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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5   안티크, 서양골동양과자점 시사회(2008) [15]
안티크, 서양골동양과자점 시사회(2008)

만약 누가 만화 혹은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별 고민 없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내가 바람의 자식은 아니어서 딱히 팔 할쯤은 못 되더라도 많이 쳐서 한 4 할 정도, 십대의 나를 키운 것은 만화이며, 나머지 4할 정도 이십대의 나를 키운 것은 영화라고 말해도 무방할테니까. 나머지 2 할은 생활과 생존과 생업과 그림과 발레와 피겨와 ㅎㅇㅎㅇ 연아와....여튼 내 머리 속에 굴러다니는 대부분의 판타지는 이들에게서 비롯한다.

그러나 만화와 스크린이 만난다면?

솔직히 요건 좀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우리나라에서 만화 원작베이스로 리메이크한 영화나 드라마 중에 원전을 존중하는 경우를 본 적이 별로 없어서일까. 올드보이나 타짜 같이 수작이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워낙 무리하게 긴 스토리를 2시간에 압축하는 거라 감독의 색깔이 너무 진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이를테면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영화화된 올드보이인데 영화관에 갔더니 박찬욱의 필름이 걸려있더라, 물론 난 박찬욱을 싫어하지 않아서 그 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그리고 영화도 괜찮았지만 뭐랄까 나의 욕구는 여전히 2% 다른 방향으로 충족되어버린 것 같은데 에이씽, 그냥 포기하지 뭐, 이것도 좋은 영화였고 재밌었어' 같은 기분? 좀더 쉽게 말하면 내게 익숙하고 맛있는 해물 삼선짜장을 주문했더니, 제법 그럴싸한 사천탕면이 나왔지만 이미 돈을 냈으니 그냥 먹고 나온거나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이 정도는 양반이지. 당췌 원작의 연출이나 대사, 컨셉, 주요 포인트, 성격, 분위기 및 기타 등등 거의 모든 것을 개무시당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스토리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풀하우스], [태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항간에 만화원작 히트 드라마로 분류되는 [궁]조차 '으음, 글쎄'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장면이 꽤 있어서 엄청 걸리적거리던데. 어렵게 설명할 것 없이, 나의 라이더 베이는 이러치 아나, 나의 엘리 지는 이렇지 않아, 나의 무휼은, 내 인생의 흑발 남자는 이렇지 않단 말이다!...정도가 되겠다. 궁 원작이 SD개그를 좀 과도하게 남발하고 있기는 하지만, 메인 스토리 진행에서 클로즈업을 참 효과적으로 사용해 연출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황감독 뭥미. 미술 이랑 세트 화려한거 보여주려고 허구헌날 먼데서 롱 테이크만 쓰고 말이졈. 우리 황태자마마는 원래 표정변화가 별로 없어서 대사 칠 때 클로즈업하고 화면 전환으로 강조점을 좀 찍어줘야 한단 말이죠 ㅠㅠ 태자비부부가 정물도 아니고 요소요소에 심장을 울리는 히트 대사 같은건 원경 롱테이크가 아니라 좀 적절히 화면으로 강약을 조절해줬어야 했단 말이다. 미술이 어떻고 하며 호평을 받았지만 사실상 스크린의 화려함을 위해 만화적 연출의 장점은 죄다 내다 버린 셈이나 마친가지였다고 본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드라마 [너는 펫]과 [꽃보다 남자],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면서 반했던 것은 마츠모토 쥰의 짙은 눈썹에 남긴 깊고도 오묘한 매력이나, 타마키 히로시의 시크한듯 츤데레함이 아니라 다름아닌 그거였다. 아, 정말로 공중파 방송에서 이 정도로 원작을 살린 드라마가 방영될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똑같이 재현했는지 보다도, 화면 곳곳에 '우리 스태프들은 프로긴 하지만 동시에 이 만화 빠입니다.'라는게 느껴지는 그런 애정어린 드라마 말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려고 하기는 하는가 보다. 음, 이런 말 하면 좀 뭣하지만 감독들이 세대교체되어간다는 느낌이 확 온다. 소재가 없어서 만화를 빌려다 쓰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만하게 내려다보던 '나는 예술이고 너는 기술이니 나는 너를 마구 뜯어 고쳐도 되는거야' 하던 고압적인 시선이 사라져가는듯.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에 빠져보았던, 그리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대가 오고있다. 만약 안티크가 성공한다면 BL의 트렌드화를 확고하게 증명하게 되는 것(물론 이쪽이 주된 이슈거리겠지만 내가 볼 때 진정 중요한 건 후자이다) 이전에, 만화와 스크린이 진정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손을 잡게 된 사례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안티크 : 서양골동양과자점 (2008)은 어떠했나


