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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싸이에 갔다가

최근 이상한 취미가 생겼다. 퇴근하고 들어와 잠들기까지의 그 얼마 안되는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마치 방황하는 청소년이 별 이유도 없이 밤거리를 헤메이듯, 알고는 있지만 평소에 거의 손대지 않던 웹사이트라든지 오래 전에 등록해두었으나 이후로 두 번 이상 찾지 않았던 즐겨찾기 목록 사이를 무성한 수풀을 휘젓듯 헤메는 것이다. (그렇다고 깨진 링크를 복구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잡초를 뽑는 것은 아니다. 그냥 헤멘다.)

그러던 오늘은, 전국민이 다 안다는 싸이를 사진이나 올리고 간간히 들어오는 1촌 연결이나 해두는 용도로 쓰는 나로서는 정말 간만에 싸이에 접속했다. 워낙에 뭔가를 생산(쓰거나 그리거나 사진을 남기거나)하는 총량이 적어서, 일단 업로드 하면 삭제하거나 뒤엎지 않는 탓에 늘 그 나물에 그 밥인 내 싸이를 멍하니 보다가, 동생의 싸이로 링크를 타보았다. 동생은 나랑은 달리 자기가 남긴 자취를 종종 뒤엎는 편이라 역시 뭐가 많지는 않았다. 여튼 결과적으로 뭔가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는다는 결론은 비슷한데 거기에 다다르는 과정은 전혀 다른 것이, 남극과 북극 정도로 가까운 동생과 나의 속성(멀지만 어쨌든 지구에는 있고, 속성을 내밀하게 따지면 극적으로 다른데 결론은 비슷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요즘 '롤랑의 노래'를 읽는지 간단한 코멘트가 올라와 있길래 봤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매한 인문서적을 읽으며 이상한 포인트에서 포스팅을 하는 걸 보면 자매가 맞긴 맞는 거 같다 ㅋㅋㅋㅋ저 시크한 태그는 뭥미 ㅋㅋㅋ(참고: 앙겔루스 노부스 )


by 절세마녀 | 2009/03/20 01:41 | 레테의강: 흐르는 일상 | 트랙백 | 덧글(9)
김생전 (놈놈놈 DVD 발매 기념 패러디 공개)


...물론 저하고 CJ엔터테인먼트나 김감독님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지만 DVD 발매 되었다니까 겸사겸사 공개해봅니다. 지난 7월 코믹에 나갔던 회지 [Bolero, Bolero, Bolero]에 실렸던 패러디입니다. 요즘 오는 분도 몇 없으니까 그럴리는 없으리라 믿겠지만 이건 절대 <무단펌 금지>. 왜냐면...혹시라도 만에 하나 관계자가 보면 너무 부끄럽잖아아아악...그러니까 그냥 여기서 보고 기억을 되살려 웃고 즐겨주시면 족합니다. ^^



김생전 (놈놈놈 패러디)




김생전


written by 절세마녀



김생은 충무로에 살았다. 곧장 남산 밑에 닿으면, 세트 안에 오래된 이병헌의 상반신 포스터가 붙어있고, 그 포스터를 향하여 문이 활짝 열렸는데, 두어 칸 세트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김생은 시나리오를 끄적대거나 화보집을 뒤적거리기만 할 뿐, 촬영감독이 다른 영화 스턴트질을 하며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촬영감독이 몹시 배가 고파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메가박스1관에 걸리질 않으니, 시나리오를 써 무엇합니까?”
“나는 아직 이 배우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였소.”

김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스턴트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스턴트 일은 본래 배우지 않은 것을 어떻게 하겠소?”
“그럼 일단 캐스팅이라도 못 하시나요?”
“컨셉에 맞는 주연 배우가 모두 몸값이 금값이거늘 어떻게 하겠소?”

촬영감독은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시나리오를 고르더니 기껏'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스턴트 일도 못 한다, 캐스팅도 못 한다면, 그 잡지에 나오는 배우들 몰카라도 찍어야 할 게 아니오!”

김생은 읽던 시나리오를 탁 덮어 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배우 공부로 이십 년을 기약했는데, 이제 십 년인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김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강남으로 나아가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서울 영화계에서 제일 부자요?”

J씨를 말해주는 이가 있어서, 김생이 곧 그의 집을 찾아갔다.

“내가 만주에 좀 가 보려 하니, 100억을 뀌어주시기 바라오.”

J씨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100억을 내주었다. 김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J씨 엔터테인먼트의 마케터와 투자자문이 김생을 보니 이름은 있으나 묘하게 마이너였다.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와 친한가요?”
“아니.”
“하루아침에, 평생 친하지도 않은 사람에게100억을 그냥 던져 주시고 크랭크인 날짜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J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어 그들에게 물었다.

“<조용한 가족>을 보았느냐?”
“아닙니다.”
“<장화, 홍련>을 보았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인생>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를 의심한단 말이냐?”

곁에 있던 무리 중 하나가 슬픈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의 꿈은 이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고서야 쇼군이 왜 그를 외면했겠습니까? 100억 원이 생겼으니 이번에야말로 좋아라 하며 이병헌 팬 무비를 찍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J씨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팬질도 사람 나름이지. 곧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될 게다.”



김생은100억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충무로 구인시장으로 향했다. 충무로는 온갖 감독과 스태프들이 마주치는 곳이요, 삼재(三災)에 빠져 허덕이는 영화인들의 집산지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마침 다음 작품이 없어 놀고 있던 국보급 남자 배우 셋을 낚고, 다음으로는 스턴트의 깡, 음악 감독의 끼, 재능 있는 미술감독과 미술 스태프와 의상 디자이너와 소품 담당들을 대량 확보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덤으로 카메라 대신 카메라맨의 ‘근성’을 주섬주섬 주워담았다. 김생이 능력 있는 배우와 스태프를 몽땅 쓸었기 때문에 온 나라가 영화를 제대로 못 찍게 될 형편에 이르렀다. 김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15억으로 세 주연 배우들의 출연료를 충당했으니, 우리나라 영화계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칼, 총, 말, 지네, 비단이불 따위를 사들이며 덧붙였다.

