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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가 만화 혹은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별 고민 없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 내가 바람의 자식은 아니어서 딱히 팔 할쯤은 못 되더라도 많이 쳐서 한 4 할 정도, 십대의 나를 키운 것은 만화이며, 나머지 4할 정도 이십대의 나를 키운 것은 영화라고 말해도 무방할테니까. 나머지 2 할은 생활과 생존과 생업과 그림과 발레와 피겨와 ㅎㅇㅎㅇ 연아와....여튼 내 머리 속에 굴러다니는 대부분의 판타지는 이들에게서 비롯한다. 그러나 만화와 스크린이 만난다면? 솔직히 요건 좀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우리나라에서 만화 원작베이스로 리메이크한 영화나 드라마 중에 원전을 존중하는 경우를 본 적이 별로 없어서일까. 올드보이나 타짜 같이 수작이 나오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건 워낙 무리하게 긴 스토리를 2시간에 압축하는 거라 감독의 색깔이 너무 진하게 들어가기도 하고. 이를테면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영화화된 올드보이인데 영화관에 갔더니 박찬욱의 필름이 걸려있더라, 물론 난 박찬욱을 싫어하지 않아서 그 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그리고 영화도 괜찮았지만 뭐랄까 나의 욕구는 여전히 2% 다른 방향으로 충족되어버린 것 같은데 에이씽, 그냥 포기하지 뭐, 이것도 좋은 영화였고 재밌었어' 같은 기분? 좀더 쉽게 말하면 내게 익숙하고 맛있는 해물 삼선짜장을 주문했더니, 제법 그럴싸한 사천탕면이 나왔지만 이미 돈을 냈으니 그냥 먹고 나온거나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나마 이 정도는 양반이지. 당췌 원작의 연출이나 대사, 컨셉, 주요 포인트, 성격, 분위기 및 기타 등등 거의 모든 것을 개무시당하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스토리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풀하우스], [태사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항간에 만화원작 히트 드라마로 분류되는 [궁]조차 '으음, 글쎄'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장면이 꽤 있어서 엄청 걸리적거리던데. 어렵게 설명할 것 없이, 나의 라이더 베이는 이러치 아나, 나의 엘리 지는 이렇지 않아, 나의 무휼은, 내 인생의 흑발 남자는 이렇지 않단 말이다!...정도가 되겠다. 궁 원작이 SD개그를 좀 과도하게 남발하고 있기는 하지만, 메인 스토리 진행에서 클로즈업을 참 효과적으로 사용해 연출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황감독 뭥미. 미술 이랑 세트 화려한거 보여주려고 허구헌날 먼데서 롱 테이크만 쓰고 말이졈. 우리 황태자마마는 원래 표정변화가 별로 없어서 대사 칠 때 클로즈업하고 화면 전환으로 강조점을 좀 찍어줘야 한단 말이죠 ㅠㅠ 태자비부부가 정물도 아니고 요소요소에 심장을 울리는 히트 대사 같은건 원경 롱테이크가 아니라 좀 적절히 화면으로 강약을 조절해줬어야 했단 말이다. 미술이 어떻고 하며 호평을 받았지만 사실상 스크린의 화려함을 위해 만화적 연출의 장점은 죄다 내다 버린 셈이나 마친가지였다고 본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드라마 [너는 펫]과 [꽃보다 남자],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면서 반했던 것은 마츠모토 쥰의 짙은 눈썹에 남긴 깊고도 오묘한 매력이나, 타마키 히로시의 시크한듯 츤데레함이 아니라 다름아닌 그거였다. 아, 정말로 공중파 방송에서 이 정도로 원작을 살린 드라마가 방영될 수 있단 말인가. 얼마나 똑같이 재현했는지 보다도, 화면 곳곳에 '우리 스태프들은 프로긴 하지만 동시에 이 만화 빠입니다.'라는게 느껴지는 그런 애정어린 드라마 말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려고 하기는 하는가 보다. 음, 이런 말 하면 좀 뭣하지만 감독들이 세대교체되어간다는 느낌이 확 온다. 소재가 없어서 만화를 빌려다 쓰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거만하게 내려다보던 '나는 예술이고 너는 기술이니 나는 너를 마구 뜯어 고쳐도 되는거야' 하던 고압적인 시선이 사라져가는듯. 만화를 좋아하고, 만화에 빠져보았던, 그리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대가 오고있다. 만약 안티크가 성공한다면 BL의 트렌드화를 확고하게 증명하게 되는 것(물론 이쪽이 주된 이슈거리겠지만 내가 볼 때 진정 중요한 건 후자이다) 이전에, 만화와 스크린이 진정으로 대등한 위치에서 손을 잡게 된 사례로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안티크 : 서양골동양과자점 (2008)은 어떠했나 # by 절세마녀 | 2008/11/15 02:09 | 지하미로:극장개미굴 | 트랙백 | 덧글(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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