...를 말하기 전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 일단 좀 웃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영화관에서 이렇게 배터지게 웃은거 놈놈놈 이후로 간만 ㅠㅠㅠㅠ


여하튼 마침 보러가려던 차에, 11월 11일에 크림냥이 시사회티켓이 있다고 해서 쭐래쭐래 따라갔슴미다. 땡스 100만스푼. 좌석에 앉아서 생각해보니 여자들은 빼빼로데이에 오붓하게 영화를 보러가도 아무렇지도 않은데 같은 경우라면 남자분들은 어쨌을까 좀 궁금하기도 하네요. 주변에 거의 다 여자분들이긴 했는데 간혹 남자분들 몇 명 있긴 했던 거 같아요.



- 하여간 웃기긴 웃겼다. 개그때문에 웃겼다는게 아니라 드디어 이걸 영화관에 앉아서 볼 수 있다는 총체적인 상황이 웃겼다는거다. 맞아, 이 만화 실제로 보면 엄청 낯간지러울 장면들이 많은데, 너무 여러 번 봐서 그냥저냥 넘어가고 플롯만 따라다니고 있었던 거였지 ㅋㅋㅋㅋ. 악, 빗속에서 손잡고 빙빙 도는 그 장면을 실사로 보게 될 줄이야 ㅋㅋㅋㅋ감사합니다. 그 장면 더 길게 처리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안해주셔서. 30초만 더 길었으면 배를 잡고 웃다가 기절해버렸을지도 몰라 ㅋㅋㅋ영화를 보고 있는데 보는 내내 문자 그대로 낯이 간지럽다. 악. 민망한건 아니고 그저 간지럽다. 끼야아 >_<

- 주지훈 만세. 브라보. 브라보 주지훈. 처음에 캐스팅 이야기 듣고 '나의 타치바나가 그럴리 없어'라고 생각한 저를 용서해주세요. 왜 이 남자는 얼굴이 클래식하게 잘 생긴 타입이 아닌데도 어떤 분장을 시켜놔도 얼추 다 어울리는 걸까.

- 능력 좋은 영업스타일이지만 알고보면 A형 소심 섬세 도련님 타치바나가, 한국에 오더니 다혈질 츤데레 B형 남자가 되버렸다. 근데 그게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는 것이 주지훈이 연기하니 은근슬쩍 꽤 어울려서 말이지. 원작의 타치바나처럼 깊은 느낌은 째끔 덜하지만 드라마 시리즈도 아니고 두 시간동안 모든 내용을 다 보여주기에는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만화판의 타치바나는 사실 그 속을 제대로 알기에는 시간을 들여야 하는 녀석이니까, 시간 한계가 있을 때는 적절히 '보여주기'가 들어가는 편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 메인 스토리 진행하는데 불필요한 에피소드들을 적당히 다 쳐냈는데도 생각보다 깔끔하게 진행이 되더라. 형사 아저씨를 타치바나의 엄마가 알아보면서 에피소드가 넘어가는 식으로 연속해서 이어지는 몇 부분들은 정말 절묘했다.

- 유아인이나 치카게 역은 예상 외로 대만족. 치카게가 살짝 날날해진 것 같기는 하지만...세상에, 타치바나를 형이라고 불렀어 ㅋㅋㅋㅋ하긴 어렸을 때 놀면서 도련님이라고 불렀다고 다 커서까지 그러는 설정이 한국 문화 생각하면 좀 안 어울리기는 한다.

- ...하지만 정말 연기로만 따지면 앤디 질레가 제일 자연스러워써...이 사람이 너무나 진지하게 닭살돋는 연기를 하고 있었기 망정이지, 어쩌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해도 나는 보았겠지만 ㅋㅋ

- 영화보는 내내 케이크 먹고 싶어서 환장하는 줄 알았다. 아우, 씽 ㅠ_ㅠ 나도, 나도 명인의 손길이 닿은 케이크와 안티크 식기에 담긴 커피를 마시고 싶다. 최근 몇 년간 몸매를 버리고 케이크를 택했는데 하도 먹어대서 요즘은 도통 입에 딱 끌리는게 없단 말이다. 근데 초코 케이크를 찌르면 흘러나오는 초코시럽이 스크린 하나 가득...어어엉

- 뮤지컬 시퀀스는 나름 재밌었다. 전체적으로 다이나믹한 영화 템포에 어울림. 화면에 좀더 꽉 차는 느낌이었으면 웰메이드 뮤지컬 삘도 좀 났을 것 같긴 하다.