“몇 해 지나면 나라 안의 사람들이 보통의 블록버스터로는 만족하지 못 할 것이다.”

김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평범한 조폭, 개그, 하이틴, 멜로 영화가 흥행에 대거 실패했다.



김생이 한 로케 장소 헌터에게 물었다.

“북쪽 지방에 혹시 조용하고 넓은 평원이 없던가?”
“있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북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어떤 빈 땅에 닿았었는데, 그게 아마 국경 근처 백두산과 연해주의 중간쯤 될 겁니다. 넓디넓은 평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사람들이 순박해 땅을 파든, 굿을 하든, 영화를 찍든 개의치 않는 곳이지요.”
“자네가 그곳의 지도를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김생이 그렇게 말하며 돈 주머니를 건네자 헌터가 지도를 넘겨주며 히죽 웃었다.

“다 잘 된 거요. 댁은 지도 생겼고, 나는 돈 생겼고, 원본은 서점에 그대로 있고.”



김생은 지도를 받고 촬영 감독과 북쪽으로 가 평원에 이르렀다. 드디어 스턴트가 아니라 본업인 촬영을 한다며 신이 난 촬영 감독이 장비를 내려놓고 얕게 오른 언덕 위로 달음질쳐 올라가 큰 소리로 ‘보인다!! 보인다!!’하고 외쳤다. 김생은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참이었다. 촬영 감독이 다시 소리쳤다.

“옥수수 밭이 보인다!!!!”
“…….”

김생이 대경하여 언덕 너머를 살펴보곤 탄식했다.

“평원은 평원인데 옥수수 밭이 그득하니 여기서 무엇을 해보겠는가?”

그리고 급히 발길을 돌려 둔황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직접 높은 곳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고 만족하여 말했다.

“시야가 트이고 먼지가 자욱하니 이제야 웨스턴 스타일을 도모할 만 하겠구나.”
“텅 빈 땅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찍는단 말씀이오?”
“덕(德)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덕이 없을까 두렵지,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
“……”
“……덕(德)은 개뿔, 독(毒)이겠지.”

촬영감독이 중얼거렸다. 후일 충무로에서 낚인 스태프들이 뒤따라와 김생의 독함을 증명해주었다.



이러저러하여 개봉일이 다가왔다. 이 때, 디씨에는 수만의 갤러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알바가 기승을 부리는지 각 제작사에서 떡밥을 던졌으나 좀처럼 대어가 낚이지 않았고, 갤러들도 감히 짤방을 못 만들어 배고프고 심심한 판이었다. 김생이 갤러들을 찾아가 모아놓고 달래었다.

“떡밥 하나에 갤러 백이면 짤방은 몇 개가 되오?”
“떡밥 나름이지만 무한하지 않겠소?”
“모두 애인이 있소?”
“없소.”
“먹고 살 방도는 있소?”
“애인 있고 할 일이 있는 몸이 무엇 때문에 디씨에서 젊음을 불태운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연애를 하면서 일단 취직을 하려 들지 않는가? 그럼 니트족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승리의 기만자☆로서 배곯을 걱정 않고 유유자적 갤질을 겸하며 길이 의식의 요족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다만?”
“갤질이 너무 재밌어 그럴 겨를이 없소.”

김생은 웃으며 말했다.

“하긴 갤질을 하며 어찌 인생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떡밥을 마련했소. 내일 부두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떡밥을 실은 배이니, 마음대로 가지고 놀아 보구려.”

김생이 갤러들과 언약하고 내려가자 모두 그를 세상 물정 모르는 뉴비라고 비웃었다. 이튿날, 갤러들이 나가 보았더니, 과연 김생이 삼십만 톤의 빠삐코를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김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따, 따르겠습니다.”
“힘껏 만들어들 보아라.”

이에, 갤러들이 다투어 짤과 리믹스를 만들었으나, 한 사람이 백 개 이상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너희들 씽크빅이 떡밥 당 백 개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무슨 룸펜에 한량 노릇을 하려드느냐? 이제 너희들은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고정닉이 유식대장의 호패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당 짤방 하나, 리믹스 하나씩 만들어 거느리고 오너라.”

김생의 말에 갤러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중략)


김생은 몸소 십만 명이 1년을 놀 수 있도록 칸 버전과 인터뷰로 떡밥을 살살 뿌리며 기다렸다. 갤러들이 2차 창작물을 들고 빠짐없이 모두 돌아오자, 모두 배에 싣고 포탈로 입성했다. 이렇게 김생이 오덕들을 한데 쓸어 모으니 나라 안에 덕질이 그칠 일이 없었다. 김생이 웃으며,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이어 덕인(德人) 삼천 명을 모아 놓고 말하기를,

“내가 처음에는 너희들을 먼저 후덕(厚德)하게 한 연후에 따로 비툴을 만들고 코스의상을 제정하여 ‘정예 덕인전대’를 양성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빠삐토닉이 넘치고, 커플링은 산으로 가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마우스를 쥐고 하루라도 먼저 새로이 창작한 사람을 공경토록 하라.”

김생은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배가 없으면 돌아 나오는 이도 없으렷다.”

150시간 분의 미공개 필름을 조각내어 바다 가운데 던지며,

“바다가 마르면 덕 있는 자들이 주워가겠지. 두 시간 반도 길다고 우리나라에 용납할 곳이 없거늘, 하물며 이런 작은 땅에서랴!”

그리고 기사 좀 쓰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면서,

“충무로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했다.



