
그건 녀석이 진심으로 사진찍히는걸 싫어했다는 거다.
(-_-)す=33
한 번 사진 좀 찍을라치면 얼마나 많은 감언이설(..)과 먹을 거(..)로 꾀어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각설하기로 하자. 내가 아침에 조깅하러 나오라는 아버지 말씀에 매번 툴툴거렸던 것 만큼이나 쟤도 단 한번도 쉽게 찍혀준 적이 없다. 한번은 '지금 머리 딱 좋은데? 카메라 가져올테니까 손대지 말고 고대로 와라' 라고 했더니 바로 다음날 짧게 밀고 와서 나를 쇼크에 빠뜨렸다. 물론 걔가 자기 하기 싫은 거에는 목숨 걸고 반항하는 타입이긴 했다. 하지만 나 역시 평소에는 관대하지만 한번 찍은 타겟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 만만치 않은 인간이었기 때문에(ㅋㅋㅋㅋ) 우리 사이의 줄다리기는 대부분 무승부로 끝나곤 했다. 다시 말하면, 필름 두 통 찍을 것을 한 통 찍는 걸로 막았다든가 하는 정도다. 머리를 어이없게 깍두기처럼 자르고 와서 친구라는 포지션의 자존심에 상당한 스크라치를 받았던 그날, 쇼크에서 재빨리 회복한 나는 그 비루한 모습을 찍어 길이길이 굴욕으로 남겨주었다. 걘 지금도 늘 자기가 나한테 져줬다며 이젠 내 카메라 뿐만 아니라 남들 카메라도 못 피하게 됐다고 투덜거리는데, 흥, 턱도 없는 소리. 그 때 내 맘대로 다 하게 해줬으면 지금 너한텐 20대 초반의 사계절 콜렉션 연출용 앨범이 몇년치 분량으로 쌓여 있을 거다. 난 고작 째깐한 소형 앨범 두개 반 정도 채운 게 다다.
여튼 중요한건 그러면서 인물사진의 매력을 깨달았다는 거다. 이후로 내게 있어서 사진의 기본 전제 조건은 '대상에 대한 애정'이다. 사진 찍는 사람들마다 중요시하는게 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반해야 된다. 외피에 반했든, 내면에 반했든, 대상이 아름답든 아니든 그런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하면, 관심을 갖게 되고, 관찰하게 되고,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본질에 다가갈 기회가 조금 더 많아진다. 기술적으로 잘 찍는 방법을 익힐 수도 있고, 새로운 방식을 실험해보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도 있지만 역시 기본은 그거다.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는 다르리라.' 아버지의 사진에서 빛이 났던건 어머니의 모델 포스와 아버지의 감각을 떠나 애정이 전제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취미로 애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음..꽤 좋은 거다.
(초상권 침해를 안 할라다보니 몇년 전에 찍은 것 밖에 없네연...)
몇년을 고심한 끝에 유럽가기 전에 산 디카 캐논 파워샷 s70은 동생이 스페인 집시들에게 헌납했고...아버지의 수동카메라는 이제 내게 와 있다. Nikon FM2, 기계식 카메라 계열에서는 꽤 이름있는 모델이다.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만져주면 인물사진이 엄청 잘 나온다. 줌이 약하니까 배경을 확 누르고 등장인물을 주인공처럼 만들어준달까. 나는 이걸로 사진 찍는걸 좋아한다. 구도나 대상이 일단 내 취향인데다, 내 맘대로 컨트롤 안되는 손으로 그리는 그림에 비하면 정말 말을 잘 들어주니까.
단지...몇 가지 좀 안습인 경우가 있다면...
저기...사실 난 사진 찍히는 거 별로 싫어하지 않거든...? 어디 모이면 너무 찍사취급하지 말아주길 바래...카메라 들고 있다고 젊은 날에 좀 근사한 모습으로 남고픈 욕망이 없는게 아냐. 애정을 갖고 찍어달란 소리는 안 할테니까 그냥 너 한 장 찍어주면 나 한 장 찍어줄 정도의 아량과 센스 점 베풀어주시면 감사할 듯 해. 찍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매년 내 사진을 우리 동네 사진관 가서 찍는 설움을 알아? 폰카까지 카메라 세개를 끼고 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며 셀카를 찍는 굴욕을 아냐고. 그리고 이건 싫으면 어쩔 수 없는 거긴 한데 카메라 댔을 때 경기일으키며 외면하지도 말아줬으면 해. 나의 사랑을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할아버지의 명예를 걸고, 나 진짜 막장 사진은 안 찍는다니까. 특히 동생 자식,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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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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