전체적으로 좀 빠른 감이 없지 않지만, 화려한 영상이나 조밀하게 짜여진 에피소드 때문에 지루할 시간이 없어서 좋았다. 물론 아쉬운 부분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까다롭게 따지고 들자면 너무 많긴 하지만 뭐. 요시나가 후미가 4권 안에 군더더기 없이 스토리를 짜넣으면서 연출을 기가 막히게 해서는 머리 맡에 놓고 하도 읽다보니, 전권이 머리 속에 사진 찍듯이 들어가 있단 말이다. 게다가 딱히 기대를 안했어서 이 정도면 대략 용인할 수 있는 정도 같다.


#. 후반부에서 타치바나가 자기 인생의 온갖 사건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리면서 마침내 자신의 과거의 원흉(일지도 모르는 현재의 범죄자)를 잡기 위한 경찰의 제안을 수락하는 장면에서 멘트 끝자락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연.
'어쩌면 나는 이 날을 기다려 온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려 왔다'는 느낌이 전혀 다르지 않냐고요. 그 대사는 타치바나가 비로소, 살면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었고 이제 지나가면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유일무이한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왔음을 깨달은 장면이자,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자신이 얼마나 그것을 원했었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화룡점정이었단 말임. 이 장면 연출이 꽤 괜찮아서 방금 전까지 막 웃던 정신을 수습하고 화면을 따라 텐션이 2, 3, 4, 6, 8, 9 ! 하고 올라가다가 마침내 다다른 정점에서 대충 만든 머랭 꺼지듯 푸쉬쉬쉬하고.....내 맘은 아주 조금 꺼졌습니다......어헝



#. 그리고 굳이 지적하자면 맨 마지막 부분에서 타치바나가 여전히 악몽을 꾸면서 깨어나, '에이씨, 별로 변한 것도 없잖아'라고 하는 장면은 왜 빠진걸까. 유괴범을 잡고, 그래서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될뻔했던 아이를 구하고, 주변 사람들이 제각기 갈 길을 가고, 지난했던 인생의 한 페이지가 정리가 되어, 그래서 나도 새로이 변해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에 여전히 느끼게 되는 과거의 잔영이 가진 연속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여전히 흘러가고, 삶은 이어진다는, 그게 주제잖아..? 여튼 그 부분(오늘도 케이크 파럴 나가보실까)에서 친 대사에서 느낌이 살짝 부족했다...하지만 알게 뭐임, 주지훈이 좋았어...ㅋㅋ

#. 타치바나의 어린 시절 행색을 보고 있으면 재벌집 아들이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하느님, 부처님, 남자에 환장한 오노님!'...이라고 말하는 주지훈이 쬠 보고 싶다.

#. 앤디 질레가 '저 아나운서처럼 얄미울 정도로 정확한 프랑스어 발음을 구사하는 보스 때문에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다는거야?'라는 대사도 쫌 듣고 싶은데...근데 불어 발음 듣고 있으니 왜 뺐는지는 알겠더라. (괜찮긴 한데 얄미울 정도로 정확한 건 아니라서 ㅋㅋㅋㅋㅋ)

#. 김재욱의 연기에 관해서는...이건 뭔가 아주 잘된 캐스팅이라기엔 조금 뭔가...잘 나가는(혹은 영화상으로 잘 팔릴만한) 게이는 무조건 꽃미남이어야 한다고 생각한게 틀림없는 캐스터의 '고뇌'...보다도 다소 안이한 인식이 느껴진다. 누군가의 표현에 따르면 '얌전하게 생긴 주제에 부뚜막에는 벌써 올라가 앉아서 내려다보는 듯한 마성'을 가진 오노 특유의 느낌이 살아있다기 보다는 그냥 눈에 띄게 예쁘다. 안전빵을 선택하고 싶은 제작사의 입김이었을지도 모른다. 개봉했으니 이 부분은 관객들의 입에 어떤 식으로든 꽤 오르내리게 될테고, 나는 그저 거기에 딱 한 마디만 보태겠다.





김재욱이
이렇게까지
스트레이트로 보인건 처음이야.
(나는 봤어...그 등 뒤에 달려있는 거대한 땀방울을...)




어쨌든 유쾌하고 즐거웠다. ㄲㄲㄲㄲ >-<-0





by 절세마녀 | 2008/11/15 02:09 | 지하미로:극장개미굴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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