김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오덕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떡밥이 디비디 서플을 채울 만큼 남았다.

“이건 J씨에게 갚을 것이다.”

김생이 가서 J씨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J씨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100억을 실패 보지 않았소?”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100억이 어찌 덕(德)을 살찌게 할까?”

김생이 웃으며 추가로 70억의 청구서를 J씨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배우 공부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나 제작비 몇 푼이 부족하여 촬영을 내 눈에 완벽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당신에게 고작 100억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J씨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원금에 십 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김생이 잔뜩 역정을 내며,

“당신은 나를 그저 그런 상업영화인으로 보는가?”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J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김생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세트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파파라치가 담벼락에 붙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을 보고 J씨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세트는 누구의 집이오?”

“김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배우만 좋아하더니, 하루아침에 집을 나가서 10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촬영감독과 사는데 같이 나간 날로 와이어 맨이 됐다지요.”

이튿날, J씨는 <년년년> 시놉시스를 들고 김생을 찾아와 차기작을 의논하려 하였으나, 김생은 거절하였다.

“내가 흥행 감독이 되고 싶었다면 톱스타 세 명으로 덕질을 했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쌀밥과 덕밥이 떨어지지 않도록이나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흥행 때문에 취향을 포기하고 귀차니즘을 감내한단 말이오?”

J씨가 김생에게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J씨는 그 때부터 김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주었다. 김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영화 잡지 미공개 B컷 촬영 사본이나 출시 전 화보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기며 밤새도록 배우들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며 취하도록 마셨다.



J씨는 본래 유인촌과 잘 아는 사이였다. 유인촌이 당시 문화부 장관이 되어 J씨에게 여염에 혹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J씨가 김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유장관은 깜짝 놀라면서,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연이 닿은 유 장관은 김생을 찾아갔다. J씨는 유 장관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김생을 보고 유 장관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김생은 못 들은 체,

“가지고 온 신간 화보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고 한 장 한 장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김생은 유 장관이 방에 들어와도 자리에서 일어서지조차 않았다. 그가 몸 둘 곳을 몰라 하며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김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길어서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장관이오.”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 받는 신하로군. 내가 독립영화 판의 걸출한 신인 감독들을 천거하겠으니, 국가에서 편당 1억씩 지원할 수 있겠느냐?”

유 장관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 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나는 원래 제 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외면하다가, 유장관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이글루스, 디씨, 웃대 등 각처에서 놀고 있는 아이디어 꾼들이 주리지 않고 활동 할 수 있도록 데자와 값을 500원으로 인하하고, 조건 없이 식대와 월급을 제공할 수 있겠느냐”

유 장관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또 ‘어렵습니다.' 라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문화 컨텐츠의 창발을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재주꾼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안 되고, 그들이 마음껏 놀 판을 벌여주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MB가 느닷없이 천하의 주인이 되어 네티즌과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로그인도 못하는 실력이라 UCC의 힘조차 무시하는 터이다. 유튜브와 구글에 대적할 수 있도록, 창작과 패러디의 자유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그들의 숨통을 틔워주고 능력자를 찾아 잘 보필하라. 잘 되면 임기 내에 한류우드의 르네상스를 볼 것이고, 못 되어도 시류를 못 따라 비웃음 사는 일만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유장관이 힘없이 말했다.

“사대부인 국회의원들이 국론 통합이라는 대의를 위해 한마음으로 포탈 장악에 힘쓰는데 누가 그런 제도를 통과시키겠습니까.”

김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민심과 시류변화를 읽지도 못하면서 자칭 국회의원에 여권이라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은 데가 있느냐? 실용, 실용하며 그것이 무슨 복음인 듯 말하지만 따지고 보면 좌판 상인의 논리보다 나을게 없으며, 대로에 컨테이너로 산성을 쌓는 것은 무식한 습성에 지나지 못한데 대체 무엇을 가지고 문화를 논한단 말인가? 메디치는 고리대금업에서 시작했으나 오명을 씻기 위해 예술가들을 지원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BBC는 TV시리즈 부흥을 위해 자신들의 덕심(德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문화 산업의 진흥을 위해 투자하겠다 하면서 그깟 지원금을 아끼고, 또 장차 전 세계 컨텐츠로의 접근 장벽이 사라질 마당에 정권 유지를 꾀하며 딴에는 국론통합으로 포장해 대의라 한단 말이냐?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 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 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손가락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식칼을 찾아 손가락을 자르려 했다. 유장관은 놀라서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이 텅 비어 있고 김생은 지방으로 무대 인사를 떠나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무슨 삘을 받아서 썼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해먹었던 패러디 중에 제일 마음에 듭니다. 물론 망상이고 패러디일 뿐이에요. 핫핫핫. 다른 건 더 공개할 생각이 없지만 이건 왠지 다 같이 보고 웃었으면 하던 차에 올립니다. 시일도 꽤 지났고하니 [볼레로 볼레로 볼레로] 구매해주셨던 분들께서는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거 말고 다른 분들 글 좋은거 마...많으니까 봐주세영 >-<-0 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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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 2009/03/15 03:27 | 서쪽 탑: 상상의 서고 | 트랙백 | 덧글(21)
개그농부 (수정)

MSN 만담: 개그농부이야기



(중략)

근데
그래도 옛날엔 한번 뭘 만들면 끝까지 작업했는데
님이랑 협업하다보니 자꾸 자립심이 떨어짐..


뭔 소리임?


대충 간만 봐서 던졌는데 완성되어 나옴
매듭짓고 싶은 맘이 안생겨...


그게 협업의 장점이지..
일단 완제품이 많이 나온다



오오!!


단점은 둘 다 반제품 만드는 실력만 는다.


오오ㅠㅠ


서로 집어던지기만 하고 완성하지 않음


내 입장에서 또 하나의 장점은..
죄책감을 덜 수 있다는거


뭐임마ㅋㅋ


아무리 괴상한걸 만들어 뱉어놔도
일단 마녀님네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짐
내가 만든거 아님
마녀가 이상한거 조제함ㅇ_ㅇ



어따 떠넘기고 있어 ㅋㅋ


님은 고약제조자...
나는 그저

개그나무를 재배하는 남미의 가난한 농부


커피를 재배하면 알량한 동전이나 받지,
개그나무 따위 재배해도 g당 한 푼도 못 범



콜롬비아 농장의 소작인 호세는 말했습니다
"이 글..아니, 개그가 이글루져..
아니 뉴요커들의 고급 농담거리가 된다지만...
저는 그분의 얼굴을 뵌 적도 없습니다
개그나무를 재배하는 일은 배가 고프고 춥습니다.
하지만 마녀님이 어떻게든 해주실거야."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줍디까?"

"도와주긴요. 가만 앉아있으면 소재거리를 누가 막 던져주나요? 열 삽질에 한 웃음 도와주시는 분도 쉽지 않습니다. 삽질할 때마다 정성스럽게 모은 눈물을 나무에 뿌렸습니다. 이러기를 아홉 달 하여 겨우 이 나무 한 그루를 키웠습니다. 이 한 그루에서 개그열매를 얻기까지 온라인에서만 8년을 굴렀습니다"

"왜 그리 고되게 개그나무를 키웠단 말이오. 대체 그 열매로 무엇을 하려오?"


"이 웃음꽃 한 송이를 피워보고 싶었습니다"










---------------------------------------------


덧.





by 절세마녀 | 2008/11/29 23:25 | 박쥐통신:마녀의 만담일보 | 트랙백 | 핑백(1) | 덧글(24)
[싸구려 커피 패러디] 싸구려 주식


(1:53초부터 음악 나옵니다)



싸구려 주식

(원문 가사보기:싸구려 커피 by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 깬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 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든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뭐 한 몇년간 세숫대야에 고여있는 물마냥 그냥 완전히 썩어가지고 이건 뭐 감각이 없어 비가 내리면 처마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면은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 비가 그쳐도 희끄무레 죽죽한 저게 하늘이라고 머리 위를 뒤덮고 있는 건지 저건 뭔가 하늘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낮게 머리카락에 거의 닿게 조금만 뛰어도 정수리를 꿍 하고 찧을 것 같은데 벽장 속 제습제는 벌써 꽉 차 있으나 마나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을 볼 때 마다 어 약간 놀라 제멋대로 구부러진 칫솔 갖다 이빨을 닦다보면은 잇몸에 피가 나게 닦아도 당최 치석은 빠져 나올 줄을 몰라 언제 땄는지도 모르는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모금 아뿔싸 담배꽁초가 이제는 장판이 난지 내가 장판인지도 몰라 해가 뜨기도 전에 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 마리쯤 슥 지나가도
무거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기침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축축한 이불을 갠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아직 덜 깬 하늘이 너무 가까워 숨 쉬기가 쉽질 않다
수만번 본 것만 같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익숙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 빈 나를 잠든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하고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written by 고스트라이터 & 절세마녀



싸구려 주식을 던진다 하한가라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폭락세 월요 증시에 사이드카 툭 하고 걸렸다 해제된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주가지수 백포인트 쯤 내려가도
무서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칙칙한 증시를 본다 곡소리나는 주갤 열고 입갤하여 본다
아직 덜 빠진 종목이 너무 아까워 팔기가 쉽지를 않다
손절매 할 것도 없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황당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빈 나를 잠근다~


싸구려 주식을 던진다 하한가라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폭락세 월요 증시에 사이드카 툭 하고 발동걸렸다가 해제된다


뭐 한 몇 년 간 코스닥에 묶여있는 벤쳐마냥
그냥 완전히 망해가지고 이거는 뭐 전망이 없어
주가 내리면 거래소 아래 쭈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면은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장이 열려도 시푸르딩딩한 저게
현황이라고 모니터에 뜨고 있는 건지
저거는 뭔가 지수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낮게
차트 바닥에 거의 닿게
조금만 내려도 최저점을 쿵 하고 찍을 것 같은데
유동성 준비금은 벌써 다 써 있으나 마나
환율 때려잡다 오른 피말리는 물가를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제멋대로 떨어진 잔챙이 주로 손실을 메꾸려다 보면은
매도를 피가 나게 눌러도 당최 거래는 이루어질 줄을 몰라
언제 들었는지도 모르는 인사이트 펀드가 걸린 통장을 열고 수익률 확인
아뿔싸 브릭스 대폭락
이제는 잔고가 0인지 0이 잔고인지도 몰라
이자가 붙기도 전에 원금이 사라지는 이런 상황은 뭔가


싸구려 주식을 던진다 하한가라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폭락세 월요 증시에 사이드카 툭 하고 걸렸다 해제된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주가지수 백포인트 쯤 내려가도
무서운 매일 아침엔 다만 그저 약간의 눈물이 멈출 생각을 않는다


칙칙한 증시를 본다 곡소리나는 주갤 열고 입갤하여본다
아직 덜 빠진 종목이 너무 아까워 팔기가 쉽질 않다
손절매 할 것도 없다 어지러워 쓰러질 정도로 황당하기만 하다
남은 것도 없이 텅빈 나를 잠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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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가 생일 선물로 패러디를 해달라기에 고스트랑 엠에센에 쭈그리고 앉아서, 해놓고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 보면은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 개사를 끝내도 음치무리죽죽한 이걸 선물이라고 포스팅을 하고 있는 건지, 이거는 뭔가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너무 짜게, 인생막장에 거의 닿게...조금만 더 했다간 알밤을 꿍하고 맞을 것 같은데(...)




by 절세마녀 | 2008/11/04 02:28 | 서쪽 탑: 상상의 서고 | 트랙백(2) | 핑백(1) | 덧글(56)
본격 서울에서 혼자 집 구하는 이야기 - 제 1탄


* 본 글은 펌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튼 혹 있으시면 내려주세요
(사실 이 이글루 원래 방침이 그렇습니다.) *



당신은 여의도 닭할머니를 아는가 (1)



얼마 전 여름의 이야기이다.


아마 이 이야기를 들은 여러분들 중 어떤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1970년도, 80년도, 90년도 아닌 2008년에 일어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내게 '그거 정말로 진짜요?'하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맹세코 이 사건은, 대부분 내가 경험담을 포스팅할 때 편집에 있어서 약간의 창작성을 인정하는 차원에서 붙이곤하는 99%의 레테르조차 가소롭다 느껴질 정도의, 100% 生진실과즙 원액으로 만들어졌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130, 아니 300%라고 말해도 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다.



정말이야. 좀 믿어줘.



여름이었다. 정말 뜨거운 여름이었다. 지금은 좀 선선해졌지만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실감나게 감상하기 위해 직사광선이 사막의 태양처럼 아스팔트에 때려박히는 몇 주 전의 여름을 떠올려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렇게 뜨거운 여름에 평소처럼 에어컨이 나오는 기숙사 방에서 뒹굴거리기나 할 것이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냐 또 한번 물어봐 주시라.


파리에 있는 동생이 그리스나 가자며 강렬한 유혹을 보내던 그 때, 나는 아마도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소중한 방학을 여행의 ㅇ 자도 못 꺼낸 채 논문 마감과, 인턴과 기타 등등 따위로 날려보내고 있었다. 동시에 졸업하고 나면 나를 꿀럭, 하고 토하듯 뱉어낼 기숙사를 대신해 살 집을 구하러 다녀야만 했다. 왜 그 때까지 집을 못 구했나에 대해 내 스스로 그 때의 나에게 면죄부를 좀 허락해주고 싶다.


어찌나 정신없는 한 달을 보냈는지, 피로가 누적되다 못해 어깨에 꾸덕꾸덕 떡처럼 들러붙어 떨어질 날이 없었다. 7월부터 이어진 인턴 일에, 파리로 교환학생을 떠났던 동생이 돌아올 때가 되었지를 않나, 논문은 마감 직전에 세이프하는 기분으로 교수님의 확인도장을 받고 며칠 밤을 또 새며 수정해서 얼토당토않은 감사의 말과 함께 인쇄를 하게 되지를 않나, 여차저차해서 드디어 인쇄소에 넘기고 '오오, 다 이루었나이다. 다 끝났으니 좀 쉬어야지' 하는 순간, 정말로 바로 그 순간에,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자가 날라와 '3일 후부터 출근하셈'이라는 바람에 솔직히 도리어 짜게 식어버렸다!! 이유없는 분노가 턱까지 차올라와서 숨이 턱턱 막혔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간신히 데드라인을 맞춰가며, 밤새워 플레이스테이션을 두들기는 유저의 손에 놀아나는 모든 게임들의 초급용사 나부랭이처럼 미션들을 클리어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와중에, 내 인생 최초로 영화 팬북(다시 말해 동인지) 같은 것에도 손을 대고 있었다. 마지막에 뭔가 이상한 게 끼어든 것 같지만 여튼, 나름 먹고사니즘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단 말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모든 일들이 대강 정리가 되었을 즈음에는, 가장 오랫동안 주변에서 하라고, 하라고 난리들을 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우선순위목록에서 저 아래쯤으로 밀려나 발치에서 굴러다니던 '집구하기'가 최종보스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퇴사까지 기한은 꼴랑 2주일이 남았고.


이것만 끝내면 8월이 끝나! 이것만 끝내면 급한 불은 몽땅 다 끝이다! 올 여름 더위는 빠삐코에 맡기면 되고, 빠질은 김감독에게 맡기면 되지만, 갑자기 살뜰한 학생근성이 발동해 '자기의 집은 스스로 찾자' 모드가 되었던 나는 동생과 같이 살 방을 서울대 입구역 근처에서 알아보고 있었다. 그 더운 날 쪼끔이라도 큰 원룸을 찾기 위해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부동산 아저씨와 함께 8개 정도 집을 보았으나, 꼴에 그 후진 원룸쪼가리들도 역세권이랍시고 가격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기어오르는 중이었다. 같은 학교 근처라도,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인 저렴한 '녹두'거리와, 쇼핑센터와 전철역이 가까운 설대입구역의 방세는 천양지차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곳에 자리를 잡으면 동생이야 좋지만, 내게는 엄청 애매해서 출퇴근하는데 1시간은 족히 걸리는지라 좀 궁시렁거리면서 계속 맘을 못 정하고 어쩌나 하고 있었다.



그 때,



열혈 근성으로 인터넷에서 검색질을 하다보니 여의도의 모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가 방을 두 개 세 놓는다는 글이 걸려 올라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가격이 참 쓸만했다. 보증금 100에 월세 35, 관리비 없음. 솔직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 방이 좀 더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그곳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는 점에 있다. 대체 방꼴이 어떻길래 여의도 한복판에 이런 가격에 방이 나오나 싶어, 가서 보고 아주 못살겠다 싶지만 않으면 임시 대피소를 그곳에 마련하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학교와 도보 15분 거리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아침에 출근하느라 1시간씩 쓰는게 영 마음에 안 들던터라 가깝고 아니고가 나한테는 꽤 중요한 고려대상이었음을 좀 이해해주시길.


그래서 갔다.
퇴근하고 한 6시 반쯤이었나.
그 때는 해가 길어서 6시면 아직 밝은 빛이 들 때였다.





밝은 빛이 들었어야 하는 때였다!!





전화로 목소리를 들었던 키 작은 할머니가 뿅하고 튀어나와서 나를 복도 끝(복도형 아파트였다) 자기 집으로 안내했다. 집 앞에는 온갖 화분들이 놓여 지멋대로 자라고 있었는데 뭐 거기까지는 괜찮다. 여름이라 더워서 그런지 대문을 활짝, 반대편에 있는 베란다 샤시도 활짝 열어놓고 있었는데, 그것도 괜찮다. 그러나 아무리 문을 열어놓았다고는 해도 6시 반을 넘겼기 때문에 방 안 까지는 빛이 들어오지 않아 집구석이 좀 어둑어둑해 보였다. 대체 왜 이 할머니는 불을 안 켜고 사는걸까, 고민스럽긴 했지만 하긴 뭐,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지금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니까!




문을 열고 바로 맞은 편으로 크게 거실 베란다 샤시가 있었는데, 왜 이렇게 해가 안 드나 했더니만 그 샤시에 나팔꽃이, 미친 나팔꽃이!! 벽면을 반 넘게 뒤덮은 상태로 자라고 있었다고!! 순간 내가 아파트에 들어온 건지 정글에 들어온건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보통 거실이라면 소파가 한 중간에 아늑하게 놓여있고 티비 같은 것들이 안정감 있게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는게 정상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 집에 들어오고나니 그게 단지 고정관념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 소파가 벽에 붙어 치우쳐있는데



TV가,
소파 위에 있어?!



뿐만 아니라 온갖 가재도구들도 소파 위에 어지럽게 쌓여있었다. 그러고 산지 꽤 되었는지 먼지가 자욱했다. 한쪽에는 식물 정글, 다른 한쪽에는 문명의 이기로 이루어진 정글.


그래도 뭐, 한 호흡 쉰 뒤 생각했다. 그 정도야 괜찮아. 솔직히 뭐 식물 키우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면 그럴 수도 있지. 치우는게 귀찮다 보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오히려 시원하고 좋네. 나는 할머니가 단지 나와 자신의 오라버니가 출신 학교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 오라버니의 온갖 인생 역정을 물어본 적도 없는데 주섬 주섬 늘어놓는 것을, 자기 오라버니가 완벽주의자에 머리가 좋아서 S대 법대를 갔는데 수학은 자기보다 못했다든지, 어쨌든 열심히 살아서 모 은행의 부행장을 하다가 행장 자리를 놓고 S대 상대 출신이랑 붙었다가 져서 홧병으로 몇년 전에 돌아가셨다든가, 그 뒤로 아들들끼리 재산 싸움이 심하게 났다든가, 그래서 참 안 됬다든가 하는 이야기를 대충 흘려들으며 거실을 관찰하고 있었다.


대략 다음과 같은 구조였다.





거실 한 중간에 큰 화분이 5개 듬성 듬성 놓여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엎어져 흙이 쏟아져 있었다. 왜 이 할머니는 저걸 안 치우고 그냥 있는 걸까. 손님이랄 것까진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같이 살 사람이 집 보러오는 중대한 순간에는 평소보다 좀 깨끗해야 하는거 아닌가. 아참, 이 집 쌌지. 나는 좀 망연하게 바라보다가 중간에 말을 끊고 할머니께 물었다.


"할머니, 다른건 그렇다치고 혹시 제가 저녁에 가끔 밥 해먹어도 되나요?"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좀 망설이는 듯한 눈치였다. '음...요리 안하는 조건으로 싸게 내놓은건데...' 좀 고민하는 듯 하더니 내게 말하기를,



"뭐, 정 쓰고 싶다면 써도 되는데 되도록
조개, 갈치, 오징어, 새우, 돼지고기는 좀 피해줬으면 좋겠는데..."



...쓰면 쓰는거고 아니면 아닌거지, 어째서 그 맛있는 조개, 갈치, 오징어, 새우, 돼지고기는 안된다는 겅미. 아, 혹시 해산물 냄새를 못 맡는 걸까. 아니, 그렇다면 다른 생선이 아니라 왜 저것만 꼭 찝어서 말하는 건데? 순간 무의식의 저 밑바닥에서 얼마 전에 읽었던 누군가의 포스팅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성서에서 동성애를 금하라 했으니 하지 말라고 동성애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댁들이 그렇게 신봉하는 성서에는 새우 먹지 말라는 교리도 있으니 앞으로 너희들은 새우 먹는 것도 금하라는 뭐, 그런 내용.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우리 나라에 있을리가 없지, 하고 생각하는데 할머니가 말을 이었다.





"응, 그게...






내가 유대교인이라..."








내가 유대교인이라...
내가 유대교인이라...

내가 유대교인이라...!!!!





안 그래도 할머니가 말이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살갑게 청산유수인게 부담스러웠던 나는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니, 난 지금 유대교를 사이비 종교 취급 하고 싶은게 아니다. 정말로. 하지만 저 뽕맞은 방꼬라지와 이 할머니의 요구사항과 유대교인의 희귀함을 조합해보시라, 대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유대교요? 한국에 거의 없지 않아요?"
"없지. 아마 나 혼자거나...있다고 해도 딱히 알고 지내는 건 아니니까."
"아니, 근데...그게...어쩌다가...."
"어, 내가 예루살렘에 7년간 살다보니까 그렇게 됐어."


그렇구나.
그 한 마디에 발랄하게 납득했다.


"거긴 왜 가셨어요?"
"교사생활 하다보니까 은퇴하고 할 일도 없고하니 지겨워서 돈 다 싸들고 나갔다가 눌러앉았지."





아, 원래 성격이 그냥 그렇게 리버럴한 사람이구나. 그래서 이 정도로 안 치우고도 평범한 레벨에서 자기가 상당히 먼 곳까지 와 있다는 걸 인식을 못하시는 거구나! 그리고 그걸 인식을 못한 채로 평범한 세인들에게 방을 내 놓는 거구나!! 스스로 인과관계를 만들어내며 나는 좀더 납득했다. 어차피 집 생긴 구조를 보아하니 내가 거실까지 갈 일도 없을 것 같고, 거실에서 할머니가 뭘 하고 살든 나는 나대로 화장실과 내 방만 들락거리면 될 것 같고 해서 그냥 그만하면 살 만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근데 나 애완 동물 하나 키우는데..."
"음? 들어올 때 못 봤는데요? 개나 고양이 같은 건가요?"
"아니, 그런게 아니라...



















내가 닭을 한 마리 키워."











??

머라굽쇼?????

????????????????

???!!!!!?!?!?ㅇㅁㄴ맆마ㅓ

???ㅁ??!?@ㅇ퍄ㅖ므:ㅒㅑㄹㅇ:ㅁ?





이거 말고











그니까 이거 말고














이런 귀여운거 말고















































여의도 한복판




아파트에





!!!!닭!!!!












자, 한번 상상해보자. 국내 자금줄이 흘러다니는 마천루들과 바퀴벌레같은 국회의원들이 출퇴근하는 위풍당당한 국회의사당이 있는 한 가운데에 허름하니 20년은 넘은 듯한 아파트가 있고 그 꼭대기에 전직 수학선생이라는 할머니가 한 분 사신다. 결혼을 안해서 슬하에 자식들은 없고, 그래도 좁은 집에서는 못 살겠다며 차라리 자기가 전세로 큰 집을 빌리고 남은 방을 세 놓아서 그걸로 생활비와 방세를 대강 충당하시는 할머니. 대문과 베란다 문은 활짝. 거실에는 미친 나팔꽃이 정글처럼 신비주의를 내뿜고, 화분 5개가 오망성 대열로 서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엎어져 흙이 흩어져 있고, 유대교인이라 조개와 새우와 오징어와 갈치는 먹으면 안되고...그런데 닭을 키워...애완용으로...



그게 상상이 됨? 솔직히 현실성 없어서 비웃기는 설정 아님?
근데 그게 현실이야!!





"하...하....하....할머니, 왠 닭이에요?"
"그게 병아리 때 주워왔는데 키우다보니까 잘 커서 닭이 되갖고...버리지도 못하고 남 주지도 못하고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됐어."



아하.
관대함과 취존중의 화신인 나는 여기서 또 납득해버리고 만 것이다. 할머니가 할 일 없고 외롭고 심심하면 어디서 병아리 주워와서 키우고 그럴 수도 있지. 실제로 내 친구들 중에 그런 에피소드 가진 녀석이 있어서 그럴싸하다며 넘어갔다.



"평소에는 닭이 거실에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방이 좀 어지럽지."



아하, 그렇구나! 닭이 뛰놀아서 화분도 엎어지고 흙흘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그냥 두고 사는 거구나. 그러다보니 TV가 소파에 올라가기도 하고 그런거구나! 그러쿠나!!



우리 할머니가
외로워서
닭을 키우고 싶으셨던 거구나!!




...하고 납득할까보냐!! 납득은 하지만 용납하는 거랑은 다른 문제지.



"할머니, 근데 그러면 아침에 막 울고 그러지 않아요? 저 그런건 좀 그런데..."
"어, 그건 내가 못 울게 할게."





어떻게!!!!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패닉에 빠진 채로 나는 이게 대체 말이 되는 상황인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방 꼴 보고 뛰쳐나오고도 남았을텐데, 그리고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 맞다는 건 알고 있는데, 여하튼 앞에도 썼듯이 내게는 시간이 2주일도 채 남지 않았고, 지치고 바쁘고 할일은 쌓여있고 해서 대뇌가 정상적인 판단이라는 걸 거부하는 시점이었다. 그래서 정신을 다잡으면서 물었다.


"오호호호, 신기하셔라. 할머니 그럼 제가 닭 좀 구경해도 되요?"


장닭인지 암탉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잖아!!


"아, 그...그건 내 프라이버시라 좀.."


뭔 놈의 프라이버시!!
난 지금 내 정신세계가 맛이 간게 아닌가 싶을 정돈데!!
이 집에 오니 내가 엄청 평범하게 느껴진다고!!



"아하하, 안방에 있는데 하도 안 치워서 그래. 아하하하하."





하긴 여기서 더 안 치운 상황에 닭까지 있으면 좀 보여주기는 그렇겠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다른 이야기들을 계속 하시는데 , 어느덧 7시가 넘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빛이 안 들어오던 거실에 더더군다가 빛이 사라져 어둑어둑하니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 할머니 계속 불은 안 켜고...성긴 나팔꽃 그림자가 더 흉물스럽게 느껴지지를 않나, 내 등 뒤로 굳게 잠긴 안방에...젠장, 그 안방에 뭐가 있는지 아직 확인도 못했고...




근데 거기 진짜 닭이 사는게 맞긴 한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퍼뜩 '절대 이 문은 열지 말라'며 호기심 가득했던 아내들을 살해한 푸른 수염의 얼굴이 둥둥 떠오르고, 고리짝에, 정말 어린 시절에 풍문으로 흘려듣던 20여년 전 인신매매단 이야기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힘 약해보이는 할머니를 앞세워 지나가는 아가씨들한테 요 봉고차 안에 있는 물건 좀 꺼내달라고 하다가 쓱 밀어넣고 태워가 팔아먹어버린다든가, 짐 좀 들어달라고 해놓고 거동을 불편하게 한 다음에 쏠랑 잡아가 버린다든가 했다던 이야기들.




솔직히
저 방 안에
닭이 있는지
힘센 장정이 있는지
내가 어떻게 믿냐고!!!





숫제 할머니는 7시 20분이 자기 기도 시간이라며 히브리어로(난 잘 모르겠고 자기가 그랬다) 중얼중얼대며 기도를 하는 와중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주문을 외는 사이비 마법사와도 같아 더욱더 다크한 신비감을 풍겨대는데 이거 까딱 잘못했다간 이사고 뭐고 오늘 당장 잡혀가는 거 아냐?! 그래서!! 난 정말 !! 여차하면 열린 대문으로 튈 생각을 하면서!! 가방끈을 살짝 잡고!!!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방 안에서 닭이 울었다!!!!!!












오 쉣!! 할렐루야!!


진짜 닭을 키우는 거였어!!!!


최소한 인신매매단은 아니겠구나!!!!!!!






이걸로


일단 안심이다!!!!!!



















'뭐가 안심이야, 이 ㅄ아.'








...라고 말하고 싶으실 줄로 안다. 하지만 한층 더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던 참이라 오히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닭소리에 ㅋㅋㅋㅋ안정감을ㅋㅋㅋㅋㅋ 젠장, 내가 어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더 웃기는건 이게 끝이 아니라는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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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여기까지가 서울에서 집구하는 이야기 시리즈의 기승전결 중 '기'에 해당하며, 여의도 편에서는 '전'에 해당합니다.








by 절세마녀 | 2008/09/21 16:22 | 레테의강: 흐르는 일상 | 트랙백(2) | 덧글(205)
[세기말적 막장 패러디] ...양 한 마리

친구: 호오, 제법 많이 오나봐?
마녀: 공감탔으니깐. 근데 생각보다 이글루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은가봐.
친구: 왜?
마녀: 메인페이지인데 하루 2천 넘기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네이버라면 10만을 가볍게..
친구: 뭐, 별로 문제 없지 않아?
마녀: 무슨 의미야?
친구: 잘 생각해봐. 10만의 초딩2천의 정예덕후 중에 어느 쪽을 원해?
마녀: ......
친구: ......
마녀: 다, 당연히 후자지!!
친구: ...그게 니가 이글루에 있는 이유야.


아하!!

(아니, 물론 여기 오시는 분들이 다 덕후라는 것도, 네이버 쓰시는 분들이 다 초딩이라는 것도 아니고요...랄까 전 둘 다 애용합니다. 그냥 빗대서 웃자고 하는 소리)



[패러디는 패러디일뿐] 양 한마리




...양 한마리



- inspirated by 어제와 그저께의 그 친구
-written by 절세마녀




    내가 사막에서 본 일이다.


어린 덕후 하나가 비행기 수리공에게 가, 떨리는 손으로 상자 그림을 내 놓으며,


     "황송하지만 이 ...양이 잘못 그린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졸던 수리공의 입을 쳐다본다.
수리공은 어린 덕후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그림을 라이트 박스에 비쳐보고는


      "좋소."


  하고 내어 주었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그림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피규어 가게를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그림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진정 하루히 양이 맞습니까?" 하고 말을 바꾸어 다시 묻는다.


가게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낙서를 누가 발로 그렸어?"


  어린 덕후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지인을 갈취했다는 말이냐?"

      "낙서라니요, 당치않습니다. 축전은 아무나 그려주나요.
      그림판에 마우스로는 두시간 동안 그려도 댓글 하나 받기 열에 하나가 쉽지 않
      습니다. 어서 도로 주십시오."


그는 손을 내밀었다. 가게 주인은 웃으면서


      "좋네. 내일은 구경만 하지 말고 좀 사러 와라."


  하고 던져 주었다.


어린 덕후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더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그림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그림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림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그려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시오, 불펌하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비툴커뮤에서 몰래 복사치기한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컬러 삽화 한 장을 줍니까? 흑백 한장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나마 선 따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포토샵이 에러나기를 여러 번, 한 땀 한 땀 불러온 임시저장글에서 고작 몇 픽셀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사막을 건너고 우주를 여행하여 겨우 이 양 그림 하나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 그림을 얻느라 벌써 마법사가 될 지경입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그림을 얻고자 했단 말이오?
      그것으로 무얼 하려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짤방 한 개가 몹시 갖고 싶었습니다."














...이러다 맛들이겠습니다. 어린 왕자, 의외로 컨셉만 잘 잡으면 여러가지로 각이 나오네요...랄까 왜 아직까지 아무도 이 소재로 놀지 않았던 걸까요. 역시 누구나 가슴 속에 삼천원쯤 있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한테 '내 마음속의 손대고 싶지 않은 순수'이런 거였던 걸까나.

사실 어린 덕후는 댓글에도 쓴 적 있고, 헌사부분부터 패러디 한걸 보면 아시겠지만, 발상이 너무 좋아서 전문을 통짜로 패러디하려다가 '내가 지금 이거 할 때가 아닌데, 대체 이 마수는 뭥미!!' 하며 일단 저렇게 내어둔 겁니다. 저나 친구나 둘 다 그림 그리는걸 엄청 귀찮아 하기 때문에(아니, 사실 저는 못 그리는 편이고, 저 친구가 바쁜거...)


"4컷 좀 그려봐. 하다못해 삽화 몇개라도, 제발."
"니가 그려. 내가 본다."
"아, 쫌!! 이런 걸 채팅 로그로만 남기는건 후세에 죄를 짓는거라니까!!"
"...내가 볼 땐, 이런 걸 남기는 것 자체가 후세에 죄야. 죄악이라고."
"악, 어떻게 나 혼자 보고 눈을 썩게 하냔 말야."
"꼬우면 그리시든가. 이런 건 묻어야 해. 묻어야 한다고."
"안돼!! 그럴 순 없어!! 내가 써버린다!!"


...뭐, 대강 그런 식으로 전개된 겁니다. 그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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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절세마녀 | 2008/03/16 08:55 | 서쪽 탑: 상상의 서고 | 트랙백 | 핑백(3)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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